상도동 계단 집 1.

: 난 아직도 사쿠라가 좋다.

by Auntie J

마포 개천 집에서 나와 두 어군 데를 더 전전했다.

내 기억엔 없지만 우리 식구는 사당동 어디에서 홍수를 된통 겪었고 영동의 5층짜리 꽃 이름 아파트에서도 스쳐 지나가듯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린애 셋에 이삿짐까지 이고 지고 남자 없이(직장 생활을 핑계로 아버지는 평생 이삿짐을 싸지도 않으셨고, 싸실 줄도 모르는 듯 보였다) 움직이는 일이 거의 피난길 수준의 고행임을 아셨는지 어디든 자리 잡고 살아볼 궁리를 제대로 하신 곳이 상도동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파트 6,7층 정도의 계단은 올라야 대문을 볼 수 있었으니 간단하게 상도동 집은 우리 모두에게 계단 집으로 불렸다. 그 집에서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중학교까지 막 다니다 이사를 했으니 햇수로 치자면 가장 오래 머무른 집. 하지만 오래 살았다고 좋은 추억이나 애착의 양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라 유달리 그 집이 좋을 이유는 아직도 딱히 없지만 그래도 삭막한 도시 인생의 반짝이는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라 어찌 되었든 기억은 생생하다.


상도동 계단 집에서 엄마는 본격적인 입식 부엌을 사용하게 되었고, 우린 욕조가 딸린 화장실에서 더운물을 받아 놓고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모질게 추운 겨울에도 까딱없는 새마을 보일러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신식 양옥 주택으로의 주거환경 레벨 업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이렇게 생활의 편리함은 물론이요, 유년시절 놀이의 참 맛을 알게 해 준 곳도 바로 이 집이었는데, 온갖 놀이 개발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우리 형제들은 지하 보일러실부터 옥상, 장독대는 기본이요, 집 앞 뒤 축대까지 집안 곳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장 즐거운 방법을 터득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아무리 오랜 시간 앉아 있고 바라만 보아도 지루하지 않았던 곳은 바로 현관문 앞 일자로 길게 자리 잡은 우리 집 정원. 애 셋은 물론이고 부모님 두분도 특히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셨는데, (정확히 상도동 계단 집이 부모님의 ‘생애 첫 내 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자라온 분위기상 그리 여겨짐) 두 분은 그 집에서만큼은 ‘내 첫 집’에나 부릴만한 정성의 정원 관리를 하셨다. 물론 정원이라 봐야 인테리어 잡지에서처럼 포실하게 깔린 잔디와 소나무로 전문가 수준의 관리를 필요로 하는 그런 수준엔 택도 미치지 않았지만, 몇 그루 안 되는 나무의 가지치기며 송충이 및 각종 벌레 예방까지 해마다 수고로운 일을 미루신 적이 없었다.


부모님 두 분의 마음이 오직 집으로 향해 있던 시절이었던 거다. 중년으로 접어들며 자녀들은 초, 중학교로 진학하고 크든 작든 내 집도 마련했고. 내 가정을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대부분의 부모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당신들도 그랬을 거다. 아직까진 무엇이든 해 낼 것 같고 또 해내야 하고, 그래야 계속 '홈 스위트 홈'이 가능할 것 같고. 그러나 어디 인생이란 게 온 '마음'을 다해도 '마음'대로 살아지던가. 당신들 스스로의 인생조차 원하는 대로만 향하지 않는다는 설욕을 채 감당하기도 전에 자식들의 크고 작은 인생 고비까지 함께 넘겨야 했으니, 물고 물리는 과한 번잡함에 어찌 마음이 오직 집으로만 향할 수 있었겠는가. 이번 장은 되든 아니든 깔끔히 정리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 인생이라면 모를까, 풀리지 않은 감정들은 그냥 쌓이고 살아야 하는 날은 계속 닥치고, 그쯤 되면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지고 ‘해결’을 해볼까 하는 찰나 이미 지나간 시간만 야속해지기 마련이다. 바로 이렇게 흘러가기 직전, 인생의 진면목이 아직 닥치지 않은 그 시절이 바로 상도동 계단 집 시절이었던 듯하다.


leaf-769735_1920 (2).jpg 그림 from pixabay


상도동 계단 집의 기다란 정원에는 사철나무(어른들 말을 따라 해 사철나무라 불렀지만 가시가 뾰족뾰족 솟은 나무로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배나무, 복숭아나무, 등나무, 벚꽃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배나무 맞은편에 큰 후박나무(역시 당시 어른들 주장. 지금 닮은꼴을 찾아보았으나 전혀 다른 나무가 등장함)가 한그루 있었고 벚꽃 나무 주변으로는 봄마다 개나리가 왕성했다.


각 나무들은 모두 각각의 이유로 식구들의 사랑을 받았다.

가시 사철나무는 아무리 잘라주고 정리해 주어도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모양이 흐트러져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했지만 빨랫줄을 고정시키는 지지대였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충분했다. 배나무는 작은 나무일 때부터 키웠는데, 집안일에 관심 없던 아버지조차 정원 관리를 하게 만든 나무였다. 어린아이 주먹보다 작은 배가 그 작은 나무에서 열리는 것도 신기했지만 돌배처럼 작은 그 배의 맛이 모두가 감탄할 만큼 달았다. 아버지는 특히 배를 잘 열게 하기 위해서 신문지로 봉지 씌우기를 하듯 그 작은 배 하나하나를 모두 감싸는 일을 해마다 하셨다. 전구가 고장 나 불이 들어오지 않아 불편한데도 외출한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전구를 갈게 하셨던 분이 우리 아버지셨다. 이런 아버지가 배나무 봉지 씌우기를 하셨단 거다. 복숭아나무는 시고 작은 풋 복숭아를 열긴 했지만 복사꽃이 너무나 새초롬해서 좋았고, 등나무는 한 여름 그 아래에서 쉬기엔 충분한 그늘을 만들 정도로 잘 커줬다. 그리고 그 아래 구석구석엔 작약이나 붓꽃, 과꽃, 사루비아들이 번갈아 피고 져 꽃구경은 심심치 않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작고 몇 그루 안 되는 나무가 특별한 계획이나 이유 없이 줄 지어 서 있는 어설픈 배열 형식을 정원이라 부르는 게 적당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당보다는 정원이라 부르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나름 있는데, 우선 맹숭한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흙으로 덮여 있는 공간이 훨씬 많았고 무엇보다 항상, 누군가는 나무와 꽃들을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원은 가꾸는 것이지만 마당은 빗질을 하거나 빨래를 너는 공간으로 어딘가 더 적합하다는 단어 사용에 대한 주장! 되겠다.


그럼에도 정원이라 하기엔 확실히 부족해 보이긴 했다. 예전 집주인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골라 심은 것 같기는 한데 분명 전문가의 손길은 거치지 않은 듯, 나무와 나무 사이가 과하게 벌어져 있기도 하고 반면 너무 촘촘히 붙어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기도 했다. 게다가 정원의 가장 끝, 벚꽃나무가 서 있던 집의 안쪽 한 귀퉁이는 아랫집 축대와 맞물려 담이 허물어진 것인지 원래 없는 것인지 작은 골목길과 매우 애매한 경계를 만들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여름철 재난방지 차원에서라도 축대 보수공사 대상에 반드시 속했을 정도로 허물어져 그 형태가 분명치 않았는데 당시 살면서 나는 한 번도 우리 집 담이건 아랫집 축대 건 안전상의 이유로 손을 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도 살았던, 살 수 있었던 세월이었다.


마당의 가장 끝 벚꽃나무 주변에는 개나리가 마구 깔려 마치 벚꽃나무와 개나리가 한 나무에서 자라는 것처럼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나는 개나리 사이에서 피는 벚꽃나무가 그중 가장 좋았다.

계단 집 벚꽃은 겹벚꽃이었다.

요즘 철만 되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홑 벚꽃이 아니라 겹벚꽃.

겹벚꽃은 색이 홑꽃 보다 진하고 꽃잎이 겹쳐져 있지 않아 하늘하늘 피는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꽃송이가 알음알음 송이가 진 것처럼 뭉쳐져 있다. 홑 벚꽃이 청순하고 싱그럽다면 겹벚꽃은 어딘가 분명해 보이고 풍성하다. 그런 겹벚꽃을 나는 벚꽃이라 부르지 않고 사쿠라라고 불렀다. 본 대로 믿고 들은 대로 말한다고, 하필 우리 집안 어른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불렀으니까. 여자아이들이 또래끼리 어울릴 때, 주로 신변잡기에 대해 수많은 질문이 오간다. 흔한 질문으로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하고, 무슨 만화 프로를 제일 즐겨보며, 반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지, 그런 류의 질문들 말이다. 그중 빠지지 않던 질문이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하며, 어떤 꽃을 제일 좋아하느냐 였다. 물론 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나 초지일관 ‘사쿠라’가 가장 좋았다. 좋은 걸 좋다고 했을 뿐!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즈음. 사쿠라가 가장 예쁘다는 나의 발언은 한순간 나를 제외한 같은 반 모두를 대동 단결하게 만들었다. 한쪽에선 ‘일본 꽃’을 좋아하네, 라는 비아냥, 다른 쪽에선 ‘일본 꽃’인 줄 몰랐냐는 질책이 제대로 날아오면서 나는 꽃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라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나 당시 세상에서 김일성 다음으로 악하고 치사한 일본 순사. 뭐, 그런 부류가 된 것처럼 창피와 수치를 느꼈다.

이후 나는 어떤 꽃을 제일 좋아하냐는 질문에 두말없이 장미! 에 제대로 본 적도 없는 백합, 혹은 무궁화 등등을 나열했던 것 같다.


오빠가 고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어떤 목적이었는지 모를 이사를 하게 되었다.

역시 엄마는 며칠 밤낮을 꼬박 이삿짐을 싸셨던 것 같다.


이후 20여 년이 훌쩍 지난 어느 봄, 그 사쿠라가 그리워 설레는 마음으로 상도동 꼭대기를 올랐다. 여전하게 엄청난 계단을 오르며, 변하지 않은 배경에 나만 달라진 사진을 보는 듯, 갑작스러운 감정이 울컥했다.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지만 지나간 것들에 대한 감정. 나는 지나간 것들이 주는 감정에 익숙해지기가 아직도 때론 힘들다. 꼭대기에 나란히 붙어 있던 두 집이 먼저 보이고 마지막 계단까지 오르자 코너에 숨어있던 상도동 계단 집이 보였다. 다행히 그때까지 계단 집은 생을 다하진 않았었다.(이후 10년이 또 지나선 이미 그 일대는 대단지 아파트촌이 들어섰다) 허나 낡고 허름한 것이 지나쳐 차마 바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이미 끝까지 다 한 모습이었다.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냈던 모양이다.


사쿠라를 보기 위해 다시 계단을 내려가 축대를 끼고 올라갔다.

어느 정도 올라가면 개나리와 사쿠라가 넘실 보여야 하는데.. 이미 아스팔트로 쭉 뻗은 길이 축대를 둘러싸고 윗동네로 쭉 뻗어 있었다. 축대와 계단 집 정원의 미묘한 경계는 이미 분명하고도 탄탄하게 갈라져 있었고, 역시 내 사쿠라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때 이후로..

일본 꽃이어서 좋아하는 꽃이라 말하지 않은 게 아닌데,..

그래도 마음속으로, 아직도 제일 좋아하는 꽃은 사쿠란데...


문득, 집을 돌보면서 한 곳에서 오래 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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