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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Oct 11. 2019

남을 사람만 남는 법 (지인 찬스는 없는 걸로)


어라! 그 양반 재주 좋네!

P가 취업에 성공했단다.


취업하려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 중이란 말을 나눈 게 두 달 전인데 벌써 취업에 성공했다니!

운이 좋은 건지, 능력이 대단한 건지 아무래도 궁금했다.

물론 구하려는 일의 분야가 다르긴 하지만 잘되는 집은 다 이유가 있다고 뭐라도 벤치마킹 하자 싶어 축하를 빌미로 차 한잔을 청했다.


역시 원하는 것을 얻은 자의 여유로움이란!

두 달 전에 비해서 활짝 핀 P를 보자니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도 사람 나름이다 싶어 졌다.

 

“언니, 얼굴이 완전 폈네요!! 폈어!!”


“다들 그러네. 그렇게 폈나.(그러나 본인도 이미 본인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고 있다는 웃음)”


“안 하던 일 하려니 힘들진 않고요?”


“왜 안 힘들어. 힘들지. 아침마다 꼬박꼬박 출근하려니 힘든데, 다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은 훨씬 나아졌단다. 신기하지?”


“역시 자기 일이 있는 게 좋은 거예요!?”


“어. 좋아! 시간이 너무 빨리 가고, 재미있고, 여태 어떻게 집에 있어나 싶어.”


33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 드디어 막내까지 대학에 보내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 P는 올해 52세. 자식들 잘 키우는 게 사명인 줄 알고 전력질주했으나 어느 날 뒤통수가 번쩍 울리며 자기 일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이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 구직 노력 두 달 만에 부동산 실장님으로 취직했다. 3개월간 수습 기간을 거친 뒤 정식 직원으로 일을 하기로 했지만 이미 본인은 사장보다 더 한 열정으로 일하고 있으며, 함께 일하는 직원 모두 배려가 깊고, 무엇보다 적성에 맞아 아주 신이 난다고.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질적 연구 시작.


물론 궁금한 것은 명확하다!

아시다시피 넘치는 게 부동산이요, 심지어 문을 닫는 곳도 많다는데 어찌 그리 분위기 좋은 부동산을 찾아냈는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더라도 취업이 쉬운 게 아닌데 경력도 없이 어떻게 바로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는가? 뭔가 당신만의 필 살기가 있었단 말이오?


………………………..


“필 살기? (한바탕 웃더니) 나, 소개로 들어갔어, 소개로.”


“아………… 그랬구나.. 그래도 소개까지 해 줄 분이 계셨네요..”


“아는 분이 부동산을 하시는데, **에서 사람을 구하니 자기 이름을 대고 면접을 봐라 하시더라고.

그런데 내가 또 스스로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심한 거야. 그래서 처음 면접을 볼 때 그분 이름은 말하지 않고 그냥 면접을 봤지.”


“그런데?”


“와서 일해라,. 연락이 안 오지. 당연히.”


“그래서?”


“마침 소개해 준 분이 다시 연락이 왔네. 면접은 봤냐, 자기 이름을 말했냐, 그래서 여차저차 스스로 구해보고 싶었고, 어쩌고.. 하니 그분이 면접을 본 그 부동산으로 다시 연락을 했나 봐. 면접 본 곳에서 바로 전화가 오더만.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면접을 봤냐. 언제까지 나오실 수 있느냐.. 그래서 바로 일 시작한 거지.”


아…… 지인 찬스. 인맥 찬스. …. 그랬구나…


P는 이력서를 넣던 두 달 동안 8번 면접에 낙방했으며 어디에서도 불러주지 않아 낙심하던 차, 지인 한 명의 연결로 감사하게도 취직을 하게 되었다… 하였다. 그리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여자 나이 오십에 일자리를 스스로 구하기란, 특히 20여 년을 집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자기 같은 사람에겐 거의 불 가능한 일인 것 같고,

본인도 스스로 구하고 싶었지만 8번 면접에 떨어지자 의기소침해지며 포기하고 싶었다고.

그러며 J도 일자리를 구하고 싶으면 인맥을 동원해 도움을 받는 게 제일 빠를 거라고.


아…. 인맥.


돌아오는 버스 안. 핸드폰 속 연락처를 뒤적여 본다.


가나다 순. 친한 순. 알고 지낸 햇수 순. 나이 순.. 형제, 자매, 친 인척 빼고, 그냥 연락처만 알고 있는 누구들 빼고,..


더할 이름은 박하고 뺄 이름만 천지다.

과연 내 인맥의 가용성이 있는 걸까.. 아니, 인맥이 있기는 한 걸까..


인맥의 중요성이 한창 화두였던 시절이 있었다.

전화기에 저장한 사람 수가 곧 성공을 보장하는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사람을 많이 만나고,

관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20,30대 방송을 하며 소위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던 나는 인맥을 만들고 저장하는데 큰 소질이 없었다. 굳이 도움을 청할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도움을 청할 목적으로 사람을 관리하는 일 자체가 성격에 맞지 않았고, 일을 마치면 별도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정이 가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직종이 바뀔 때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게 알고 지내는 정도의 관계만 유지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연락처들은 삭제됐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남을 사람들만 남았다.


한 명 한 명, 면면을 보니 내 일자리를 구해주진 못해도 내가 아프면 일단 뛰어는 와 줄 것 같긴 하다.


그럼 됐지 뭐.


집에 가서 구인 공고나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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