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더라도 바닥을 쳤을 때 포기해야 나한테라도 명분이 서지, 어정쩡하게 그냥 포기하는 건 아니지.
그래서 또 이력서를 냈다.
여기서 끝이라면 ‘근성 있어 보이는 인물 정도’로 보이겠는데..
그냥 지나치기엔 조건이 너무 좋았다.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했고,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세 타임이나 일을 준단다.
그러니 급여도 다른 곳에 비해 너끈히 두 배는 넘는다.
이 정도면 내가 언제 ‘포기’하려 했던가! 싶어 진다.
이력서, 당연히 또 써야지! 진절머리 나는 자기소개서? 코 디밀고 공 들여야지!
이유? 당연히 견물생심! ‘기왕이면’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맞는 ‘기막힌 기회’ 다 싶었다.
지금까지 초등학교 면접을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떨어졌다.
원래 떨어지고 나면 이유가 많아지는 법이긴 하지만 요모조모 따져보고, 내 스타일을 아는 주변의 말을 들어봐도 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어울릴 법한 스타일이 아니다.
일단 인상이 강하다. 쥐 잡 듯 애들을 잡고, 바짝 군기 올리는데 기막힐 인상이지 샤랄라스럽게 다정하고 자상한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다 결정적으로 애들을 가르친 경력이 없다. 물론, 대학시절 용돈벌이로 과외 아르바이트는 신물 나게 했지만 30년 전 아르바이트 경험을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녹여 포장하는 건 좀 비루하다.
어쨌든 그럼에도 공들인 자기소개서 덕분인지 없는 경험에도 서류 심사는 통과했고, 면접을 보러 갔다.
아! 그런데 불길하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하!!! 저 범 같은 녀석들을 어떻게 가르치냐. 싶어 지더니 자기소개서에 내가 얼마나 어린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으며 좋아하는지 열정적으로 기술한 그 부분이 오버랩됐다.
물론 아이들을 좋아라 한다. 거리낌 없이 잘 지내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우린 다 알고 있다.
좋아하는 것과 가르치는 건 완전히 별개 문제라는 걸. 면접 장소로 들어가기 전, 전혀 도움이 안 될 생각이다!
세차게 머리를 한 번 털어줬다(나이가 들면서 혼잣말+혼자 행동(생각하지 말자 머리 흔들기, 까먹곤 아차! 하며 머리 두드리기 등등)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을 때가 있다).
다른 학교처럼 교감 선생님과 담당 선생님이 면접을 볼 줄 알았는데, 마침 교감 선생님께선 출장 중. 한참 어려 보이는 선생님 한 명과 나보다 열 살 정도는 어려 보이는 선생님 두 명, 세 분이 면접을 보겠다고 기다리고 있는데 장소 자체가 면접 장소라 하기엔 너무 부드럽다.
대형도 면접 대형이 아니라 옹기종기 둘러앉아 얼굴 표정 하나하나 다 보일 판이다.
이런! 새로운 부담일세!!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면접. 내 이력서를 훑어보던 사십 좀 넘어 보이는 선생님의 질문.
“일 하시다가 한 4년 정도 쉬셨네요. 좋으셨어요?”
“네. 아주 잘 쉬었습니다.”
“보통 일 하다가 집에 있으면 힘들다고 하던데.. 괜찮으셨어요?”
그래. 거기서 말았어야지. 그냥 꾹 참았어야지..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요. 제가 일을 아주 힘들게 했거든요. 일단 1년 반? 은 정말 즐거웠어요. 살림 사는 게 재미있고 즐겁다면 아줌마들 욕 하시던데, 전 정말 즐거웠고요…. ”
한참 한 것 같은 데… 말이 많다. 그만하지..
“정말요? 아.. 나도 쉬어야 하나 봐. 그만두는 게 정말 답일까요?”
“뭐, 전 일하시면서 힘들다고 하는 분 들한텐 조금이라도 쉬어 보시라고 적극적으로 추천드려요. 왜냐면요…”
어쩌고 저쩌고 이래서 저래서 그러니까 그리하여…. 주절주절…. 그만하라고!!!
그렇게 시작한 선생님과 나는 왜 직장을 그만두고 쉬어야 하는지, 그러나 쉰다고 영원히 쉴 수는 없는 엄연한 현실이 있으며, 다시 일을 하려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고, 그래서 지금 내가 자격증 하나를 따서 이렇게 면접을 다니느라 생고생을 하고 있고. 그래도 선생님들은 직장 걱정 없이 휴직하실 수 있지 않느냐 어쩌냐.. 하며 20여분이 넘게 떠들었다. 한참.. 동네 아줌마를 만나 수다를 떠는 건지, 재취업 A TO Z 강연을 하고 있는 건지 하다 보니 순간 싸하다.
그래 여긴 면접 장이다.
결국 본격적인 면접은 5분도 못 한 듯한데 시간에 쫓기듯 다음 면접 볼 사람에게 바통을 넘겨야 했다.
내 면접의 마지막은 지금 일하기 싫어 죽겠다는 그 선생님의 멘트로 마무리됐다.
“지금 힘들어도 언젠가 빛을 볼 테니 열심히 노력하세요!!”
나오니 다음 면접 대기자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무슨 면접을 그렇게 오래 보냐는 듯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니 뭐라도 있는 사람일까.. 하는 듯한. 면접 장에서 면접을 봐야 하는 사람들끼리의 상대방에 대한 눈빛.
자신 있는 그 누구도 함부로 자신 있어 할 수 없는 그 눈빛.
“저 오늘 아무래도 아닌 것 같으니 편하게 면접 보세요.”
장하다!! 아니란다.. 쯧쯧 쯧…
분위기는 좋았던 것 같은데, 말도 아주 자연스럽게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자신이 가장 먼저 알고 있다. 인정하기 싫어서 그렇지.
아니 왜 하필 그 선생님은 지금 일하기가 싫으냐고, 왜 나한테 일 그만두고 쉬면 어쩌고 저쩌고 묻냐고,
면접을 보러 온 사람한테 걸맞은 질문을 해야 되는 거 아냐?
이건 다 그 선생님 때문이다.
맞장구를 너무 잘 쳤던 거다.
이래서 과연 내가 재취업을 하기는 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