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과장 May 27. 2023

다섯 살 연하남과 결혼했습니다

마흔에 결혼하고 달라진 점

"안녕하세요, OO이에요. 잘 지내시죠?"

"결혼했어요. 감사합니다"

"어머, 언제!?"


뚜뚜뚜...


때가 되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결혼정보회사의 전화. 한 번이라도 결정사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면 1년에서 6개월 단위로 결혼상태확인 전화가 걸려온다. 난 동의한 적이 없는데..


재밌는 건 영업전화인 것을 뻔히 알고, 내 삶에 불만이 별로 없어도, 그날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가 있다는 점이다. 사람을 업으로 하는 영업은 언제나 신기하다.


미안하지만 불필요한 말을 길게 듣는 타입이 아니라 바로 끊어버렸다. 저를 리스트에서 삭제하세요. 묘하게 통쾌하게 시작하는 하루.

결혼을 인생의 최우선에 두지 않고 산지 39년 정도가 되면 어느새 골드미스의 삶의 모양새를 띤다. 일 - 투자 - 취미 - 연애 - 여행. 아니, 내가 판검사, 의사도 아닌데 골드는 민망하다. '브론즈 미스' 정도로 정의하고, 결혼 후 달라진 점과 미리 알면 좋은 점들을 정리해 본다.


하나. 타협하기


연애 중에 그의 집에 놀러 갔을 때, 티클 하나 없이 정리된 공간을 보면서 내가 그와 진정 같이 살 수 있을 것인가 물음을 던졌다. 나이가 들면서 숙련한 결과,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정리는 하고 살지만, 청결 레벨 자체가 높은 사람이 나의 집을 봤을 땐 상당히 문제가 많이 보일 것이다.


결혼한 후, 신랑은 오늘 해야 할 빨래는 오늘 꼭 하고 자야 한다며, 설잠을 자다 새벽 2시에 일어나 다 된 빨래를 널었다. 아침에 곱게 널린 빨래를 보며 생각했다. 빡센데...


다행히 레벨이 상당히 달랐던 우리는 잘 살고 있다. 좀 더 능력이 출중한 신랑이 청소와 설거지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하되, 가끔 내가 해놓은 설거지를 다시 본인이 하는 방식으로 조율해 갔다. 청소의 만족 레벨도 조금 낮춘 것 같다.


"힘들지 않아?"

"우리 집 청소하는 건데 뭐, 자기도 요새 좀 바뀌었어. 닮아가나 봐."


나도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혼자 살았을 때 눈에 밟히지 않던 것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면서, 신랑이 없을 때에도 물티슈와 청소기를 집어 들고 무언가 하고 있다. 빨래는 많이 쌓이기 전에 돌린다.


30~40년을 떨어져 살았기에 둘의 습성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차이보다 중요한 건 상대방에게 맞춰줄 의지와 행동력이 있는가, 그리고 타협이다.

둘. 노력하기


신랑이 하는 업무 영역이 나보다 많다고 느껴지는 탓에, 상대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요리이다.


다행히 신랑은 내 음식을 좋아했고, 나도 한상 거하게 차려놓고 사진을 찍을 때면 뭔가 프로젝트 하나를 끝낸 것 같은 뿌듯함이 생긴다. 신랑의 프사가 바뀔 때마다 주변의 부러움 어린 톡을 받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내 작은 재주로 그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만족.


냄비째로 라면 끓여먹던 그도 요새는 안주 하나를 먹어도 예쁜 그릇을 꺼내 올려놓는다. 좋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변화란.


혼자 지내던 시절 이것저것 배우러 돌아다닌 것 중에 돌아보니 가장 잘  건 요리기능사였다. 자격증은 근처도 못 갔지만, 뭘 만들든 요리의 기본기는 다 비슷하기에 어렵지 않고, 생활요리에도 상당 도움이 된다.


혼자 살아도 요리 제대로 배우기와 플레이팅 하기 좋은 멋진 그릇을 사두는 것은 강력 추천이다. 좋은 그릇은 결혼을 해도, 이사를 가도, 평생 쓴다.

신랑이 나를 위해 노력하는 건 집돌이 탈출이다. 일 - 집에서 게임 정도의 정적인 인생을 살아온 그. 집돌이는 이제 주말이면 늘 어딘가를 함께 가고 새로운 걸 보러 다닌다. 처음에는 에너지 넘치는 아내 때문에 뭔지도 모르고 따라다녔지만, 계속 다니니 이번주는 어디를 가는 거냐며 궁금해한다. 맛집이며 여행,  거리, 할 거리 무궁무진. 


나름 그중에 재미있던 것 도 있었는지, 이젠 본인이 찾아보고 제안할 때도 있다. 몇 달째 나와 함께 쏘 다닌 그의 총평은 인생이 알차지는 것 같다다.


물론 며칠 되지도 않는 휴무에 집을 나서는 것이 그에겐 피로로 다가올 수 있는데, 그 역시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잘 따라와준 신랑에게 감사하기.



"결혼하니까 좋아요?"

"네, 좀 더 너그러워지고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것 같아요."


4년 넘게 함께 일한 팀장님이 물어보셨다. 일할 때 날이 서있던 모습을 많이 보던 팀장님께서도 나의 편안해진 모습을 본 모양이다. 사람은 세월에 따라 변하지만 결혼이 주는 변화는 더 큰 것 같다.


나와 평생을 함께할 가족이 생기고, 서로가 주는 안정감이 있어 외부의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누가 개같이 굴면, '응 그래. 넌 참 개 같구나' 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들이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고, 분노하는 에너지 조차 쓸 겨를도 없다. 오늘 내게 중요한 건 나의 가족 분에게 무얼 먹일까, 오늘의 주류는 뭘로 선정하지 등에 대한 심오한 물음과 탐구이다.

결혼 초보이지만, 한 줄을 하자면 함께하는 건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말하고 다. 수개월째 브런치 메인을 도배하고 있는 이혼 스토리들. 다수의 로직의 결과인지, 이혼 희망 독자가 많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플랫폼에 개인적인 바라는 건, 보다 긍정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들로 순환되길 바란다. 남의 불행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행복과 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은퇴 없는 브런치에서 어떻게 견해가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그가 인생을 함께 하기로 한 결정이 장점이 많다고 스스로 평가하길 바란다.


by. 연애훈련대장, M과장


ps. 매거진 제목을 바꾸고 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도움 주신 많은 분들의 것들을 추스르는 동안 많은 시간이 지났네요.


글을 못 올리는 사이 찾아주시는 분들도 꾸준히 늘었는데 늘 감사합니다. 경력단절 없는 브런치에서 마삼오 대장의 결혼 팁 계속 써 내려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4화 단 한 번의 로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