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나 썸인 남자가 물어오는 질문에 '글'이라고 답한 적은 없었다. 테니스나 산책, 독서.. 진짜 취미 대신 얼버무릴 것들은 많았으니. 주말마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온 지 15년, 업으로도 가능한지 검증한 시간을 합친다면 25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글과 함께한 인생이다. 알량한 상 몇 개 받아 우쭐되던 과거를 돌이켜보니,글을 업으로 삼아 먹고살 자신까진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책이 세상에 정식 출간되어도 인생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같잖은 글이지만 응원해 주는 팬이 생겨 참 좋지만, 필명으로 출간해도 찾아내서 씹는 직장동료도 생긴다. 그저 고생했네,축하해줄 순 없는걸까? 출간 이후의 삶은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
그래도 글을 쓰는 이유는 인생의 축적이다. 글 안엔 그 순간의 내게 소중했던 기억과 주제가 담겨있다. 여행에 심취했을 때는 여행이, 직장이 우선이었을 땐 직장이, 연애가 어려울 땐 연애가 내 글에 주인공이었다. 본인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자신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동안 어떤 연인에게도 나의 진짜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그들이 내 인생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이제 내 인생에 중요한 자가 삶에 영입된 만큼, 이 공간의 존재는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세번째 시안으로 결정된 나의 첫 책
'존경하는 OO님에게'
얼마 전 예랑이에게 책을 선물했다. 10여 년의 회사생활을 녹여 자기계발서로 엮은 책이다 보니, 이제껏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는 아내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그는 나에게 프러포즈를 했지만, 나는 다른 프러포즈를 한다.
이제 나의 소재가 되어줄래?
"설마 글 쓰려고 결혼하는 건 아니지?"
"세상에 그런 정신 나간 사람이 어딨어!"
(가끔 그런 사람도 있는 것 같다.)
...
"어! 이거 글 쓰려고 그러지!"
책과 글의 존재를 공개한 이후, 브런치의 중요 소재가 자꾸 도발하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무슨 진지한 얘기만 하면 글이 되는 거냐고 문의. 연하라서 좋은 점이 참 많은데, 아기를 키우는 것 같은 심리적 관리가 필요하다.어쨌든 이제 그는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존재이자 귀여운 평생 글감이다.
마음에 들지 모르겠지만, 가끔 에피소드로 등장할 것이고 잘한 행동도 못한 행동도 휘발되는 일은 없을 거야. 불특정다수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그저 잘하면 된단다.ㅎㅎ
글감은 억지로 찾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
그리고 여긴 시댁엔 비밀이다.
by. M과장
ps. 직장인으로서 글을 쓰면 부작용이 따른다. 전체 공개하는 글이다 보니 기어코 찾아내서 들쑤시는 회사 직원들이 몇 있다. 왤까? 물론 안 그러면 더 좋겠지만, 안티 팬도 관심?일까..
이왕찾아온 거면 캡처하고 퍼나르기만 할 게 아니라, 직장에 관한 글도 진지하게 읽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언가깨달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남 헐뜯는 것보다 생산적인 '할 일'은 세상에 많다는 걸. 시간은 유한하고, 지금 본인의 생에 많은 것이 미완성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