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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과장 Jan 23. 2023

스몰웨딩을 꿈꾸는 이들에게

결혼식의 단상, 그리고 작은 결혼을 준비하며

금 같은 토요일 아침, 이불 킥을 하며 일어나 평소 잘 안 입는 원피스를 집어 들었다. 아, 먼지. 스타일러 돌려놓을 걸. 잠시 자책하다 내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냥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서둘러 도착한 직장동료의 결혼식엔 모르는 얼굴이 가득하다. 다른 팀 손님들이 섞여 꽉 찬 로비. 눈도장을 찍어야 할 신랑과 인사를 하고 A홀의 문을 열어본다. 이미 예식장 자리엔 할머니들과 벌써 지루해 보이는 아이들로 꽉 차 있다. 두 명의 인간에 연결된 핏줄이 이렇게나 많다니. 늘 놀라는 일이다.


그래도 단상이 보이는 쪽에 멀찍이 서 있는데, 아는 얼굴이 말을 건다. 일찍 왔네? 밥이나 먹자. 식이 시작하기도 전에 뷔페로 향한 우리. 나보다 먼저 온 옆 팀 차장님 가족이 인사를 한다. 많이 컸네. 결혼식장에서만 보는 동료의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오늘의 주인공 신랑신부가 배경으로 흐르는 뷔페. 이제 약간 배가 부른데 한 그릇을 더 먹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순간, 화면에는 축가가 시작되었다. 연습한 건 가상하고 고마우나 꼭 노래를 해야만 했는가, 근본적인 물음을 안고 마지막 코스를 담으러 일어난다.


사과와 귤 몇 개, 밍숭한 기계 드립커피를 앞에 두고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지났다. 결혼식은 이미 관심 밖인지 오래. 콩 볶아 먹듯이 끝난 행사를 마치고, 피곤하지만 상기된 표정의 신랑신부가 나타난다.


"축하해요."


친구였다면 오지 않았을 정도의 사이이지만, 회사 동료이기에 자리한 오늘. 많은 이들이 같은 생각인 것 같다. 차장네 가족은 이미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 과장님은 언제 갈 거예요? 나가서 커피 마실까?


기계식 드립커피로 충족되지 않은 카페인은 에스프레소식 스벅커피로 마무리한다. 오후 3시. 결혼은 내가 한 게 아닌데 매우 지친다. 오늘 저녁엔 동그란 귤 모양 그대로 넉넉하게 올려놓고 넷플릭스나 봐야겠다.





도떼기시장. 이건 누구를 위한 행사일까? 본인과 부모님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며 밀린 수금을 하는 행사인가. 10여 년간 사람만 바뀐 행사를 다니며 늘 하는 생각, 이런 결혼식이라면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 못했나? 안 한 거임. (정신승리)


사적인 말 한마디 섞지도 않은 직원이 건네는 당혹스러운 청첩장은 불필요한 지출 혹은 주말 하루 날림으로 끝을 맺는다. 안 친한 사람이 피같은 주말 시간을 들여 와 주는 건 더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서로 월급사정 뻔히 다 아는데, 이번에 또 지출이 나가나.. 고민되는 청첩장은 오히려 주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커피 한 잔도 안 한 데면데면한 사이에겐 나의 결혼을 알리지 마라. 이순신급 비장함으로 다짐한 지 십여년, 이제 실천할 때가 왔다. 진심어린 축하가 아닌 이의 것은 돈도 마음도 받을 생각이 없다.


신입사원 시절, 얼굴도 가물가물한 동기에게 보낸 수많은 축의금. 지방까지 버스 타고 참여한 결혼식의 주인공인 그녀는 지금 내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한다. 아기 탄생과 함께 축의금만 받은 채 사라진 수많은 동료들. 그래, 생면부지 모르는 이에게도 기부하는 데, 그 돈 잘 모아 잘 살면 그걸로 되었다. 


결혼식을 안 하는 건 어때?


넌지시 물나의 말에 그래도 식은 해야 하지 않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예랑이네 회사는 잘 모르는 직원들의 결혼식도 모두 가는 분위기이다 보니, 식이 없으면 눈치가 보일 것 같다고 했다.


그래 그럼 하지 뭐. 결혼식에 로망이 별로 없지만 대충 금액을 들어 알고 있던 나는 그에게 홈페이지 사진이 마음에 드는 아무 예식장 한 두 군데에 직접 전화하게끔 부탁했다. 5백만 원 짜리도 있지만 좀 화려하고 좋다 싶은 사진의 예식장은 2천만 원부터 시작하는 곳도 있었다.


처음엔 세상 화려한 사진을 보내더니, 직접 전화해 보곤 얘기가 쏙 들어갔다.

결혼식은 하되 남한테 보이는 데 돈 많이 쓰지 말자. 예의를 차리는 정도의 작은 규모면 될 것 같아.


그래서 생각한 게 스몰웨딩이다. 스몰웨딩은 양가 식구들끼리만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인원수대로 요리나 코스를 주문하고 소정의 대관료를 내는 것으로 진행된다. 친구나 소수의 인원 초대는 선택. 그도 성대한 예식까진 원하지 않았던 터라 수월하게 합의점을 찾았다.


유튜브로 찾아보고 스몰웨딩을 한다는 레스토랑 몇 군데 전화를 돌려 가격을 알아보았다. 예식장 대관료보단 훨씬 저렴하지만, 웨딩의 모양새를 조금이나마 갖추려다 보니 꽃이며 케이크며 기본 금액에서 계속 추가되었다. 합산하고 보니 그다지 스몰 하지 않은 예산. 결국 스몰웨딩은 후보에서 지우기로 했다.  

평생 처음하는 인생 최대 행사를 앞두고, 걱정되고 막막한 건 당연한 일이다. 결혼 준비하며 관계를 끝내버렸다는 사례들을 들으면 더 두려워다. 우리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몇 달간 결혼을 준비하며 둘이 느낀 감정은 "생각보다 수월한데?"였다. 비결은 순차 연재 예정, 구독과 좋아요.^^


결혼식은 인생 최대 TF이다.


TF 착수에 앞서 유념해야 할 사항은 이 프로젝트는 팀원이 딱 둘인데, 한쪽이 나만큼 업무를 안 하면 다른 쪽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게 나만 좋자고 하는 겁니까, 김상무! 준비에 무심한 신랑에게 신부가 폭발하는 사례가 꽤 있다.


갈등과 예산을 최소화하며 스무스하게 결혼하는 법. 아직 우리도 프로젝트 결과 달성 전이지만, 안 할 순 없고 크게 하긴 싫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나씩 기록해볼까 한다.


연애에서 결혼까지, 대장을 따르라.


by. 연애훈련대장, M과장


ps. 웨딩플래너를 이용해도 되지만, 스스로 준비한다면 본인이 가봤던 예식장이나 근처 몇 군데 홈페이지 사진을 보고 전화를 돌려보자. 4~5군데 정도면 대강 어떤 비용이 어떤 규모로 들어가는지 감이 온다. 물론 예식장은 첫걸음에 불과하다.

 이런 결혼식을 상상하는가ㅎㅎ 수천만원의 예산이 있다면 가능하다. 방법은 본인이 돈을 매우 많이 벌거나, 매우 많은 자를 만날 것. 둘 중 아무 것도 해당이 아니라면 눈을 낮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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