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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과장 Jan 25. 2023

단 한 번의 로망

작은 결혼에서 로망 실현하기 [서른의 연애, 마흔의 결혼]

작은 결혼식을 한다고 로망이 없는 건 아니다. (식을 작게 할 뿐이지 돈을 안 쓰겠다 말한 적은 없..) 마의 35세 이상쯤되면 돈 때문에 결혼 준비를 축소할 필요까진 없다. 십몇 년 소처럼 일한 보람 제대로 느껴볼 기회!


그래도 자원은 유한하니, 소망 현실화는 합의 예산을 어디에 편성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의 희망사항은 서로 달랐다. 예랑이는 결혼반지와 사진에, 나는 신혼여행에 가장 임팩트를 주기를 원했다.



예랑이의 소망, 반지


결혼식 준비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 중 가장 비싼 존재, 반지. 프러포즈 때  목걸이도 이 브랜드였다며, 신이 나서 보여주는 반지 사진들.


이 쬐그만한 게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의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예물이니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긍정해 주었다. 이게 제일 예쁘네.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그 브랜드가 답이라 짐작하고, 그곳의 메인 디자인을 골랐다.

반지를 사러 가는 날, 명품 브랜드에 대기표에 대기 번호를 올려놓았다. 큰돈을 쓰려고 와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기다리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은데, 더 이상한 건 직원들의 묘한 분위기였다.


줄 서는 1000그릇 한정판 맛집 같은 느낌. 좋은 브랜드일수록 출입구에 서 있는 가드도, 매장 안에서 상품을 안내는 직원 하나같이 기계적이고 불친절했다. 응, 너 아니어도 손님 많아. 먹기 싫음 딴 데 가봐. 다음 사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 번 구매한 고객은 직원을 통해 사고 싶은 상품의 재고가 들어오면 연락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단순히 상품을 파는 직원이 아닌 돈 쓸 기회를 주는 분들이기에, 보통 백화점 직원들과는 다른 권력이 있는 셈이다. 신기한 자본주의 세계.


2주만에 서로의 이니셜이 각인된 반지까지 마주하니 정말 결혼하는 기분이다. 쁘다. 반짝이는 걸 싫어하는 여자는 없나 보다. 단, 이 고가의 물품을 구매하는 데에는 나에게도 조건이 있었다. 반지 외엔 어떤 예물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혼여행은 전적으로 예산 제한 없이 내게 맡기기!

나의 희망, 신혼여행


한 때 난 자유여행 마니아였다. 10여 년간 다닌 곳을 모아보니 32개국 정도, 나름 중수 레벨이다. 코로나가 본격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취소한 티겟은 이스라엘행, 목적지는 요르단, 혼자 여행길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보다 감흥이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새로운 곳에 가는 건 미로운 일이다.


아직 유럽도 가보지 않은 여린이 랑이에게 신혼여행으로 저번에 못 간 요르단에 가자고 하면, 너무나 놀라겠지? 나도 사막으로 신혼여행을 갈 생각은 없다. 아기 레벨 여행자가 평소 가보고 싶었던 나라(준)프로급 여행자가 안 가본 도시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보기로 했다.


휴양지 보단 유럽에 가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우리 결혼의 시기는 정해졌다. 유럽 여행의 최적기는 씨가 좋고 대학생이 없는 4~6월 혹은 가을이다. 가을은 너무 늦으니 봄에 하자. 좋아. 우리의 의사결정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한 사람이 의견을 말하고 크게 문제가 없으면 긍정. 결혼 날짜는 둘 다 덜 바쁜 시즌과 마일리지 티겟이 있는 날 앞으로 잡았다.

가고 싶은 도시를 물으니 파리와 로마를 동시에 얘기했다. 같이 가기는 약간 먼데.. 고민 끝에 두 도시를 인아웃으로 모두 아우르면서 대도시가 싫은 나의 기호에 맞춰 와인이 맛있고 바다가 아름다운 으로 결정했다.


부모님께는? 식장까지 정하고 말씀드리지, . 평소에도 부모님의 의견은 참고일 뿐, 내 인생은 내가 판단한다는 생각도 둘의 공통된 가치관이었다. 그래서 싸움이 없었는지 모른다.


예산에 제한 없이 맡기라고는 했지만, 가지고 있던 항공마일리지를 투하하고, 개인 여행할 때처럼 이동 코스에 맞춰 숙소를 예약하면 그다지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내가 반지에 대해 잘 모르듯, 다행히 여행에 큰 관심이 없는 그는  의견에 잘 따라왔다. 만약 여행을 잘 아는 사람을 예비 신랑으로 뒀다면 준비에 많은 도움을 받았겠지만, 시작부터 마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망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의 원함에 큰 문제가 없다면 

제동을 걸지 않는 것. 

내 관심사가 아니어도 이제부터 관심 가져주기

둘이 함께 행복한 결혼준비의 첫걸음이다.


요르단은 10주년쯤 가자 ^^;

랑 계속 살 운명같으니.. 부지런히 레벨 UP!


by. M과장

ps. 결혼반지 구매 팁.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수백만 원짜리 반지를 백화점에서 구매했지만, 결혼식 전 출국 계획이 있다면 예물은 시내 면세점에서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사람이 없어 직원들이 친절하고 상세히 안내해준다고 한다. 구매 금액이 크다 보니 10%의 부가세도 따져보면 상당하다. 물론 구매 당시의 환율은 미리 체크하기. 달러값이 너무 높으면, 가지고 나갈 필요 없는 백화점이 속 편할 수도 있다.


예물 핑계로 짧은 해외여행을 가는 것도 추천이다. 진짜 성격은 잠, 배고픔, 편안함 등의 기본권 보장이 부족한 고단한 여행길 위에서 나온다.


+ 마일리지 여행자 독자님께. 대한항공이 몇 십 년 만에 마일리지 정책을 개악했다. 23년 3월이 넘으면 가성비가 떨어지는 구간이 생긴다. 만약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아직 많이 보유한 분이라면, 개악 이전에 사용하는 게 좀 더 가성비가 좋다. 항공권의 출발 유효기간은 1년이다. (상세한 이유는 네이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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