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이야기
그거 해서 뭐 하려고요?”
누군가의 물음이 공기 중에 맴돌았다. 왜 커피를 마다하고, 술잔을 멀리하며, 고기를 끊는 수행을 하느냐고. 처음부터 거창한 깨달음을 좇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집착하던 것들을 내려놓으면, 그 빈자리에 다른 어떤 것이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호기심이었을 뿐이다.
첫 번째 실험은 커피를 끊어보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무해한 이 갈색 액체는 내 일상에서 얼마나 큰 존재감을 차지하고 있었던가. 구수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라떼를 마실 땐 꾸덕한 우유 거품이 커피의 쓴맛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 고소함에 취해 하루 네 잔, 때로는 그 이상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질문.
“이게 뭐라고 이렇게 탐닉하고 있는가?”
무엇이, 어떤 힘이 나를 이토록 커피에 집착하게 만들었는가? 그 맛인가? 사진 찍기 좋은 라떼 아트인가? 카페인의 일시적 각성인가? 질문의 끝에서 발견한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있어 보여서.”
화려한 스타벅스 테라스에 카페라떼 한 잔 놓고 노트북을 펼치면, 그것은 세련된 도시인의 표상이 되었다. 아침마다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출근하는 모습이, 마치 능률적이고 바쁜 현대인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결국 커피는 음료가 아닌, 하나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웃기네? 이것 한번 끊어봐야지.
호기심에 나는 지난 일 년간 가계부를 썼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2024년 한 해 동안 커피와 그에 관련된 소비에 240만 원. 한 달 월급에 맞먹는 액수였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같은 기간 의료비 지출도 함께 증가했다. 커피는 나의 피로를 가리는 연막이었을 뿐, 술과 고기로 만든 과부하를 카페인으로 밀어붙이는 악순환의 고리였던 것이다. 깨달음은 종종 우리가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숫자와 사실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법이다.
몸의 치유는 나쁜 것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멈추면 보이는 것이 있다. 커피를 끊은 첫 주, 나는 마치 내 두개골이 갈라질 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뇌종양이라도 생긴 것일까, 두려움에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의 대답은 단순했다.
“커피를 끊어서 그래요.”
아이러니하게도 커피는 두통을 억제하는 성질이 있었다. 그래서 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끊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내 몸이 얼마나 혹사당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스스로를 향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지, 나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커피라는 이어폰이 그 비명을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피곤하면 자고, 힘겨우면 쉬어야 하는 몸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거스르며 살아왔던 것이다. 3주 만에 두통은 사라졌다. 금단의 장벽을 넘어선 것이다.
이제 커피를 끊은 지 89일째. 속은 편안하고, 잠은 깊어졌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잘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축복과도 같은 증상이다. 내 몸이 다시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니까.
커피의 사슬에서 벗어나자, 다른 사슬들도 눈에 들어왔다. 고기를 끊을 수 있었고, 술도 절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들은 어쩌면 모두 없어도 되는 것들이었다. 그 비용과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는 이제 내면을 탐색하는 데 쓰이고 있다.
내 몸의 구석구석을 느끼고 살피면서,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건강한 육체는 명료한 정신을 낳고, 그 정신은 이제 영적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
깨달음이나 초월적 체험을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수치로 확인된 사실들이 이 여정을 시작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 백일이 다가오면서, 나는 이것이 영원한 변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고 있다.
이제 여러분께도 권하고 싶다. 자신이 탐닉하는 것,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습관 하나를 잠시 내려놓아 보라고. 그것이 어떤 연유로 당신의 삶에 들어왔는지, 그 습관이 당신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그리고 혹시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이렇게 돼버렸네?” 싶은 순간에 마주치거든, 잠시 멈추어 보라고. 그 정지의 순간에서 의외의 자각이 찾아오기도 한다.
탐닉의 사슬은 단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끊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할 수 있다. 멈추는 것. 그냥 멈추는 것에서 모든 변화는 시작된다. 이것이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이었을까?” 이 물음 앞에서 당신은 더 이상 습관의 노예가 아닌, 선택의 주인으로 서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