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예?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요?”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날 오후, 햇살은 여전히 창문을 통해 따사롭게 거실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 한마디는 내 세계의 축을 순식간에 기울여 놓았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온 가족이 100분 쇼를 시청하며, 이덕화의 “부탁해요~”라는 친근한 멘트에 다음 가수가 누굴지 기대에 찬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던 그 찰나,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늘 내게 ‘말대꾸’한다고 눈을 크게 뜨며 야단치시던 엄한 외할아버지. 투박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손길이 이제는 영원히 닿을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 그리고 아까까지 웃음꽃을 피우던 엄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져 통곡하듯 울던 그날의 모든 순간이 사진처럼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삶과 죽음 사이의 가느다란 경계가 한 통의 전화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장례식을 마친 후, 엄마는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자식들에게 맨발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목욕할 때마다 발뒤꿈치에 굳은살이나 때가 끼지 않도록 집착에 가까운 신경을 쓰셨다. 베이비오일을 정성스럽게 바르며 매끈하게 발뒤꿈치를 관리해 주시던 엄마의 손길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함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어느 가을날, 제주도산 경석으로 내 발뒤꿈치를 평소보다 훨씬 세게 밀어내시던 엄마의 손길에 따가움을 느낀 내가 물었다.
“엄마, 왜 이렇게 발뒤꿈치에 신경을 써?”
그때 엄마의 눈동자에 스며든 슬픔이 아직도 내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다.
엄마가 겪었던 그날의 기억은 이러했다.
외할아버지는 겨울밤,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홀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발견한 집주인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평화롭게 잠든 듯한 모습에 사인을 명확히 규명할 수 없었던 경찰들은 자식들 입회하에 부검을 결정했다.
축축한 안개비가 내리던 날, 부산 외곽의 시체 검안소.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통곡 소리가 어우러져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남자 형제 두 명은 부검실로 따라 들어갔고, 엄마는 낯설고 차가운 마당에 홀로 남겨졌다. 그날은 하늘마저 슬픔에 젖은 듯 서럽게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고 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허름한 가마니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쌀가마니인가 싶었던 엄마의 시선이 가까이 다가가자 얼어붙었다. 가마니 틈 사이로 창백한 손 한쪽이, 또 다른 곳에는 파랗게 변색된 발 하나가 드러나 있었다. 행려병자들이나 무연고 시신들이 실려와 임시로 보관된 모습이었다. 이런 충격적인 광경을 처음 목격한 엄마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그 공포와 슬픔이 뒤섞인 순간, 엄마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가마니 사이로 보이는, 여자로 보이는 한 시신의 발뒤꿈치였다. 푸르스름한 빛 속에서도 분명히 보이는, 평생을 고단하게 살아온 흔적이 새겨진 발뒤꿈치. 발톱 사이사이 거뭇한 때가 끼고, 각질이 일어나 허옇게 갈라진 틈 사이로 고생을 증명하듯 깊은 골이 파여 있었다. 마치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그 갈라진 틈 하나하나가 삶의 무게와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경황없이 신고 나온 엄마의 빨간 샌들 사이로 자신의 발뒤꿈치를 내려다본 엄마는 순간 오한을 느꼈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행려병자의 시체 사이에 섞여 누워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죽음 이후의 모습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이 엄마를 덮쳤다.
그날, 빗소리를 배경으로 엄마는 마음속 깊은 결심을 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을지라도, 죽더라도 남겨진 이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여자다운 소망을 품게 된 것이다. 마치 꽃잎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자신의 마지막 모습까지도 품위 있게 정리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시체 검안소의 비 오는 그날 이후, 엄마는 자신과 아이들의 발뒤꿈치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청결함을 넘어서, 삶의 존엄을 지키려는 조용한 몸부림이었다. 발뒤꿈치라는 작은 신체 부위가 엄마에게는 삶을 증명하는 흔적이 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동네 편의점을 급하게 맨발로 나가려다 문 앞에 멈춰 서서 다시 돌아와 양말을 신는다. 그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엄마의 지론을 단순한 강박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철학으로 존중한다. 내 입장이 되어도 그럴 것 같다. 죽음 앞에서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존엄성, 그것이 바로 단정함이 아닐까.
여행을 다녀야 글감이 생기는 나는 요즘도 여행을 떠날 때면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 마치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집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밀린 빨래를 하얗게 빨아 널고, 누가 와도 새집처럼 정돈된 공간을 만든 후에야 비로소 짐을 꾸린다. 여행이란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여는 설렘인 동시에,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공존하는 양면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혹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누군가 내 수습을 위해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이 사람은 삶도 참 깔끔하게 살다 갔구나…’ 하고 속삭일 그 뒷말이,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문장이 되길 바란다.
오늘도 나는 통도사의 붉은 홍매화를 보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이륙을 기다리며 이 글을 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이른 봄의 기운을 찾아가는 여정. 우리는 태어날 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지지만, 적어도 떠날 때의 뒷모습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100분 쇼의 마지막 순간처럼, 우리 인생이라는 쇼의 커튼이 내려갈 때 관객들에게 어떤 여운을 남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주변을 돌아보자.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중 단정히 하고 갈 것이 무엇이 있을지. 발뒤꿈치처럼 작지만 내 삶의 여정을 말해주는 흔적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게 다듬어져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성찰이 아닐까.
깔끔함을 철학으로 남겨주신 엄마. 나 역시 언젠가 떠나는 날, 내 뒷모습이 단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