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처음인 게 있다니. 인생의 무궁무진함에 놀라는 동시에, 개척해야 할 미지의 영역을 향한 승부욕과 호기심이 불타오른다.
약 열한 시간 전의 일이다. 오늘은 미라클 모닝이 거행되는 새벽 출근일. 회사에 6시 반까지 가야 하는 이날엔 택시를 이용한다. 언제나의 새벽 출근이 그랬듯, 어김없이 출근이 아닌 철야 후 마침내 귀가하는 퇴근러의 몰골로 집에서 나와, am 6. 택시에 탑승했다.
"차가 춥죠? 나오자마자 손님 모시러 온 거라. 조금 기다리시면 따뜻해질 거예요"
어둑한 겨울 새벽엔 어울리지 않는 촉촉한 배려. 괜찮습니다 기사님. 저는 지금 저를 태우고 있는 이 차에게 어쩐지 미안한 지경이라, 저를 소독하는 느낌이 필요하거든요. 겨울의 냉기, 서늘함. 시급하던 참이에요.
나를 태운 차에게 자꾸 미안해지는 것이, 혹여나 나로하여금 이 청결한 택시가 오염 및 전염되지 않게, 쭈그러져 회사로 달리는 길. 그런데 아무래도 이 택시 좀 이상하다.
주 1,2회씩 새벽 출근 10년. 그 세월의 탑승만으로도 택시라면 상당한 데이터를 구축한 내게, 어째서인지 이 차에선 탔을 때부터 지금껏 못 느껴본 상경한 기운이 감지된 것이다.
추울 거란 차에, 무릇 몸이 움츠러들어야 할 겨울 새벽 첫 손님이 탄 차에, 왜 냉기가 돌지 않지? 심지어 왜 노곤하지? 왜 며칠을 안 온 잠이 여기서 오려고 하지? 내 인생 택시사를 통틀어 처음인, 이 이질감의 출처는 대체 무엇이지?
부족한 수면과 누적된 피로에 감각계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 했다. 더웠다 추웠다 하니 혹시 갱년기가 얼리 체크인? 정신 나간 생각도 했다. 그러다 마주한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상투적이어도 할 수 없다. 의심했다 내 눈을. 이 암흑 속 저 영롱한 불빛, 엉뜨 맞아? 나 택시 탔는데? 택시 뒷 좌석에도 엉뜨가 있는 거였어? 있을 순 있지. 근데 내가 켜질 않았는데 지가 켜질 수 있어?
기사님 저 울어요.
"차가 춥죠? 나오자마자 손님 모시러 온 거라. 조금 기다리시면 따뜻해질 거예요" 여기서 의심했어야 했다. 조수석이 아래로 내려 꽂히는 롤러코스터처럼 아래로 꼬꾸라져 있을 때, 큰일 내실 분이네 알아봤어야 했다.
지금 이거 몰카가 아니라면 기사님은 산타클로스,
이 택시는 루돌프인 건가요?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인지, 지나온 새벽 만난 기사 아저씨들은 다 그렇게 친절하셨다. 귀한 일이니 나도 귀한 손님이 되고자 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상냥이란 별 게 아니었고 별 것 없었다. 인사 잘 드리기. 말씀 건네시면 길지 않은 대답이나마 친절하게 전하기.
그러면서도 택시란 게, 급하거나 불편하거나 이르거나 늦거나 춥거나 덥거나 등등한 극한 상황에 고르는 선택일 때가 많으므로 딱 그 정도의 예의와 배려만 생각할 뿐. 그 이상의 여유는 준비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오늘 새벽의 내가 어김없이 그랬다.
어떻게든 남기고 내 방식의 감사를 전하고파 사진은 찍어놓고, 그것도 와중에 촬영음이 걱정이시고 놀라실까 소리 안 나게 앱 카메라로 찍어 놓고는, 정작 내릴 때는 쑥스럽다는 핑계로 따순 배려에 대한 다른 인사 한마디를 더 못 보탰다. 그래서 이렇게 내내 후회다.
보름 후 마흔. 이 나이에도 처음을 경험하고 이 나이에도 아직 배운다. 것도 오늘은 무려 세 개나 배웠다. 1. 은혜도 은혜지만, 후회 갚으며 사는 일에도 열심이자. 2. 뒷좌석까지 엉뜨를 깔아 놓는 택시도 있었다. 3. 택시에서 받는 엉뜨는 여느 엉뜨보다 10배 더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