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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Nov 08. 2021

아니 퇴근하고 뭘 꼭 해야 해?


"퇴근하고는 뭐하세요?"

말이 요즘따라 얼마나 꼴 보기 싫지. 문을 받을 때마다, 퇴근하고 꼭 뭘 해야 해요? 지금까지 일했는데?라는 말이 술을 비집을 기세라 참느라 애를 먹다.


퇴근: 일터에서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거나 돌아옴


심으로 궁금했다. 어사전도 저리  전쟁터에서도 일단 오늘은 가라며 풀어준 마당 퇴근하는 것도 일인  서울 바닥에서, 자기 전까지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에도 굳이! ! 정녕! 무얼 해야만 하는 것인.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춘엔 직무유기 인생엔 대역죄, 한 순간에 범죄자 되는 건가. 저는요 어떤 날엔 집에 가만 누워서 쉬는 것도 힘든데요 하면?

그 길로 노답인 애 되는 거고?


그럼 나도 하나만. 내가 퇴근하고 뭐 하는지 대체 왜 물어보는 거야? 내가 늘 저녁은 뭘 하고 보낼지 진짜 그게 궁금해서? 에이 그럴 리가.


퇴근하 뭐하냐 게 정말 순수 나의 오늘 저녁에 대한 호기심이라면 얼마든 고관심으로 받아들 일이겠지만, 문제는 그 질문에서의 퇴근 대게 특정한 날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러니까 거기서의 퇴근 후란 매일의 퇴근 후를 한다고 보면 되는 것.


정리해보자면 '퇴근하고 뭐하세요?'는 사실,

운동하시나요? 공부하 거 있으세요? 따로 배우 건? 활동하시는 동호회? 등등… 을 다 합친 한 마디


자기 계발 or 자기 관리, 하시나요?

이었다.




내가 저 질문을 주로 받은 건 소개팅이나 회사, 또는 딱 지인이라 할 만큼의 안면 있는 이들로부터였다.


이 비중을 따자면 역시나 소개팅이 압도적. 그 자리에 내가 안 나가는 일은 있어도 저 질문이 안 나오는 일은 없다고 할 만큼, 100% 출석을 자랑했다.


어쩜 당연한 거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둘이 세상 정적인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는데 저만큼 만만한 물음이 또 어딨겠는가. 슨 답이 나오든 얘기할 꺼리 다양하고 돌발은 생기기 힘든 안전빵 문.


그러니 소개팅에서의 저 질문매뉴얼것뿐이란 걸 면서도, 희한하게 들을 때마다 달갑지가 않았다. 속 뜻 그대로 묻지 못할 말이면 하질 말지, 뭘 저렇게 숨겨서 물을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도 그럴게 금까지 데이터로 보았을 때,  질문은 내 여가가 궁금서라기보 내가 꾸준히 관리하면서 성장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고 싶어 던지경우가 많았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안 달갑다한들 쌍방이 치르는 면접인 소개팅에서, 뻔히 알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 안 하는 건 또 녀의 자세가 아지니, 몇 번은 생각 봤더랬다. 근하고 한다고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는지.


1. 운동해요.

나이가 드니 체력이 확실히...

러다 예뻐지기까지 하면 더 좋고요.


2. 어학 공부요.

코로나 끝나면 어디든 갈 건 

그땐 통역 앱 없이 갈 거예요!


3. 요리 배워요.

요리만큼 배워서 남 안 주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4. 동호회 하는 게 있어서요.

책 읽어요.

이거라도 안 하면 한 달에 한 권도 못 읽는 거 있죠.


... 별안간 현타가 왔다. 그냥 일상을 얘기하면 그만인 거였는데도 뭐랄까.

저 이렇게 열심히 살아요! 꾸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알아주세요! 하는 느낌이랄까. 퇴근 후 누가누가 더 열심히 사나 배틀하는 것 같은 그런 거.


저녁 알차게 내는 게 얼마나 멋진 건진 나도 아는 바. 말이 퇴근이지 출근이 코앞으로 다가온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쪼개, 새로운 걸 배우거나 이미 가진 걸 더 갈고닦는다니. 그 밤을 몽땅 쉬기만 해도 피로 회복이 안 되는 이 바쁜 현대사회에 분명 박수받아 마땅할 노력과 투자 암.


그걸 모른다는 게 아니라, 내가 불만인 건 것들이 대단한 거라고 해서 그 반대가 하찮은 것처럼 돼버리는 공식이었다. 여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면 바로 '빈둥빈둥'을 붙여 생각하고, 관리와 발전라곤 없는 도태된 인생쯤으로 여기는 시선 같은 거.


오지랖을 넘어 오만 같았다. 꼭 물 밖에서 뭔가 열심히 해야만 인생 뜨겁게 사는 건 아닌데. 보기엔 그저 물에 둥둥 떠 있는 게  것 같아도,  속에선 가라앉지 않으려고 죽을힘 다 해 물장구를 치고 있을 수도 있는 건데. 우리가 볼 땐 상 편 보이는 오리도 사실 물 밑에선 쉬지 않고 발헤엄을 치, 사람도 을 수 있는  말이다.


생각이 저기까지 미치 갑자기 그 질문에 신물이 났고 그래서 한 번은,


"그냥 쉬어요. 뭘 하고는 싶은데 딱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일단 퇴근하면 피곤해서 뭐든 할 에너지가 없는 거 있죠"


해봤더랬다. 지만 분명 봤다. 실망하는 표정.


"하시는 운동이나 그런 건 없 거예요?

뭐 배우시는 건? 여행은요? 전시회 같은  보는 건 안 좋아요?"


아유 하죠 운동.

쉬지 않고 인생을 배워가는 중이고,

여행은 갈 수만 있으면 언제든 콜.

전시회도 볼 줄 몰라 그렇지 우와하면서 잘 봐요.


근데 그게 중요한가요. 아무것도 안 한다 답할 때의 저와 저것들을 한다고 할 때의 제가 각기 다른 사람인 건 아닌데 말이에요.




퇴근 후의 시간이 곧 미래 것처럼 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장 오늘을 사는 것도 버거운 요즘, 성장과 발전만 대단하다 할 게 아니라, '유지'하는 것도 그 못지 않게 훌륭한 일임을 알아주는 센스를 지녀준다면 서로가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아 여기까지 하고, 그래서 일단 그 잘난 퇴근 후에 난 오늘 뭘 할 거냐면!


오늘도 살아내느라 애썼으니까, 문제없이 내일이 오게끔 해놓느라 고생했으니까, 심지어 거기다 비까지 오니까? 이불 뒤집어쓰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넷플릭스나 봐야지.


나는 내일 새벽 출근에 야근이니까 저녁을 충분히 쉴 필요가 있고 계속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 퇴근해서 그저 쉬어도 될 자격도 있어.


그러니 오늘만큼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 말고 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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