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단순해진다. 인연사 번잡한 게 싫어지고 온갖 수식으로 치장해야 하는 사이는 피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게 무어건 한껏 준비해야 하는 만남. 이를 테면 식사 메뉴부터 대화 소재, 상대방 이야기에 선보일 리액션까지, 신경 써야 할 것 투성인 골치 아픈 연과의 이별이 생각보다 쉬워지는 것이다.
물론 어릴 땐 상상도 할 수 없던 일.
그땐 누구랑 소원해질라치면 뭐가 그리 아쉽고 서러운지. 내가 더 노력할 걸 반성하고 후회하고... 그렇게나 안간힘을 썼더랬는데. 함께한 역사가 눈에 밟혀 돌아서지지가 않았는데. 나이가 뭔진 몰라도 대단하긴 한가보다. 그 숫자 조금 높아진다고 이런 것도 다 변하는 걸 보면.
하기사 길어야 100년 밖에 안 되는 인생. 좋은 사람 만나기도 빠듯한 마당에, 굳이 만나기 전엔 부담되고 마주하는 동안엔 불편하며 헤어지고는 꺼림칙한 이와의 만남을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
거기다 신기하게도 그런 감정은 꼭 상대도 나와 비슷하게 느끼기 마련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마냥 불편하거나 불쾌한 일만도 아닌 듯하다.
이왕이면 다들 잘 살고 싶어 하는 세상.
더 즐겁고 편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고
또 절로 하게 되는 인연의 단절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 지금.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진 원망도 미련도 없는 아주 특이한 이별들이 허탈하지만은 않은 건, 그간 지키고자 악착같이 매달리고 잃기 싫어 고집부렸던 무수한 과거가 있기 때문이리라.
비움을 결심하니 추억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웠고, 하여 나는 매일 외롭기를 자처한다.
남지 않을 사람과 되지 않을 관계를 위해 애쓴 건 지금 껏 한 걸로 충분한 것 같아서. 어차피 인간은 외로운 거고 인생은 혼자인 거라면, 쓸쓸해지는 연습도 이제 해봐야 하니까 말이다.
얼마 후면 만날 서른일곱의 나는 홀로 남는 걸 즐기진 못 하더라도 두려워하진 않는, 혼자서도 제법 근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그 정도만 되더라도, 나는 꽤 곱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 것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