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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방파제에서 사진을 찍고 해변의 모래사장을 맨발로 거닐었다. 도깨비 드라마가 촬영되기 전의 영진해변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숨은 명소였다. 한적한 바닷가는 갈매기들의 천국이었다. 우리는 새우깡을 사서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미정이의 핸드폰이 울려 사진 찍기를 멈추었다. 전화를 받던 미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쩌지?. 미용실 원장이 지금 급하게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고 나보고 빨리 돌아올 수 없냐고 물어오는데. 내가 아직 수습 미용사라 원장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서. 정화야 어떡하지?”
“어쩔 수 없지. 나도 같이 갈게.” 정화의 말에 나는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직 정화와 데이트를 더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나는 문득 동기인 기주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기주야. 네가 미정 씨 데리고 가면 어떨까? 어차피 우리도 내일 돌아가니까 하루 정도 일찍 가도 크게 억울할 것 없지 않아? 오며 가며 미정 씨와 데이트도 하고.” 나의 제안에 기주도 반가운 듯 “그럼. 미정 씨 혼자 보내기에 나도 불안했는데. 미정 씨 그렇게 해요.”
“정화야 어떻게 할래? 나는 기주 씨와 같이 가도 괜찮겠는데. 하루 더 놀다가 내일 윤기 씨랑 같이 돌아와.”
미정의 제안에 정화는 잠시 갈등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다시 기주를 보며 눈치를 주자 “정화 씨 그렇게 해요. 내가 미정 씨는 고속버스로 잘 모셔다 드릴 테니 내일 해진이 차로 윤기와 같이 서울로 돌아와요. 그렇게 해요.”라고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기주 씨 미정이 잘 부탁해요. 너는 도착하면 전화 주고.” 정화도 우리의 말에 동의한 듯 미정과 기주를 보며 말하였다. 나는 오늘 밤은 오롯이 정화와 둘 만의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패인 하얀색 끈 러닝을 입은 정화의 가슴골을 바라보며 묘한 기대감에 들떠 올랐다.
그날 밤 나는 둘만의 데이트를 위하여 해진에게 차를 빌렸다. 해진은 자기들은 걱정하지 말고 정화와 서울 가기 전 마지막 데이트 잘하라고 하였다. 동규는 내 눈을 바라보고 부럽다는 듯 싱긋 웃었다. 나는 해진의 흰색 세피아 운전석에 앉아 정화의 안전벨트를 매주 었다.
나는 해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정화와 둘이서 밤의 하조대 백사장을 걸었다. 넘실대는 파도와 끼륵끼륵하는 기러기들의 울음소리가 노래하듯 우리를 반겨주었다. 도로가의 가로등 불빛에 하얀 모래가 반짝였다.
“정화 씨를 만나서 이번 여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저도 올해 여름은 특별해요. 오랜만에 바다에 오기도 했고요.”
“미정 씨랑 자주 여행하지 않으세요?”
“서울에선 서로 일이 바빠 여행 올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둘이 여행을 한 것은 서울 와서 처음인 것 같아요.”
“우리 서울 가도 계속 만날 수 있죠?” 나는 정화의 손을 잡고 물어보았다. 정화는 말없이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낮에 해진과 동규에게 신용카드를 주고 시내 금은방을 통하여 목걸이를 전화로 주문한 후 받아오도록 부탁하였다. 하트 모양의 펜던트에 CJH라는 정화의 이니셜을 새겨 넣은 화이트골드 목걸이였다. 나는 정화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웠다.
“이게 뭐예요?”
“올여름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정화 씨에게 주는 선물.”
“미안해요.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럼. 나 한번 안아줄래요.” 나의 말에 정화는 잠시 망설이더니 나의 허리를 가만히 포옹하였다. 순간 나는 정화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그녀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둘만의 여름밤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