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야반도주를 했다

(단편소설) 만년 차장 한만운 개납 생존기 - 10

by 하기

10. 그녀가 야반도주를 했다


최이정이 야반도주하였다. 그녀는 피트니스 클럽 개관을 위하여 회원들에게 투자금으로 받은 자금을 가지고 사라진 것이다. 헬스 트레이너는 나에게도 혹시 이정에게 돈을 빌려주었는지 물어보았다.

“아니요. 저에게는 모든 준비가 끝나 곧 피트니스 클럽을 개관할 것이라고만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황한 나는 황당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투자한 회원들과 대책회의를 열 예정입니다. 길 건너 호프집에서 할 예정이니 시간 되시면 같이 참여 부탁드립니다.” 트레이너는 긴장한 모습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치킨과 맥주를 시킨 후 남자 회원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대책을 숙의하였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렇게 감쪽같이 속이다니. 2년이나 같이 운동하면서 신뢰를 쌓았는데 하루 만에 사기꾼한테 당한 느낌이야.”

“그러게 매일 운동하면서 같이 대회 준비도 하고 계약했다는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기구 배치 등에 대하여도 물어보고 해서 완전히 믿었다니까. 500만 원만 투자하면 평생회원으로 운동할 수 있다고 하여 마누라 몰래 적금탄 것 입금했는데 마누라에게 들키면 혼쭐날 것 같아.”

“그래. 500만 원이나 투자했는 데 최이정이랑 재미는 좀 본거야. 연예인만큼 예쁘니까 하룻밤 품었으면 돈값은 한 거네.” 남자 회원 한 명이 빙긋이 웃으면서 놀려댄다.

“하룻밤은커녕 손 한번 못 잡아봤는데. 웃으며 줄 듯 말 듯하는데 더 애가 타더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뽀뽀라도 한번 해달라고 할 걸 그랬어. 후회되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내심 만족감을 느꼈다. 이정이 나에게 돈을 빌리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나를 달리 대했다는 것에 묘한 우월감이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월감은 얼마 가지 않아 깨지게 된다.

“1억 원 이상 투자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아. 그 남자랑 호텔에서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이 있더라고. 피라미는 상대 안 하고 큰 손들이랑만 놀아난 거지. 완전히 꽃뱀한테 당한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심장수술 후 거의 마시지 않았던 술을 연거푸 들이켜게 되어 사람들은 나도 말은 안 하지만 잃은 돈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는 듯 보였다. 나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술기운과 함께 가슴 쪽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더 이상 호프집에 앉아 있기가 힘들어진 나는 집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천장 위로 이정의 얼굴이 지나갔지만 나는 눈을 감고 애써 잠을 청했다.


개인 2팀 소속 오인희 반장의 남편이 식당을 개업하였다. 나는 등에 자그마한 혹이 나서 병원에 갈까 하다가 개업식 참석 후 다음날 가기로 마음을 먹고 먼저 개업식에 참석하였다. 팀장으로서 직원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이 기본적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국장 정식을 주메뉴로 한 한정식 집은 보기에 깔끔하고 음식도 정갈하여 같이 팀원들과 식사를 하며 사업번창을 기원하는 덕담을 오인희 반장에게 건네었다.

“앞으로 잘 보여야겠네. 음식이 맛있는 거 보니 식당이 대박 나겠어요. 오반장. 남편분이 세프라는 데 조만간 사모님 소리 듣겠는걸.”

“아니에요. 아직 많이 부족해요.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오늘 음식은 남편이 특별히 준비한 거니까 부담 없이 마음껏 드세요.”

오반장은 남편의 음식 솜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음식을 먹다가 담배를 한 대 피기 위하여 밖으로 나왔다. 심장판막수술 후 금연을 하여 내내 피지 않았던 담배를 이정의 야반도주 이후 다시 피우게 되었다. 등에 난 혹이 자꾸 당겨서 자리에 앉아 있기가 불편했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식당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정문의 자동문에 부딪혀 기절을 하게 된다. 식당 개업 전으로 자동문에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표지를 해서 개폐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데 아무 표지도 없는 자동문이 열려 있는 줄 알고 나는 빠른 속도로 들어오다가 문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기절을 한 나를 팀원들이 부축하고 오반장이 119 구조대를 불러 앰뷸런스로 병원에 가게 되었다. 차 안에서 의식을 되찾은 나는 집 근처에 있는 B대학병원으로 가 달라고 구조대원에게 부탁을 하였다. 나는 응급실로 실려가 머리에 이상이 있는지 뇌 CT촬영을 해 본 결과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나는 병원에 온 김에 등에 난 혹에 대해 의사에게 상태를 물어보았다. 의사는 나의 등에 난 혹을 자세히 보더니 혹시 모르니 심장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하였다. B대학병원에 나의 심장판막수술기록이 남아 있어 수술과 관련한 부작용인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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