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세상에 하나 정도 꼭 있었으면 하는 서점에서 일어나는 남녀 주인공의 일상과 삶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이다. 요즘 베스트셀러의 대세가 힐링인데 이 소설도 힐링 판타지 계열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퇴직한 사람이 정식으로 등단하지도 않고 브런치에 끄적이다가 밀리의 서재 전자책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소설은 어떤 매력으로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올라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 책을 읽은 동기가 되었다.
"궁금해서요"
"뭐가요?"
"휴남동 서점이요."
"그냥 여기에 뭔가 있는 것 같았어요. 사람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그게 뭔지 궁금했습니다."
소설 본문 중에서
여주인 영주는 잘 나가는 대기업 사원이었다. 그곳에서 자기처럼 잘 나가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둘은 사업 파트너처럼 서로를 밀고 댕겨주며 이른바 출세 가도를 달린다. 먼저 지친 것은 영주였다. 번아웃이 온 것이다. 잠시 휴식을 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실망하고 퇴사와 함께 이혼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감행한다. 조직과 가정 속에서 볼트와 너트처럼 소모되는 자신의 인생과 꿈을 건지기 위한 그녀의 마지막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일생 동안 공들여 만든 성취, 좋아요. 그런데 아리라는 분의 말이 나중에는 이렇게 이해되더라구요.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긴 인생을 저당 잡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요. 마지막 순간에 한 번 행복해지기 위해 평생 노력만 하면서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행복이란 게 참 끔찍해졌어요. 나의 온 생을 단 하나의 성취를 위해 갈아 넣은 것이 너무 허무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이제 행복이 아닌 행복감을 추구하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을 바꾼 거에요."
소설 본문 중에서
남주 승우는 영주와는 다른 방법으로 번아웃을 해결한다. 능력 있는 프로그래머로 회사의 모든 개발 업무를 도맡다시피 하며 서서히 지쳐가던 승우는 퇴사 대신 야근과 주말 근무 등 모든 무리한 일정을 포기하고 글쓰기라는 취미를 통하여 활로를 개척한다. 블로그에 자신의 글과 평론을 올리며 출판사 대표와 설전을 벌일 정도로 인지도가 올라가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작가라는 부캐를 가지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다 행복하진 않아. 좋아하는 일을 좋은 환경에서 하면 모를까. 어쩌면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좋아하는 일도 포기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리거든. 그러니 우선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그럼 무조건 행복해질 것이다, 라는 말은 누구에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너무 순진한 말이기도 하고."
소설 본문 중에서
세상과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유치원에서 시작하여 학창 시절 내내 모범생으로 지낸 민준의 이야기는 오늘날 젊은이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결국 명문대에 입학하여 세상과 부모의 축복을 받지만 대학 졸업 후 맞닥뜨린 현실 세계는 명문대 졸업장으로만 그에게 입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수한 면접과 적성검사, 필기시험 등의 과정을 거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함께 하지 못해 아쉽게 됐다"는 문자였다. 모범생의 길을 포기하고 서점에 아르바이트로 취직하고 커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배우며 바리스타의 길을 도전하는 그의 모습을 서점 주인 영주는 애틋하게 바라본다.
민준 씨가 나를 위해 일해줘 고마운 마음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민준 씨 본인은 민준 씨를 위해 일한다고 여겼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어요. 그래야 민준 씨 역시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지난 제 경험이 가르쳐준 건 이 정도에요. '나는 남을 위해 일을 하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해야 한다. 나를 위해 일을 하니 대충대충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한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민준 씨는 휴남동 서점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혹시, 민준 씨를 잃어버린 채 일하고 있지는 않나요? 나는 이게 조금 걱정이에요.
소설 본문 중에서
성공과 승진만을 위해서 일한다면 성공과 승진 당일만 행복하고 성공과 승진을 위해서 일한 모든 시간은 지옥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직장이나 사회에서 행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살지 말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고 작가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나도 그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일인이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과정을 즐겨야 한다고. 그래야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는 순간, 또 언젠가 죽는 순간이 와도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제가 이런 걱정을 하는 이유가 짐작이 가지요? 제가 저 자신을 잃어버린 채 일을 했던 장본인이라서 그래요. 건강하게 일하지 못했던 과거가 저는 많이 후회돼요. 저는 일을 계단 같은 것으로 생각했어요. 제일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밟고 올라가는 계단. 하지만 실제 일은 밥 같은 거였어요. 매일 먹는 밥. 내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밥요. 세상에는 허겁지겁 먹는 밥이 있고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먹는 밥이 있어요. 나는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
소설 본문 중에서
무작정 대기업을 퇴사하고 계획 없이 지내다가 글을 쓰게 된 작가의 경험이 녹아 나서 그런지 소설의 곳곳에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았다. 나 또한 글을 쓰며 퇴직 후에 조그마한 북 카페나 서점형 카페를 오픈하는 꿈을 꾸고 있기에 더욱더 소설에 몰입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하기의 브런치 서점입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아니 이미 온라인에 서점을 차렸다고 보면 꿈을 벌써 이룬 게 아닌 가하는 만족감도 든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하기의 브런치 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