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김호연 소설가의 '불편한 편의점'은 편의점을 무대로 한 현대 판타지이다. 편의점이라는 배경은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소설의 내용은 모든 사람들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환상적 서사를 가지고 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백화점이라는 일상적 공간에 꿈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도입하여 백만 부 베스트셀러가 되었듯이 불편한 편의점도 편의점이라는 대중적 장소를 배경으로 힐링 판타지라는 스토리텔링으로 백만 부 베스트셀러에 다가가고 있다. 아니 이미 베스트셀러로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2편이 출간되어 한국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꿈꾸며 2년째 롱런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편의점을 소재로 한 소설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실제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작가의 진솔한 삶의 체험이 녹아있는 이 소설은 일본에서 성공하고 한국에서도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는 당일에도 편의점에서 일을 마치고 왔다는 작가의 독특한 이력은 독자들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한국의 소설로는 김애란 작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를 추천하고 싶다. 편의점에서 만나는 타인들과 고객으로서 접하는 아르바이트 직원과의 심리적 기제를 통해 편의점이 갖고 있는 인간소외와 현대인의 고독이라는 담론을 전면에 내세운 문제작이다. 자신의 포스 판매내역을 통해 점원에게 내면의 은밀한 부분을 들킨 수치심으로 단골 편의점을 버리고 새로운 편의점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혀를 내두르게 하는 작가 특유의 관찰력이 돋보인다.
부모님은 나의 어린 시절 '영일 상회'라는 동네 구멍가게를 하셨다. 슈퍼라는 형식으로 연쇄화 체인점이 생기면서 경쟁에서 밀려나 도시근로자의 생활로 돌아가셨지만 동네 입구에서 평상을 두고 운영되던 전방의 추억은 새록새록하다. 벽돌 깨기라는 게임기구를 전방 앞에 설치하던 날 동네 꼬마들이 오락기로 몰려들어 게임을 하던 기억, 평상에서 동네 주민들이 여름날 콜라와 쮸쮸바로 더위를 달래던 모습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간다. 그런 기억들이 불편한 편의점에 녹아 있다.
사람 사는 모습, 어딘가에 있을 법한 노숙자 독고와 인심 좋은 편의점 염 사장. MZ 세대로서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시현. 남편과 아들의 일탈로 속 썩이고 있는 선숙.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존심과 꿈을 내려놓고 직장 생활을 하는 경만이 좋아하는 참참참 메뉴. 극작가로 성공하기 위하여 마지막 배수진을 치고 있는 한물간 여배우이자 희곡작가인 인경은 김호연 작가의 아바타라는 느낌도 들었다.
힐링 판타지이지만 개연성이 살아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캐릭터들의 생생함이 이 소설의 성공에 가장 기여한 것 같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꾸준히 쌓은 작가의 내공이 불편한 편의점을 통하여 집대성되는 느낌.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소설가로 데뷔한 김호연 작가는 처음에 영화 시나리오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몇 편의 영화 작업에 참여하며 시나리오 작가로 경력을 쌓아가지만 생계를 해결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드라마 대본과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하다가 소설을 쓰게 되어 정식으로 데뷔 후 '연적' 등 몇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하였지만 대중들의 외면 속에 다음 작품의 출간이 미루어지는 무명시절을 겪게 된다.
불편한 편의점도 출판사를 찾지 못해 작가에게 종이책 출판을 포기하고 브런치에 올린 후 출간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성공 가능성이 낮게 평가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상에 선을 보인 이 소설은 작가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소설의 성공으로 그는 일약 스타작가로 발돋움하였고 문단이나 각종 기관에서 호출이 잦아졌다. 북 콘서트와 각종 인터뷰 등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작가. 그러나 그는 성공에 도취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2편을 출간하면서 꾸준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이제 다음 작품을 출판사와 독자들이 기다리는 소설가가 된 것 같다고. 그걸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내 책을 출간해 줄 출판사와 내 글을 읽어 줄 독자가 있다면 작가에게 다른 무엇이 필요할까?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20여 년의 고군분투와 생존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랜 분투 끝에 이루어 낸 작가의 성공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