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달까지 갈 수 있을까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를 읽고
우리는 정말 달까지 갈 수 있을까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를 읽고
나는 남들 다하는 주식을 하지 않는다. 주식을 하지 않는 나는 당연히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에 대한 투자도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도박의 유혹은 흔하게 우리 생활 주변에 널려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손에 있는 동전의 홀짝을 맞추던 게임 일명 '짤짤이'가 내가 경험한 최초의 도박이었다. 나는 이 게임에서 항상 패자였고 돈을 잃는 입장이었다. 가족들과 명절에 즐기던 화투게임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대학시절과 직장 초년생 시절에 밤을 새워하던 포커게임에서도 돈을 따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취미생활로 즐기던 당구와 바둑 같은 게임도 돈을 걸지 않고 하면 승률이 좋은데 돈을 걸고 하면 항상 지는 스타일이었다. 포커페이스와 냉정한 승부사 기질은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전형적인 새가슴이었던 나는 도박성이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나의 살 길이라고 판단하고 이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적금을 들어 모은 돈과 대출금으로 전세 아파트를 구했다. 2천만 원의 대출금을 다 갚아갈 무렵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21평 주공아파트를 4천만 원 대출을 끼고 구입하였다. 생애 처음으로 내 이름의 등기권리증을 받던 날,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거리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비록 낡은 복도식 아파트이지만 처음으로 세상에서 나만의 홈그라운드가 생겼다는 기쁨에 흥분하여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다. 3년 후에 집값이 매수시점보다 30% 정도 올랐을 때 또다시 빚을 내어 26평 민영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 집에서 7년을 살고 처음으로 복도식이 아닌 계단식 30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간 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이었다. 그때 받은 대출금이 2억 원 정도였는데 30년 장기 모기지론으로 대출받았다.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은 집을 사고 그 집을 사기 위하여 받은 대출금을 갚기 위하여 열심히 일한 것이 전부였다.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 한 푼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나마 집값이 꾸준히 올라주고 이사할 때마다 조금씩 평수를 넓힐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냥 추락하지 않고 꾸준히 우상향 하는 곡선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인생 커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흙수저의 운명을 거부한 사람들이 있다. 직장 언니의 ‘우리 같은 애들’이라는 말에 아프지만 동질감을 느끼고 자동차 딜러의 ‘너한테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에 같이 공분하며 딜러를 골탕 먹이는 그들은 마론 제과에 다니는 비공채 3인방 은상, 다해, 지송이다. 인사고과 시즌에 셋 다 똑같이 연 3년 무난(M) 등급을 받고 B03 무난이들이라는 채팅방을 만든 이들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없고 학벌도 배경도 없이 회사에 들어와 장래가 불확실한 전형적인 흙수저들이다.
이들은 대부분의 공채들이 선택하는 점진적인 우상향 커브를 거부하고 자기들의 인생의 출발선을 공채들과 같이 만들어 줄 수 있는 J커브를 꿈꾼다. 그것이 그들에게 가상화폐라는 구체적 현실로 나타난다. 로또와 주식 대박을 경험했던 우리 세대들이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투자, 아니 투기적 세계의 블랙홀이 비공채 무난이 3인방을 강력하게 흡수하며 소설은 페이지터너가 되어 하이퍼 리얼리즘의 세계 속으로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3인방에게는 각자의 아픈 손가락이 있다. 은상은 오래된 연인인 연하의 남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남자 친구에게 진로상담을 해주며 치의과전문대학원 진학을 권하며 뒷바라지를 해주었지만 남자 친구는 치의과전문대학원에 입학한 후 캠퍼스 커플이 되어 그녀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후 경제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자신의 장기를 살려 사내에 잡화를 판매하는 강은상회를 운영하는 등 부업을 하지만 직원들의 신고로 그마저도 때려치우게 된다.
다해는 버스운전을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 학자금 대출을 통해 대학을 졸업한다. 대출금을 갚느라 전세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화장실과 현관에 턱이 없어 먼지와 물이 방 안으로 스며드는 불편한 원룸에서 월세를 내며 지내고 있다. 어머니마저 사고를 당해 버스운전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할 형편이다. OO(Ofice Operator)라는 승진이 되지 않는 직렬로 회사에 입사한 지송은 일반공채직원들과 점심을 따로 먹는 등 조직으로부터 소외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이런 소외감을 잘 생긴 연하의 대만 연인을 사귀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지만 장거리 해외 연애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언니들은 욜로족(YOLO: you only live once,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며 생활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동생의 미래를 걱정하며 정신 차리라고 조언하지만 “나 얼굴은 포기 못해”라는 말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회사에서 조직이 주는 갑질과 모욕을 견디며 슬픈 노동을 하는 자신들의 운명에 체념하면서도 올록볼록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장류진 작가의 등단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을 통하여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다. 갑(오너)의 미움을 받아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항의 한번 하지 못하고 체념한 채 을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월급으로 받은 포인트로 구입한 물건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되파는 방법을 통하여 카드 포인트를 현금화하는 생존 방식을 찾아낸 카드회사의 직장인. 주인공은 사장의 명령으로 거북이알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그녀를 만나 황당한 사연을 듣고 회사에 돌아온다. 회사의 컴퓨터에 접속하여 자신만의 소확행인 클래식 연주자의 팬 채팅방에서 회원들과 스타의 사진을 교환하며 행복해하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MZ 직장인.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라는 작가의 위로는 작가의 첫 장편 ‘달까지 가자’에서도 관통되는 정서이다.
그녀의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으세요?”라는 질문은 28년 차 직장인인 나를 아프게 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죽어라고 일해도 포상과 승진은 항상 상사의 대학 후배들에게 밀렸던 기억. 마시지도 못하는 폭탄주를 강권에 의하여 마시고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다 게워내고도 회식 자리로 돌아와 또다시 권하는 술잔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경험. 학연과 지연으로 엮인 직원들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받고 식당에서 혼자 머쓱하게 점심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그 순간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아무도 없는 휴게실 벤치에 누워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직장생활 동안 갑질을 하며 타인의 영혼과 인격을 모욕하던 그들은 행복했을까? 소설 속 팀장의 모습에서 그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커피집의 커피는 팀원의 불편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주문해서 마시고 마는 집요함. 연월 도사라는 점집에서 팀원들의 비밀은 다 같이 듣고 본인의 비밀을 말할 때는 팀원들을 물리치는 노련함. 직장에서 팀원들에게 미움받는 팀장이지만 팀원들의 업무태도와 능력은 꿰뚫어 보는 통찰력. 이런 장점을 가진 그도 조직으로부터 갑질 당하고 모욕을 받는 직장인의 슬픈 운명은 피해 갈 수 없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감원으로 퇴직 압박을 받는 팀장은 강릉의 유명한 커피전문점에서 바리스타가 되기 위하여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지에 빠진다. 가상화폐로 일확천금을 벌고 퇴직을 준비하는 비공채 3인방이 강릉으로 이별여행을 오고 팀장을 만나게 된다. 팀장의 모습에서 직장인의 운명을 공감한 다해는 오랜 미움을 털어내고 팀장을 바라본다.
이더리움 투자를 통해 결국 은상은 33억을 벌었다. 성수동에 꼬마빌딩을 구입하여 건물주가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전 남자 친구는 그녀를 찾아와 재결합을 원한다. 2억 4천만 원을 번 지송은 비전 없는 회사를 그만두고 대만의 연하 남자 친구와 연애시절의 경험을 살려 흑당 카페 오픈을 준비하고, 3억 4천만 원을 번 다해만 다른 선택을 한다. 번 돈으로 월세를 벗어나 난생처음 전셋집을 구한 그녀는 ‘일단은 계속 다니자’라는 말로 직장에 대해 유보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는 제과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전세를 구하면서 그전보다 여유로워진 마음이 직장에 대한 애정을 다시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 3인방의 앞으로의 행보와 그들의 후일담을 담은 또 다른 소설을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소설 속 주인공은 직장을 계속 다니지만 현실 속 소설가는 소설의 연이은 성공으로 인한 계속적인 글 청탁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퇴사를 하고 만다. 월급날 자기만의 소확행을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슬픈 노동에서 해방된 장류진 작가. 그녀가 앞으로도 소설을 통하여 우리를 달까지 보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통하여 계속 달까지 갈 수 있을까? ‘돈도 자기 좋아하는 사람한테 가더라.’ 소설 속 은상의 말을 통해 작가는 대답하고 있다. 앞으로 나오는 그녀의 작품도 그녀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는 영원한 만월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