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디디의 우산 중 d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은 지금은 잊힌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입장벽이 낮지 않은 소설이다. 여러 번 읽어서 이야기를 곱씹어야 진짜 맛이 느껴지는 작가 특유의 문체가 매력적이면서도 가독성을 방해하는 이중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우산이 인연이 되어 만난 연인 dd를 버스 사고로 황망하게 여의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d는 한때 번성했지만 이제 슬럼가로 쇠락해진 세운 상가에서 택배 일을 하며 전기제품 수리 업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 여소녀를 만나게 된다. 여소녀의 딸은 인적이 없어지고 사라져가는 세운 상가에서 일하는 아빠에게 질문한다.
그러니까...... 세운 상가에 사람이 많았잖아. 아빠가 알고 지낸 사람들. 아빠만큼 오랫동안 거기서 장사한 사람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 수리실에 가 있으면 빵빠레나 감자칩이나 양갱을 사주던 아저씨들, 아줌마들. 그들이 지금은 상가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다 어딜 갔느냐고 딸은 묻고 있었다. 어디 갔느냐고? 여소녀는 내심 놀라며 답했다. 아니 글쎄...... 갔지. 다 갔지.
어디로?
어디 간 자도 있고 아예 가버린 자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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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서사의 흐름이 소설의 전형적 양식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 유행하는 에세이 소설의 시조라는 생각도 든다. 소설 형식의 해체를 시도하며 소설 형식의 지평을 한 차원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2019년 교보문고 선정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로 뽑히기도 하였다. 내용이나 형식적인 면에서 전위적인 이 소설은 그만큼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약한 이들에 대하여 혐오와 배제를 일삼는 사회에 대한 일갈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다.
d가 혐오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같이, 그들도 같을 것이다. 똑같이 혐오스러울 것이다. 혀를 내밀어 음식을 먹고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 치고 다니고, 자신이 지닌 사물로 사람을 찌르고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며, 알고도 굳이 개의치 않고, 비대한 자아와 형편없는 자존감이 뒤죽박죽 섞인 인격을 아무에게나 들이대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타인. 거짓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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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녀와 만나면서 오디오의 세계에 귀를 열게 된 d. dd가 갖고 있던 LP 판을 듣기 위해 백만 원이 넘는 전축과 앰프, 스피커 세트를 구입하게 된다. 이명과 난청에 시달리던 그에게 전축 스피커를 통하여 나오는 음악은 모르던 세계를 알게 해 주는 은밀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죽은 dd와 합일되는 즐거움과 함께.
전축과 앰프와 스피커를 가져 본 적이 없는 d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공간을 공간이 되게 하는 소리. dd는 그것을 들어보았을 것이라고 d는 생각했다. LP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d는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듣고 한 번 더 들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소녀는 스톱 버튼을 누르고 조금 기다렸다가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불규칙하고도 일정하게 지글거리는 잡음이 내내 이어졌다. d는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바늘이 먼지를 긁거나 잡다한 흠을 읽는 소리라고 여소녀가 답했다. 그 소리는...... d가 듣곤 하는 이명, 잡음과도 유사했는데 음악과 더불어 그것은 음악처럼...... 음악의 일부처럼 들렸다. d는 그것을 더 듣고 싶었고 가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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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의 아버지는 실제 세운 상가에서 오디오 수리점을 하였다고 한다. 대학교를 중퇴하고 세운 상가에서 아버지를 돕던 추억이 소설 '디디의 우산'에서 핍진한 묘사를 통하여 구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이 뒷받침된 세운 상가에 대한 세밀한 터치는 독자들을 작품의 배경 속으로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황정은 작가는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가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젊은작가상을 연속 수상하며 문단의 주류로 진입한다. 이후 발표하는 소설마다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지목되고 있다. 소설 외에 방송 진행에도 소질을 보여 문장의 소리 진행자를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도서 팟캐스트의 일인자 격인 '책읽아웃'을 오은 시인과 함께 번갈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산문집 '일기' 발간으로 작품세계를 넓혀가는 그녀의 새로운 작품을 고대하는 것은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몫이 될 것 같다. 부디 한국문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꾸준히 좋은 소설을 양산하는 작가로 계속 성장하길 많은 독자들과 함께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