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멋진 슈트에
세련된 차를 타고
처음 사무실에 왔었지
베일 듯 각진 모습으로
프린터에 날렵하게 자리 잡고
일정표며 보고서며 성과표로
산출되는 너의 모습은
정말 의젓했다
일 년간 캐비넷과 서고를
부지런히 오고 가며
노란색 파일에 담겨
활약하던 너
인사이동 전 날 분쇄기에 갈려
너의 일 년 동안의 노고와 추억이
조각조각 제분될 때
내 마음은 찢어지는 듯 했다
마침내 가루가 된 너는
검은색 비닐수의에 담기어
화장터에서 소각되는 운명
그러나 너무 슬퍼마렴
정기감사기일이 되면 우리는
스캔되어 전자서고에 헌액된
너의 분신을 불러내어
삼겹살과 소주 한 잔으로
너와의 추억을 반추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