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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풀코스는  완주 실패, 넘어지는 부상까지

보스턴 마라톤 도전하다

꽈당!

천천히 내딛고 있는데 내 발에 내가 넘어진다.  

손을 찧고 어깨를 찧고 왼쪽 얼굴이 시멘트 바닥에 찧는다.


어! 이러면 달리기 힘든데...

계속 달려야 하나, 멈춰야 하나...

정신 차려보자.


42.195km 중 19km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미 언덕이라고 하기보다 봉우리라고 할만한 구간을 2곳이나 넘어서서 이미 다리의 힘은 빠질 대로 빠졌고 최대한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가보자는 마음으로 뛰고 있었다.


걷지만 말고 천천히 달려서 가보자. 울릉도 마라톤 풀코스는 최고 난이도 코스다. 트레일 러닝 코스라고 해도 될 만하다.

무릎은 양쪽 다 까져서 피가 나고 있고 선글라스는 부러졌다.

선글라스에 얼굴 비춰보니 광대 부근과 턱 부근이 찰과상이 있다.


울릉도 한 바퀴를 돌아야 풀코스인데 절반에도 못 미치는 19.8에서 워치는 멈춰 있다.


멀리서 남자 두 분이 괜찮냐며 뛰어오신다.


119를 부르고 치료부터 해야겠다.

일단 오늘 풀코스 도전은 포기한다!

제18회 울릉도 마라톤 대회라서 경찰차가 바로 왔고, 대회 관계자 차, 119까지 모두 왔다.

119로 울릉도 의료원으로 실려간다.


내가 보기에도 찰과상 외에 특별히 부러진 곳은 없어 보인다.


얼굴과 무릎 상처를 구급차 안에서 소독을 하고 가는데 어이가 없었다.

5년 동안 달리기 하면서 훈련이든, 대회든 넘어진 적이 없었는데, 거기다가 스피드도 없이 천천히 달리고 있었는데 넘어지다니 헛웃음만 나왔다.


심란한 마음이었지만 구급차 대원이 소독하면서 마라톤 경험, 같이 동행한 사람 등을 물어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긴장감이 풀어져서 감사했다.


병원에서 다시 소독을 하고 가장 아픈 어깨 검사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이상이 없다.

마침  일요일이었고 당직이 성형외과 의사라 치료해 주며 귀가 후 성형외가 가서 치료를 잘 받으라고 한다. 당분간 햇빛, 물이 얼굴에 닿지 말라고 하고 새살이 올라오고 완전한 피부색으로 돌아오기까지 2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11월 jtbc 대회 연습해야 하는데, 9월 17일 부부 마라톤 대회가 있는데 하고 스쳐 치나 간다.

햇빛 보지 말라는데 이제 훈련은 어떻게 하나.

이 와중에 나도 모르게 다음 대회 걱정을 하다니.


울릉도 의료원 직원 분인지, 의료원장님인지 모르겠는데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대회장까지 태워다 주신다.


대회장에서는 하프 선수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남편이 2시간 44분으로 첫 하프 완주하는 모습을 멀리서 봤다.

사진 찍어줄 여유도 없이 멍하니 보면서 내가 풀코스 뛰고 있었다면 남편의 하프 완주는 볼 수도 없었을 텐데 이런 광경을 본 것도 넘어졌기 때문이다. 한참 뛰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밴드를 여기저기 붙이고 앉아있다니 마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왜 여기 있냐고?

무슨 일이냐고?

얼굴은 왜 그러냐고?


넘어졌다니까 어이없어서 웃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마라톤 인생에 좋은 자산으로 생각하라면서.


그렇게 좋게 생각하려고 하면서도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풀코스 완주자들이 하나, 둘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 그지없다.

힘들었지만 그 얼굴에는 광채가 나온다.

성취감, 자존감, 자신감과 기진맥진한 모습이 보인다.

제18회 울릉도 마라톤 대회는 여러 가지로 나에겐 힘들었다.

여행 겸 남편과 울릉도도 볼 겸 해서 갔는데 서울 신도림에서 버스로 동해시 묵호강까시 4시간, 배로 3시간이었고 대회 전날 관광버스 투어 패키지라 시간이 촉박하게 움직여서 단독으로 쉴 시간이 부족했다.


대회 당일날은 04시간 30분 조식, 06시 풀코스 출발이어서 무리한 스케줄이었다.


자세하게 투어 일정과, 대회 코스를 분석하고 가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

그나마 만족스러웠던 것은 오랜만에 남편과 1박 2일 동안 둘이서 여행하며 울릉도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바다를 보고 갈매기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행지에서만 주는 혜택이다.

울릉도는 화산섬이라 제주도와 아주 비슷했고 해안도로는 산책하거나 조깅하기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괭이갈매기가 항상 떼 지어 날아다니고 바다색은 깨끗함과 선명함으로 더없이 아름다웠다.

나리 분지에서는 마을을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거기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마신 차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어떤 추억을 마음에 담고 울릉도 마라톤을 기억할 것인가?


세상일에 좋고 나쁨이 없다. 모든 건 내가 해석하기에 달려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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