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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부상은 외상인가 내상인가

보스턴 마라톤 도전하다

지난 일요일 울릉도 마라톤 대회에서 넘어진 지 7일째다.


얼굴에는 큰 밴드로 광대뼈에 하나, 턱에 하나, 왼쪽 어깨에 하나, 양쪽 무릎에 하나씩 찰과상 부분에 총 5군데에 붙였다. 그리고 자잘한 손에 상처들.


평상시라면 손에 난 상처 하나만 있어도 신경이 쓰이는데 이건 몸 하나를 전체를 제대로 쉬라고 하는 모양새다.


일요일에는 귀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간신히 버텼다.


월요일에는 여기저기 멍들어 얼굴 주변은 눈탱이가 보라색 밤탱이가 되었고 턱에서 찰과상이라 먹을 때마다 아프고, 어깨는 욱신욱신, 양쪽 무릎은 새로 붙인 밴드 탓에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화요일에는 일상이 무너짐을 깨달았고 정신을 차리려고 했건만 차릴 수가 없었다. 말하기도 불편하고 얼굴을 가리고 독서모임 진행하기도 힘들어서 1개월간 쉬기로 했다. 비대면 하는 프로그램만 진행하고 있다.


수요일에는 수강하는 전자책 쓰기 강의장에 가지 못하고 마스크를 쓴 채 ZOOM으로 참석하는데 제대로 생각이 돌아가지 않는 갑갑함을 느꼈다.


목요일에는 시 쓰기 강좌 수강하러 가는데 무릎이 아파서 30분 거리를 1시간 걸려서 아주 천천히 걸었다. 이렇게 생활에 지장에 있는 부상이라니, 산책도 할 수 없다니 기분이 다운되었다. 걷기, 필라테스는 주 5일, 달리기는 주 3회 정도 했던 사람이 꼼짝없이 집에 있자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무엇보다 자꾸 우울해지려고 한다.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라도 움직여보자는 생각에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팔운동을 할 요량으로 침대에 앉아 아령을 들었다 내렸다 여러 가지 동작을 해보는데 얼굴에 힘이 들어가니 그마저도 내려놓았다.


그럼 누워서 해볼까


다리를 구부릴 수는 없으나 펼 수는 있으니 다리를 펴고 누워서 다리 올리기를 하니 복근에 힘이 들어간다. 역시 얼굴까지 힘이 들어가니 욱신거려 다리도 내려놓는다. 마음만 내려놓지 못하고 있구나.


옆에서 보던 남편은 헛웃음을 지으면서

"아직도 당신이 부상인 것을 못 받아들이는구나."

"내가?"

"그냥, 쉬어~"


일상이 무너짐을 그나마 받아들이는 데에 5일이 걸렸다.


금요일이 되니 이제 정신 차리고 할 수 있는 찾아야겠군.


토요일이 되어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역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다.


행동에 제약이 생기니 기존 일상의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산책할 수 있어서 감사

계단 오를 수 있어서 감사

필라테스할 수 있어서 감사

뛸 수 있어서 감사

전철 탈 수 있어서 감사

배우러 다닐 수 있어서 감사

마스크 안 쓰고 다녀서 감사

입을 쫙쫙 벌리고 쌈 싸 먹을 수 있어서 감사

서서 설거지 할 수 있어서 감사

바닥에 떨어진 것 집을 수 있어서 감사

세수할 수 있어서 감사

샤워할 수 있어서 감사

음식 할 수 있어서 감사

수업할 수 있어서 감사

식당에 가서 먹을 수 있어서 감사

활기가 있고 의욕이 넘쳐서 감사


내가 이런 일을 지금 하지 못해서 다운되는구나.


해외에서는 어떤 큰 사건, 사고가 생기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잊히고 나아지고 해결책들이 하나씩 생겨서 그러지 않을까.


아프거나 다쳐보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의 부상은 외상보다 내상이 더 크다. 다쳤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전처럼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마라톤은 절제와 인내의 운동이라고 생각해 왔다.

음식 절제, 훈련 절제, 페이스 절제, 욕심 절제 등이 없으면 완주도 힘들고 훈련도 힘들다. 이런 걸 경험한 사람이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니 계속 배워야겠구나.


2~3주면 나을 찰과상에 대한 인내심 부족이다.

이건 외상보다 내상이 더 크다.


병원 입원 안 하고 통원 치료 감사(입원, 오~ 싫어, 싫어)

새 모이처럼 조끔씩 먹을 수 있어서 감사

혼자 병원 갈 수 있어서 감사

책 읽을 수 있어서 감사

글을 쓸 수 있어서 감사

집에서도 배울 수 있어서 감사

천천히 걸을 수 있어서 감사

마라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감사

남편이 밥을 하니 감사

아이들이 집안일 도와주니 감사

부상으로 글 소재가 있어서 감사

인내심을 배울 수 있어서 감사

회복탄력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어서 감사

성찰, 성장할 기회라서 감사


상처 치료 기간 독서하고 글 쓰면서 더 성찰하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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