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마라톤 풀코스 도전
땀도 바로 고드름이 되는 영하 12도 날씨에 광명에서 한강 하프를 다녀왔습니다.
광명 마라톤 클럽 토요일 정모 훈련은 겨울이라 아침 07시였는데 날씨가 추운 관계로 08시에 시작했어요.
겨울이라 모자, 두꺼운 장갑을 끼고 넥워머, 눈이 시려우니 선글라스도 쓰고 레깅스에 발가락 양말 위에 양말 하나를 덧신었죠.
영하 12도라고 하지만 뛸 때는 날씨가 추운지 잘 모릅니다. 1km만 뛰어도 바로 열기가 생기기 때문이죠.
오늘은 하프 ~24km 훈련으로 한강을 다녀오는 날입니다. 날씨가 추워서 하프로 결정하고 한 줄로 나란히 워밍업 스트레칭과 드릴 운동을 하고 나섭니다.
현재 2024 동아마라톤 대비 100일 챌린지 39일차 토요일입니다.
100일 챌린지 전에는 주 3~4일 정도 러닝 훈련만 했는데 상하체 근력 운동을 더 하기 때문에 다리에 힘이 생기는 느낌이었어요.
서브 4를 향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풀코스 완주와는 또 다른 훈련이 필요하겠죠.
100일 챌린지도 날씨와 상관없이 계속하듯,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 겨울 훈련은 할 날이 며칠 없겠더군요. 헬스장을 등록한 것도 겨울이기에 해야 했고요. 여름에는 비를 맞아도 뛸만하지만 겨울은 미끄러우면 넘어질 우려가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확실히 다리 운동, 상체 운동을 해서인지 10km 달려도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어요.
10km 58분 95초에 달렸군요. 평균 페이스가 6분 7초 정도 되겠군요. 뒤에서는 6분 7초가 빠르다고 반환점을 돌고 올 생각을 하라고 고수님들이 말하더군요.
100일 챌린지 39일차 운동을 해 온 훈련의 힘을 믿었기에 이 속도로 완주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고수님들은 39일 전의 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요.
대회 때보다는 연습할 때 퍼지는 게 낫다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그래보자는 오기가 생겼어요. 삶은 도전의 연속,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이 추운 날 이런 재미로라도 달리고 싶어졌어요.
10km 반환점 한강 선상 편의점에서 초코바를 먹을 생각으로 달렸죠. 반환점이라는 희망이 달릴 때는 아주 중요한 등대 역할을 합니다. 그것만 보고 달리니까요.
겨울이라 목이 마르지 않아서 좋지만 반환점 핑계 삼아 목도 축이고 잠시 쉬고도 싶었는데 훈련팀장님이 그냥 돌아가자고 했을 때 얼마나 낙심이 되던지.
남은 분들이 기다린다는 말에 발길을 그냥 돌리는데 너무 아쉬웠어요.
다행히 동행하던 김 00님이 물을 들고 오셔서 목만 축이고 다시 클럽으로 발길을 돌렸어요.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김 00님의 땀이 고드름으로 변해있었어요. 저는 땀이 날 정도는 아니었는데 땀이 고드름으로 변해버리다니 추운 날이긴 했나 봅니다.
기모 장갑을 꼈는데도 손등은 시리지 않은데 손가락 끝이 시려웠어요. 나중에 고수님들이 두꺼운 벙어리장갑을 껴야 된다고 하더군요. 이중으로 된 장갑도 있고 영하 날씨에는 기능성 장갑이 또 있었어요.
어떤 운동이든 장비가 잘 갖춰져야 고생을 덜 하나 봅니다. 장비 빨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일반 러닝화를 신을까, 트레일 러닝화를 신을까 고민하다가 중간중간 눈 쌓인 곳이 있어서 트레일 러닝화를 신었는데 잘 선택했어요. 미끄러운 구간이 몇 구간 있었거든요. 몸이 긴장하니 더 조심스러웠어요.
저 차가운 안양천 - 한강으로 가는 길에 청둥오리들은 물이 차갑지도 않은지 계속 유유히 헤엄치고 있어요.
15km를 넘으면서 슬슬 힘들기 시작했어요. 갈 때와 달리 몸이 무겁고 거리가 빨리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에요.
시계를 볼까 하다가 몸의 감각으로 시간을 맞춰보자는 생각으로 리듬으로 뛰는데 나중에 보니 거의 10초 오차가 나지 않는 것을 보고 시계보다 몸의 감각도 무시하지 못하겠더군요.
힘들 때는 시계 보기도 귀찮을 때가 있어요. 오직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싶고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직 어서 끝이 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죠.
문득 이렇게 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엊그제는 몸살 기운이 있어서 누워 있었는데 달릴 수 있는 컨디션만 되어도 얼마나 큰 에너지인지 새삼 느꼈어요.
기록 단축은 둘째 치고서라도 달릴 수 있는 컨디션만으로도, 운동할 수 있는 상태만으로도 이미 건강한 모습이니까요.
마지막 2km는 더 힘을 내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단축할 수는 없었어요. 유지만이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달렸지만 2시간 8분 16초에 마무리를 했어요.
23년 4월 아산 마라톤 하프 대회에서 2시간 8분 17초 개인 기록이었는데 2시간 8분 16초로 개인 기록 경신입니다.
1초를 단축했는데 세계 신기록을 낸 것 마냥 기뻤어요. 흘러가는 1초지만 기록 세계에서는 얼마나 훈련을 해야 1초를 당길 수 있을까요?
평상시 흘려보낸 1초, 10초가 달리기 기록, 운동 기록에서는 아주 큰 의미가 있죠.
평상시 먹던 한 모금 물이 달리기할 때는 아주 귀중한 연료가 됩니다.
평상시 하던 호흡이 달리기할 때는 아주 중요한 리듬이 되죠.
하늘은 파랗지만 날씨는 차가운 날
나이가 들어 돌아보면 이 추운 날 달린 날을 기억할까요? 어떻게 기억할까요?
벤저민 하디의 '퓨처셀프'라는 책에서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할까요?
미리 근육을 저축하기를 잘했다고 할까요? 무리해서 하지 말라고 할까요?
김준형의 '달리기의 힘'에서는 100일 챌린지를 위해 취중 러닝도 했다죠? 왜 그렇게 했을까요? 하루라도 빠지기 시작하면 다시 빠지고 싶은 날이 될까 봐 두려운 거겠죠. 요즘 제가 챌린지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저런 이유를 제치고서라도 그냥 그 순간 살아있음을, 행복함을 느끼는 것만큼 소중한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추운 날에 방구석에 있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