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생각할 줄 아는가?
- 최진석 교수
아름다운 질문이 아름다운 답변을 만든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최진석 교수님이 함평에서 운영하는 새말 새몸짓 철학 강좌 2024년 2기 커리큘럼 중 4강 제목입니다. 15~49세 신청 가능. 나이 제한으로 수강하지는 못하지만 질문에 대한 글쓰기로 12가지의 질문에 흥미로운 질문들이라 답하고 있습니다.
1기
1강 :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2강 : 수준 높은 삶이란 따로 있는가?
3강 : 굳이 지적일 필요가 있는가?
4강 : 철학이 밥이 되는가?
5강 : 부모는 어쩌다가 교육으로 자식을 망치는가?
6강 : 당신은 텃밭과 정원 사이 어디쯤인가?
2기
1강 : 지적인 사람이 더 행복한가?
2강 : 황당해도 되는가? 황당해야만 하는가?
3강 : 당신의 쾌락은 예능과 예술 사이 어디쯤인가?
4강 : 당신은 생각할 줄 아는가?
5강 : 왜 자신을 궁금해하는 것이 탁월함의 기초인가?
6강 : 지식인이 왜 쉽게 부패하고 진부해지는가?
당신은 생각할 줄 아는가?
- 최진석 교수
네~라고 대답하기에는 '생각'에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그 '생각'의 범위를 넘어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옵니다.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느냐?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나는 어떻게 줄을 것인가?
근원적인 삶의 질문이며 이 부분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가 철학적인 질문이고 생각입니다.
데카르트의 "난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짧은 문장을 가지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대화를 나눈 내용을 기록해뒀습니다.
몇 년 전 막내는 초등학생이고 둘은 고등학생 때인데도 생각에 대한 막연한 개념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막내는 생각으로 무언가 창조할 수 있다는 말을 했고, 둘째는 내면적 자신의 존재로 산다고 했고, 첫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지혜의 눈으로 살며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했어요.
남편은 생각의 주체가 나이고 주체적인 '나'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무슨 말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기록을 해본 것으로 유추하자면 내가 의미 부여하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모든 것이 존재하고 생성한다고 말했군요.
생각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막내가 말한 '생각으로 창조한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 떠오르는 생각이 생각이 아니라 좀 더 스스로 주체성을 가지고 생각하면 물건도 만들 수 있고 나라는 사람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은 좀 더 나은 물건도, 나은 사람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변화가 없습니다. 기존의 물건, 의미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 변화에 대한 생각을 한다면 막내가 던진 생각으로 많은 일들이 창조될 것 같습니다. 생각이 창조로 변화되는 과정이 재밌군요.
둘째가 말한 생각은 '내면적으로 자신의 존재로 산다는 것.'
내면적으로 자신의 존재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부분이 생각납니다. 자신을 아는 것 자체가 철학의 시작이니까요. 겉으로 보이는 자신이 아니라 내면의 자신의 존재로 산다는 것이 생각이라고 표현한 둘째의 말도 의미심장합니다. 누군가에게 정의되어 있지 않고 스스로가 정의한 나, 스스로가 생각한 내면의 나의 존재로 사는 것이 진정한 '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 내면적 자신의 존재로 산다는 것이 생각이라면 '나'라는 존재가 탄탄해질 것 같습니다.
첫째가 말한 '생각하며 지혜의 눈에 따라 살면 삶이 달라진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죠. 자신이 믿는 만큼 자신이 성장하는 거니까요. 생각을 하며 지식이 승화된 지혜로 산다면 삶이 당연히 달라지겠죠. 능동적인 자신의 모습에 따라 삶도 달라진다고 하는 내용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 뿌듯합니다.
남편은 생각의 주체가 '나'이다.
남편이 강조한 부분은 생각의 주체가 '나'라는 부분입니다. 생각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라는 말을 강조했던 부분이 생각납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동했던 바대로 내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변에 너무도 쉽게 휩쓸리곤 합니다. 생각의 기준, 가치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생각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하고 나만의 철학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철학에게도 질문을 던지도 더 나아지려는 생각을 해야 되겠지요.
저는 의미 부여하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모든 것이 존재한다
저는 요렇게 표현을 했는데요. 생각에 의미 부여에 따라 존재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의미 부여한 가족, 식물, 일에 대한 생각에 따라 존재하고 성장하니까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존재가 달라집니다. 생각에 따라 주변 환경이 달라지고 성장하게 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를 탐구하고 사고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언어가 그 사람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했습니다. 언어를 사용하는 한계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의 한계도 알 수 있겠지요. 사용하지 않는 언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 모르는 세계일 테니까요. 심리학자들은 어떤 언어를 자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어릴 적 환경, 지금의 환경까지도 유추하곤 합니다.
'생각'에는 많은 모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질문을 하라
-새로운 의미 부여를 하라
-생각으로 창조한다
-생각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내면적 질문을 하라
-생각의 주체는 '나다', 능동적 자세
가족의 대화로 '생각'에 대한 개념이 넓어졌습니다. 다시 돌아가 최진석 교수님의 질문(당신은 생각할 줄 아는가?)을 다시 펼쳐본다면,
삶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질문을 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가? 먼저 자신에 대해서 질문을 하며 살고 있는가?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있는가? 당신의 삶이 달라질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과 대답과 행동을 순환적으로 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매일매일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행동하고 답을 구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좀 더 나은 자신이 되려고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루틴으로 매일 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요?
저는 좀 더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한 생각으로 운동, 독서,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생각을 없애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하고, 생각을 낳기도 하는 행동이고 하루의 에너지를 주기도 합니다. 독서, 글쓰기 역시 생각하면서 읽고 써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성찰, 반성이 많이 되고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이 드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당신은 생각할 줄 아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생각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네요. 운동, 독서, 글쓰기를 생각을 하기 위해서, 생각을 낳기 위해서 하는 활동이니까요. 좀 더 확장해서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