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이 왜 쉽게 부패하고 진부해지는가
- 최진석
아름다운 질문이 아름다운 답변을 만든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질문에 따라 답이 아주 달라지니까요.
최진석 교수님이 함평에서 운영하는 새말 새몸짓 철학 강좌 2024년 2기 커리큘럼 중 6강 제목입니다. 15~49세 신청 가능. 나이 제한으로 수강하지는 못하지만 질문에 대한 글쓰기로 12가지의 질문에 흥미로운 질문들이라 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라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12일 동안 행복한 글쓰기였습니다.
1기
1강 :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2강 : 수준 높은 삶이란 따로 있는가?
3강 : 굳이 지적일 필요가 있는가?
4강 : 철학이 밥이 되는가?
5강 : 부모는 어쩌다가 교육으로 자식을 망치는가?
6강 : 당신은 텃밭과 정원 사이 어디쯤인가?
2기
1강 : 지적인 사람이 더 행복한가?
2강 : 황당해도 되는가? 황당해야만 하는가?
3강 : 당신의 쾌락은 예능과 예술 사이 어디쯤인가?
4강 : 당신은 생각할 줄 아는가?
5강 : 왜 자신을 궁금해하는 것이 탁월함의 기초인가?
6강 : 지식인이 왜 쉽게 부패하고 진부해지는가?
한 마디로 답하자면 '교만'이 아닐까 합니다. 지식인은 왜 쉽게 부패하는가?
지식인이 쉽게 부패하는 이유를 교만이라고 하는 이유는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본인이 지식이 있고, 주위에서도 인정을 해주는 위치에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많이 안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명예스러운 공식 명칭이 붙겠죠.
지식인, 명예, 권력, 부에 대한 인간의 욕망
명예스러운 명칭에는 여러 가지 이권이 달라붙습니다. 추종하는 사람이 생기고 여러 가지 관련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이해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많은 사람들이 권력이 생기고 명예가 생기면 부까지 거머쥐려고 합니다. 인간의 본능인가요? 자신이 잘 깨어있지 않으면 그 명예 자체도 위험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주변에서 가만히 두지 않고 그럴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위치에 있으면 유지하려는 마음도 생기죠. 명예와 권력도 중독이 되는가 봅니다. 유지하고 더 높은 곳에 가고 싶은 욕망이 생기니까요. 마치 부에 대한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돈도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채우려고 하니까요.
집 한 채만 있었으면 좋겠다, 현금 1억만 있었으면 좋겠다. 10억만 있었으면 좋겠다. 100억만 있었으면 좋겠다... 부에 대한 욕망은 계속 늘어나기만 합니다. 거기에 본인과 관련된 조직에는 돈과 관련된 사업, 기회들이 일반인보다 더 많이 생기겠죠.
<<마키아벨리 어록>> 책에서도 인간의 존재는 한 가지 야심이 이루어지고 나면 금방 다음 야심이 달성되기를 바라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끊임없이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을 경계해야겠죠.
그러기에 쉽게 부패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요?
지식인은 왜 쉽게 진부해지는가?
자신이 이미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식인이라고 불릴 때까지 계속 노력해서 지식을 쌓았을 것이고 주위에서도 그렇게 인정해 줬으니까요.
그러나 시대는 변화합니다. 코로나 시기가 다가왔고 다시 AI 시대가 다가옵니다. 진부한 지식인들은 발 빠른 대처가 쉽지 않겠죠. 기존의 자기 지식이 최고라고 생각하니까요.
저 역시도 변화하는 시대, 배워야 할 많은 일들이 있는데 쫓아가기도 바쁩니다. 어느 때는 그냥 쳐다보고만 있을 때도 있습니다. 배우지 않으면 시대의 흐름에 뒤처질 수밖에 없고 거기에 맞는 새로운 사고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지식인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최진석 교수님은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지식인은 왜 쉽게 부패하고 진부해지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배움의 자세
시대의 변화에 새롭게 변화하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고, 새로운 사회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배워야만 거기에 맞는 자신의 지식을 변화, 응용해서 다시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고 예전의 지식만을 가지고 주장한다면 고루한 지식이라고, 진부한 지식이라고 하겠죠. 현시점에 맞는 변화하고 새롭게 적용하려면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려는 배움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어서 평생 배워야 하나 봅니다.
이런 배움의 자세를 하려면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야만 가능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래서 이런 것을 배워야 한다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평소에 몸에 배어 있어야 끝없는 배움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철학
자신만의 철학, 자기만의 세계관도 갖고 있어야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습니다.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세상의 흐름에 대처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색깔 없이 세상의 흐름에 모두 맡기는 것 또한 내가 없는 세상에 불과하니까요.
사회적 책임
지식인이라면 그나마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힘들 때,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 조언할 수 있어야 하고, 방향 제시를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본인 자신이 세상의 흐름을 알고 방향을 보는 통찰력이 필요할 것 같군요.
성찰, 본질, 통찰, 지혜
지식은 본질을 보는 힘, 통찰을 보는 힘, 지혜로 승화하는 힘이 있어야 진정한 지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 기본은 본인을 성찰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나는 어떠한가?
지식인은 아니지만 쉽게 부패하고 진부하지 않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상시에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해야 하고 항상 깨어 있으려고 성찰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삶의 자세가 필요함을 느낍니다. 사물,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는 눈, 미루어 헤아리는 힘도 독서와 경험으로 쌓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