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5km만 달리다가 컨디션이 좋아져서 오늘은 10km로 달려보자고 마음을 먹고 달린다.
같이 달리기로 한 멤버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달리게 되었다. 같이 달리면 기록은 좋지만 사색하거나 침묵하면서 달리기를 좋아하기에 혼자도 기꺼이 달린다.
광명에서 한강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한강 주변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 내기는 충분하다.
하늘도 파랗고 꽃도 많고 바람까지 살랑살랑 부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니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달리기에 흐름이 끊기면 다시 달리기가 힘들지만 초반이니 기꺼이 멈춰서 사진을 찍는다. 아마추어 달리기에서는 기록보다 중요한 게 풍경사진이다. 더욱이 기록을 남기로 싶어 하는 나로서는 풍경이 먼저다. 붉은 노을이 주황으로 옅어지는 하늘과 풀과 건물 풍경은 생각을 멈추게 하고 발을 멈추게 한다. 생각을 멈추게 하기에는 달리기가 제격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나다가도 힘들어지만 생각을 할 수 없이 호흡하기도 바쁘다.
8km를 넘어서니 한강이 보인다. 시원한 바람을 만나듯 반갑기 그지없는 한강. 이왕 온 김에 10km를 21.1km 하프를 달리자고 목표를 재설정한다. 이 목표 설정이 가져올 파장을 이 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반팔, 긴 레깅스, 핸드폰과 카드 한 장을 가지고 온 나로서는 슬슬 목이 탔다.
이제 물을 찾아 나설 때다.
한강공원에 있는 편의점을 향해 간다. 5월 말의 한강 편의점은 나들이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겨우 물과 초코파이 대신 오예스 과자를 사고 다시 광명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10km가 넘었으니 저들처럼 잔디밭에 앉아서 풀을 배개삼아 하늘을 쳐다보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지금에서야 든다. 다음에는 그래 봐야겠다.
한강 다리에는 하나둘 불빛이 들어오고 땀이 식고 바람이 세니 한기가 느껴진다.
다시 무거운 다리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게 힘들다.
결국 15km에 멈춰 섰다. 이미 어두워졌고 사람들도 뜸하고 중간중간 가로등이 없는 곳도 있다. 무엇보다도 춥다. 한참을 걷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중학생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다시 뛸 수 없을 것 같아 아들에게 점퍼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 투덜거리면서도 엄마가 춥다고 하자 어쩔 수 없는 한숨을 쉬며 알았다고 한다. 아들과 중간에서 만나기만을 고대하면서 걷고 또 걷는다. 15km 달린 후라 힘들고 지치고 춥고 다리 아프다. 이렇게 중간에 멈춘 적이 없었건만 완전 전략적 실수, 실패다. 달리기를 너무 우습게 본 결과다.
아들과 만난 후 옷을 서둘러 입고 아들에게 간곡하게 사정을 한다. 엄마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야겠으니 네가 걸어오라고. 아들이 어이없어한다. 그러면서 핸들을 넘겨준다. 그런데 페달을 밟을 힘이 없어서인지 자꾸 넘어진다. 두 번 넘어지고는 포기하고 아들에게 자전거를 넘겨줬다. 아직 어깨가 다 낫지 않아서 넘어지면서 바닥을 잘못짚는 바람에 팔이 무~지하게 아팠다. 자전거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자전거를 타고 왕복 20km 한강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어깨가 아프고 힘이 빠지니 자전거도 탈 수 없게 되었다.
아들을 보내고 다시 터벅터벅 걷기 시작한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갖고 오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고 걸어보기로 한다. 내가 만든 일 내가 해결하고 싶어 하는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한다. 그나마 얇은 점퍼의 위력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그거 하나 달랑 걸쳤는데 이렇게 따뜻할 수가. 조금 전에 덜덜 떨면서 걷는 것에 비하면 이건 호강이다, 호강. 그렇게 40분 이상을 걷고 나니 집에 도착한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가만히 누워서 생각해본다.
새끼발가락은 물집이 잡혔다. 무리했나 보다.
오늘의 하프 실패 요인
1. 점심을 먹고 저녁 6시 출발 전에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허기짐, 3~4시쯤 요기를 했어야 했다. (오후 6시 12분 출발 ~밤 10시 도착)
2. 하프 달리기 준비 없이 즉석에서 10km에서 하프로 목표 변경.
3. 저녁에 온도가 내려가서 찬 바람이 부는 것을 생각하지 못함. 겉옷 챙겨야 했음.
4. 달리다가 멈추면 다시 달리기 힘들다는 것을 까먹음.
5. 사진 찍느라고 중간중간 많이 멈춤.(하프 이상 달릴 때는 중간에 사진 찍지 말고 시작, 도착해서만 찍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