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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0km의 벽을 뛰어넘다

풀 마라톤 도전하다


성공은 항상 성공의 이유가 있고

실패에도 항상 실패의 이유가 있다.


10월 1일 32km 도전 실패

이유는 22km에서 옆구리 통증


4회째 하프 정도의 거리에서 걷다 뛰다를 해서 만족스럽지 못한 러닝을 하고 있다.


이제 훈련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10월 23일 대회이기 하지만 2주 전에 모든 훈련을 마무리하고 쉬면서 힘을 비축한다고 하는데 난 아직 30km를 뛰어본 경험이 없으니 어쩐담???


실패한 토요일 밤, 고민이라기보다는 전략이 필요함을 느껴서 이리저리 생각해 봤다.


토요일 하프를 뛰어서 일요일은 푹 쉬고 월요일은 혼자 32km 도전해 보자.


비가 많이 온다던데 비가 오거나 말거나 나는 뛴다.


비가 오면 오면 습도가 많아서인지 호흡하기가 편하고 덥지 않고 목도 그다지 마르지 않아서 좋은 점도 많았다. 연습하다가 비를 만난 경우가 3~4회 있는데 나쁜 기억이 없다. 나름대로 시원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10월 3일 월요일 아침 6~7시 창밖을 봤는데도 어두컴컴하게 비가 내리고 있다. 꽤 많은 비가 온다던데 비가 좀 사그라들면 나가야겠다.


오전 9시가 되니 빗방울이 약해지자 바로 준비하고 나갔다. 얇은 방수 재킷을 입고 초코파이, abc 초콜릿 6 개, 핸드폰을 허리벨트 주머니에 넣고 뛰기 시작했다.


바닥이 웅덩이가 없으면 하고 바람을 해보았지만 이미 중간중간 웅덩이가 있어서 피해 갈 수가 없었다. 광명에서 한강, 당산, 마포대교까지 가보기로 한다. 주위에서 빙빙 돌면 그냥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멀리 가서 어쩔 수 없이 뛰어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코스를 만드는 거다.


1km가 되기 전에 벌써 신발이 젖어버렸다. 신발, 양말이 젖으면 기분이 좋지 않고 뛰기에도 여간 부담이 아닌데...


그러거나 말거나, 난 오늘 32km 뛸 거야.


웅덩이를 피하다가 어느 순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막 밟고 지나갔다.


2주 연속 옆구리 통증으로 러닝을 멈췄기 때문에 호흡으로 조절해 보려고 2회 들이마시고 2회 깊게 내뱉고 있다. 무엇보다도 호흡에 집중하고 호흡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7km가 스마트워치 알림이 이상하다. 자꾸 술 먹은 사람처럼 했던 말만 반복한다. 고장 났군. 비가 이렇게 쏟아져서 그런가? 그래도 그렇지. 비 오는 날에는 달리기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스마트하지 못한 스마트 워치군!


일단 스마트 워치는 손목에서 풀어서 재킷 주머니에 넣어둔다. 감으로 7분 30초/km를 달려보리다.


훈련할 때도 훈련부장님이 자기 속도의 감을 익히라고 한 적이 있는데 오늘에야 스마트 워치 없이 감각으로 페이스를 조절할 때가 왔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자주 오던 한강 8km 지점을 지나고 있는데 목이 마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비가 와서인지 며칠간 계속 물을 자주 마셔서인지 수돗물도 먹지 않고 패스했다.


마포대교에 도착하니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바닥은 이미 첨벙거릴 정도로 물이 넘치고 있다. 갑자기 폭우가 될지도 모르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포대교


자동차로 지나가면서 봤던 마포대교 표지판과 메리어트 호텔도 보인다. 이 정도면 16km 정도 오지 않았을까 감으로 거리를 추측해 본다. 여기를 반환점으로 돌아가자.


스마트 워치가 먹통이라 핸드폰을 꺼내서 16km를 설정하고 달린다. 처음 시작한 곳으로 가서 16km면 32km를 뛴 셈이니까. 아직까지 나쁘지 않다. 그다지 지치지도 않고 기분도 좋다.


간식을 먹고 다시 달리는데 비가 장난이 아니다.


마치 나와 내기라도 하자는 듯 내리친다.


'너는 오늘도 32km 못 달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오늘 32km 달릴 거야'라고 맞받아 쳐줬다.


슬슬 목이 마를 것 같아 수돗물이 보이는 한강 근처에서 마시고 다시 달린다.


반바지가 방수인 것 같았는데 방수가 아니다. 빗물에 무겁다. 양쪽 옆으로 물기를 짜내니 뚜두둑 물이 떨어진다. 그나마 재킷을 입어서 상의는 젖지 않아서 다행이다.


비 오는 날 달리기


모자를 쓰고 재킷에 달린 모자를 쓰니 머리가 젖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서 자꾸 재킷 모자가 날아가 버린다.

머리도 젖고 상의도 조금씩 축축함을 느끼지만 뛰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천천히 달리더라도 걷지는 않으리라.


호흡에 집중하자.


돌아갈 때는 핸드폰으로 구간 알림을 설정했기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린다. 반환점에서 시작해서 6km가 넘어선 지점이니 22km 정도 왔나 보다.


항상 옆구리가 아팠던 구간이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호흡에 집중하자.


흡흡후후 흡흡후후


호흡과 발, 팔 리듬감을 가지라고 유튜브 마라닉에 나오는 마라톤 한국기록 보유자 레전드 권은주 감독님 얘기가 생각났다.


스스로 리듬감을 찾아보자.


리듬감을 찾으면 저절로 간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몸이 스스로 알아서 뛰고 있다는 느낌이고 덜 힘들다.


22km 고비를 넘겼다. 25km가 지나도 옆구리가 아프지 않았다. 옆구리가 아프지 않으면 다리가 무겁고 어깨가 아프더라도 갈 수 있겠다.


아~ 다행이다. 옆구리가 아프지 않아서.


비는 계속 내린다.


4시간 내내 내린다.


좀 멈춰주지. 나를 위해서.


날씨 예보는 하루 종일 온다고 했다.


반환점을 돌고 나서는 속도가 8분 10초/km로 느려졌다. 느려지거나 말거나 내 페이스를 유지하자. 나는 오늘 무조건 32km 거리를 경험하고 내 근육에 32km를 심어 넣어야 한다. 내 몸이 기억할 거야.


출발 지점이 보이면 왜 그렇게 힘이 나는지 모르겠다. 속도는 나지 않지만 마음은 즐겁다.


출발점에 왔는데 32km인 줄 알았는데 30km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선 멈출 수는 없다.


비를 맞으며 달려왔는데 30km에서 멈출 수는 없다.


비가 오는 환경은 좋지 않지만 옆구리가 아프지 않고 다른 곳에 별 이상이 없으니 더 달릴만하다. 에너지도 남아있다.


4km만 더 달려서 34km 완주하자.


아무리 못해도 32km만은 넘기자.


출발점에 돌아오니 아주 익숙한 거리라서 마음이 더 편했다. 32km를 넘기자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슬슬 에너지가 고갈됨을 느꼈고 33km 목표를 재조정하고 마무리했다.


와~ 해냈다.


33km 완주 기록



32km 완주했다.

30km의 벽을 뛰어넘었다.


정말 뛰어서 넘었다.


무릎도 아파지기 시작한다.

발바닥도 아프고 새끼발가락도 아픈 것을 봐서는 물집이 잡힌 것 같다.



완주 후 맨발로 잔디밭 걷기



일단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잔디를 맨발로 걷는다.

이 부드럽고 간지러운 비 오는 날 잔디밭 맨발 걷기라니, 그것도 33km 완주 후에 말이다.


춤이라도 추지 않으면 어찌 이 기쁨을 표현하리오.


33km 완주 후 비 맞으며 춤추기


덩실덩실 신발을 두 손에 잡고 비를 맞으면 춤을 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33km 완주 성공의 이유는

무조건 32km 완주한다는 의지

실패 요인이었던 옆구리 통증 호흡으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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