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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자반 Jan 06. 2021

'벽'과 '문'사이

영화 리뷰) 설국열차

*이 글에는 영화 설국열차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접적인 스포일러를 원치 않거나 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은 2번째 단락부터 읽기를 권합니다.*  




설국열차는 끝없는 겨울 위를 달리는 길고 긴 기차이다. 앞쪽 칸에는 온갖 호화시설이 갖춰져 있다. 유치원과 목욕탕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클럽과 수족관(싱싱한 회를 먹기 위해)도 있다. 뒤쪽 칸은 말할 수 없이 참담하다. 어둑어둑한 공간에서 정체모를 양갱을 앞쪽 칸에게 제공받으면서 삶을 이어나간다. 기차 밖에서 살 수는 없다. 이미 지독한 추위가 온 지구를 덮쳤으니. 이 불평등을 참지 못한 뒤쪽 칸 사람들은 앞쪽 칸 사람들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다.


맨 앞쪽 칸까지 다다르는 것에 성공한 커티스는 열차의 주인인 윌포드를 만난다. 그리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실에 주저앉고 만다. 사실 자신들의 '반란'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는 것, 커티스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사실은 그 반란의 적절한 타이밍을 결정하기 위한 스파이였다는 것. 그 모든 것의 이유는 '개체수 조절' 때문이었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람이 무한정 늘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뒤쪽 칸 사람들의 숫자를 인위적으로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바로 이 반란으로써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설국열차를 총망라하는 주제는 이것이란 생각이 든다.


설국열차의 시스템은 옳은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앞칸 사람이어서 유치원도 가고 목욕탕도 가고 신선한 회도 먹는 반면 누구는 뒤쪽 칸 사람이어서 그날 하루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한다. '개체수 조절'을 위해 일부러 앞칸 사람들이 반란을 부추기고, 많은 뒤쪽 칸 사람들을 죽인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열차를 운영하려면 정말 이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지구 종말 후의 생존자들을 모아서 달리는 기차'라는 설국열차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이 질문에 yes라 대답했을 때 윌포드는 약간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는 yes라고 생각한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재화를 나누어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철저하게 투쟁한다. 밥그릇의 개수가 정해져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남의 밥그릇을 빼앗기 위해 투쟁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교 1등의 자리, 좋은 대학의 입학 정원, 대기업 공채 신입사원의 수, 한 해 임용되는 공무원의 수 등은 모두 정해져 있는, 일명 한정된 재화이다. 그것을 얻기 위해 정해진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의 수가 노력하고, 실망하고 그리고 좌절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설국열차 역시 그것에 대해 답한다.




맨 뒤쪽 칸부터 맨 앞쪽 칸까지. 커티스를 위해 열차의 모든 문을 열어준 남궁민수는 마지막 딱 하나의 문을 남기고 문을 열지 않겠다고 한다.

네가 여기 오래 있어서 모르나 본데, 저건 벽이 아니라 문이야. 나는 저 문을 열거야.


남궁민수가 가리킨 것은 바로 열차의 벽. 황당해하는 커티스를 뒤로 하고 남궁민수는 열차의 문(벽)을 열고 열차 자체를 나가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결국 성공한다.


열차 자체가 앞서 말한 '약간의 정당화된' 윌포드의 시스템이라 한다면 남궁민수는 그 시스템을 깬 것이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던 열차의 벽에 관심을 가지고 "이 방법밖에는 없었어!"라고 외치는 윌포드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설국열차가 말하는 해답은 바로 이것이다. 남궁민수처럼 행동하면 된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지는 것.




나는 앞서 나열한 좋은 대학의 입학 정원, 대기업 공채 신입사원의 수 등 한정된 재화를 가지기 위해 투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을 가지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도 그것을 가지기 위해 나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저 왜 이렇게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내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너무 지치고 힘들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 한번 멈춰 서서 의문을 가져보라는 것이다. 과연 내가 쟁취하고자 하는 그것이 '벽'인지 '문'인지. 벽이면 어떻게 해야 하고 문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만약 그 재화가 문이라면, 그 문을 열고 나가서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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