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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자반 Dec 31. 2020

네? 제가 틀렸다고요?

영화 리뷰) 인터스텔라

*이 글에는 영화 인터스텔라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번째 단락은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합니다.*




대학생인 내가 처음 들은 팀 프로젝트 수업은 '창의적 공학설계'였다. 1학년 학생들이 듣는 교과목이었는데 나는 팀 프로젝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3학년이 되어서야 수업을 듣게 되었다. 나와 같은 팀인 3명의 학생들은 모두 1학년이었고 우리는 모두 초면이었다. 나 혼자 3학년이라니, 무언가 선배로서 잘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감이 있었다. 프로젝트 초반, 나는 거의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했고 1학년 친구들은 나를 잘 따라와 주었다.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았던 그때, 문제는 내 아이디어에 대한 교수님의 피드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사실이 아니라 오로지 네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이미 네가 갈 길을 정해놓고 자료조사를 거기다 맞춰하면 당연히 사실과 멀어지지 않겠니?"


사실 그때 당시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마음속에는 그저 불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왜 내 아이디어를 저렇게까지 말하지? 내가 갈 방향을 설정해 놓고 자료조사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리고 왜 하필, 1학년 친구들 앞에서 나를 저렇게까지 말하지? 아마 이 일에 대해 족히 3일은 불평했을 것이다. '나는 전혀 잘못한 것이 없고 교수님이 나의 멋진 아이디어를 받아주시지 않았다'라고 말이다.


지금은 당연히 교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또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이것이 정말 객관적인 사실인지, 아니면 주관적인 내 생각인지 항상 되새겨 보는 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불평했을까?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자신의 의견에 대해 안 좋게 말한다면 누구나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화가 나고, '네가 말한 게 답이 아니야!'라고 부인하고 싶고, '그래도 나는 틀리지 않았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나는 영화 인터스텔라(비록 과학적인 색채가 짙은 영화이고 이것이 영화의 메인 주제는 아니지만)를 빌려 방어기제와 수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메인 빌런이 있다. 바로 만 박사이다. 영화 초반, 만 박사는 정말 똑똑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지구가 점점 그 생명력을 잃어갈 때, 만 박사는 생존 가능성이 존재하는 12가지 행성의 목록들을 추리고 그 행성들을 탐사할 대원들을 모집했다. 물론 만 박사 자신도 함께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만 박사와 11명의 대원들 중 3명이 각자의 행성에 생존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쿠퍼와 그의 탐사대원들이 그 3개의 행성을 차례로 돌아보게 된다. 원칙대로라면 3개 모두 가야 했으나 연료 부족으로 쿠퍼와 탐사대원들은 2개의 행성을 놓고 고민한다. 만 박사의 행성과 또 다른 행성이다. 그들은 만 박사의 행성을 선택하고 도착한 뒤, 만 박사에게 뒤통수를 단단히 맞게 된다. 사실 만 박사의 행성은 생존할 수 없는 행성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만 박사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쿠퍼와 탐사대원을 죽이려고까지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정말 많은 관점과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물리학적인 것, 쿠퍼와 머피 부녀지간의 사랑) 나에게 대두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만 박사는 대체 왜 그랬을까?

  

지구에 있었을 때 12가지의 행성을 추려낼 정도로 똑똑하고 자신도 그 여행에 동참할 정도로 용감했던 사람이 왜 그렇게 변했을까.


사실 만 박사는 자신이 갈 행성이 희망이 없는 행성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직접 12가지의 행성을 추렸고 당연히 그중에서도 제일 가능성이 있는 행성을 고르지 않았겠는가. 만 박사는 지구를 구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용감한 만 박사, 마침내 지구를 구해내다' 따위의 신문 기사를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었다. 만 박사는 틀렸다. 현실은 만 박사에게 죽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 만 박사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화가 나고, '네가 말한 게 답이 아니야!'라고 부인하고 싶고, '그래도 나는 틀리지 않았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어쩌면 아주 작은 희망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틀리지 않았어! 다른 탐사대원들이 와서 내 행성을 다시 조사하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서 '가능성 있음' 표시를 보냈을지도.




비록 만 박사의 입장에서 글을 썼지만 만 박사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만 박사가 방어기제가 과도하게 작동하여 옳은 것을 수용하지 못한 예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만 박사'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방어하기 전에 잠깐 멈추자. 그리고 다시 생각하자. 그것이 옳다면 주저하지 말고 수용하자. 


그 이후 팀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리고 심지어 지금도, 나는 내가 '만 박사'가 되려는 순간 항상 영화 인터스텔라와 교수님의 말을 생각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것이 옳은 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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