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은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
방송국에서 섭외 요청이 왔다. 스탠드업 코미디 관련 다큐를 찍을 예정인데 출연해 줄 수 있냐고. 다음 책 집필로 미국에 갈 예정이라 안 된다고 했다. 옛날이었으면 이런 제안들에 '어머 어떡해~ 기회를 잡아야지!' 했겠지만, 몇 번 김칫국 마신 후론 덜 흥분하게 되었다. 남들이 잘 모르는 걸 먼저 했다는 이유만으로 주목받거나, 외부의 시선으로 흥미롭게 포장된다고 해서 내가 그것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실력이고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에게 그런 게 있는지 고민하는 날들이었다.
비록 자신 있게 어디 가서 내 직업을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내가 시도한 것들을 기록해 두는 건 중요하니까. 다음은 2019년 9월 10일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 줄여서 동북구연을 만든 날의 이야기다.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다. 코미디언이 홀로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관객을 웃기는 코미디다. 처음 접한 건 친구의 자기소개 문구였다. “인생 삼모작을 위해 틈나는 대로 넷플릭스를 보며 스탠드업 코미디를 연마 중이다.” 당시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하던 때였고, 눈 밝은 이들이 하나둘 빠져들던 시기였다. 그곳엔 한국 TV에선 볼 수 없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2010년대 후반까지 한국 예능은 누군가를 놀림감으로 만들어 웃기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새로운 롤모델이 생겼다. 넷플릭스의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 속에 등장하는 호주의 레즈비언 코미디언 헤나 개즈비는 선언한다. 여성이자 성 소수자인 자신은 그동안 자학하는 코미디로 경력을 이어왔으나, 이것이 여성 혐오적 구조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하지 않을 거라고. 순간 내 주변에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우리도 한번 해 볼까?
그리하여 열게 된 스탠드업 코미디언 꿈나무 발기인 대회. SNS에 올리니 5명이 신청했다.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너무 두려워서 세상에서 제일 안 웃긴 사람이 된 기분에 휩싸였다. 일단 돌아가며 소개를 했다. 함께 웃긴 영상을 봤다. 대본 써오기 숙제를 내고 헤어지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기가 거기 맞죠?”
“네.”
“그럼 오늘 돌아가면서 하는 건가요?”
“네?”
알고 보니 누가 오늘 직접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줄 알고 찾아온 거였다. 우리가 당황하며 “못 한다”라고 식은땀을 흘리자 그는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제가 글방을 오래 다녔는데요. 거기서 하는 일이라곤 각자 글을 쓰고 봐주는 게 다였어요. 글이든 코미디든 실력이 느는 방법은 직접 해보는 거밖에 없지 않을까요?” 결국 우리는 몸풀기 게임을 통해 순서를 정한 뒤 한 명씩 무대로 나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보기로 했다. 한 친구가 할머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는 올해 90세인데 사소한 면에서 진짜 이기적이야. 예를 들어 맛있는 반찬이 나오잖아? 그럼 보통의 할머니들은 내 새끼 더 먹어하면서 챙겨주잖아, 그런 거 절대 없어. 무조건 반으로 딱! 나눠서 자기 앞에 들고 가. 그러면서 뭐라는 줄 알아? 너희는 앞으로 먹을 날이 많대! 이상한 할머니지?” 그러면서 용돈 보내드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월급날이 25일인데, 아침부터 전화가 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인데, 네가 용돈을 안 보내줘서 내가 국밥을 못 먹는다고. 할 수 없이 하루 전날 자동이체를 걸어놨는데 글쎄∼” 하며 이야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 객석에서 누가 울기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는 87세인데 10년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한 번도 할머니가 혼자 ATM에 가는 걸 상상할 수 없었던 터라 부러워 눈물이 난 것이다. 그러자 무대 위 코미디언도 할머니를 떠올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사람들은 친구를 떠나보내며 느꼈던 감정이나, 사랑받지 못해 생긴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 안엔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웃기면서 슬펐고, 슬프면서 웃겨서 우리는 울다 웃다 했다.
그렇게 우리는 2주에 한 번, 일요일 아침마다 모여 각자 인생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우리 중 한 명이 연말파티를 여는데 거기서 공연을 해볼까? 해서 공연을 했고, 그 공연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마치 우리가 뭐라도 된 냥 잠시동안 연예인병에 걸렸다가, 다시 정신을 차며 두 번째 공연을 올렸다. 다음은 2021년 6월 3일 두 번째 공연을 앞두고 쓴 글이다.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 하루 남았다. 2년 동안 미루던 공연이었는데 일단 날을 잡고 포스터를 올리니 우당탕탕 뭐가 만들어지고 있긴 하다. 무엇보다 다들 한 마음인 게 느껴진다. 살면서 이렇게 뭔가에 미쳐있는 적은 참 오랜만이라는 감각. 사회인 동호회 이런 게 왜 있는지 알겠다.
"야근하면서 코미디 준비하니까 진심 뒤질 것 같아. 너무 잘하고 싶다."
"진짜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이러냐. 아무 의미도 없는데. 그래서 좋다."
"정말 안 하고 싶던 공연. 그런데 이젠 안 하면 죽을 것 같다."
이런 감정은 그냥 좋다고, 잘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과거에도 이보다 잘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았는데 이러지 않았었다. 함께 몰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니 자연스레 우리 모두에게 생겨났다. 모두가 돌아가며 공평하게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큰 것 같다. 내 인생에 일어난 비극들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치유받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니 신기하고 아름답다.
각자에겐 캐릭터가 있었고, 그 정체성은 결핍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결핍... 당시 나는 서른이 넘어도 섹스 못 한 사실과 25살 때부터 결혼정보회사에 가입되었다는 특이사항이 있었고, 그 이야기들을 모아 15분짜리 세트를 만들었다. 현장에서는 애드립이 좀 더 추가되었지만 그때 적은 대본을 공유한다. 지금 보니 참... 대단하고 어이없다.
성은, 브랜드 '모조에스핀'에서 아빠가 사 준 고가의 흰색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다.
사람들, 예쁘다고 한다.
1.
안녕하세요~ 저는 하얀색 옷이 없어요
저희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흰 옷을 못 입게 했거든요
더럽혀진다고
그때부터 제 인생이 잘못된 것 같아요.
제가 사실... 걸레거든요
온라인 걸레
2.
여러분, 혹시 컴퓨터로 섹스해 본 적 있어요? 컴섹이라고...
전 많아요.
초등학생 때.
버디버디에서
3.
제 아이디는 새콤달콤이었어요.
'새콤달콤' '16세' '여자' 하고 들어가잖아요?
거기 있는 남자들이 다 말 걸어요.
'수락' 누르고 들어가면 다들 고추를 까고 있어요.
여기 있는 남자들도... 거기서 만났으면... 아마 깠을 거야.
그러면서 저한테 그래요.
어, 새콤달콤. 맛있겠네?
그럼 저는 그래요. 맛있게 드세요~
4.
여러분, 오프라인 세계에서 썸을 타려면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이상형이 뭐예요?
근데 온라인 세계에서 진도를 나가고 싶으면 이 말하시면 돼요.
지금... 뭐 입고 있어?
5.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가슴을 E컵이라고 속였어요.
그리고 보여줬어요.
이렇게 해서. (팔꿈치를 접는다)
이젠 아래를 보여줄 차례잖아요.
그래서 손을 이렇게 해서 (양손을 잡고 포개 주먹으로 만든다) 보여줬어요.
어때요? 조개 같죠?
그러고 놀고 있는데 부모님이 문을 왈칵 연 거예요.
그 충격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농담이고요
6.
저희 부모님은 학자셨여요
공부한다고 집에 잘 안 들어오셨죠
제 동생이 저보다 11살 어리거든요. 제가 업어 키웠죠.
엄마가 동생 좀 봐라 하면 '네~ 어머니~' 했다가 나가면?
컴퓨터 전원을 켜죠.
'새콤달콤님이 입장했습니다.'
그럼 고추 깐 남자가 말하죠.
빨아.
근데 동생이 이미 쪽쪽 소리를 내며 물건들을 빨고 있거든요.
그거 소리 켜놓고
저는 채팅으로 하는 거죠.
아... 너무... ㅋㅓ... 커요... 켁캑...
동생이 모를 줄 알았는데, 다 기억하더라고요 ㅎㅎ
무릎 꿇고 사죄했습니다.
7.
제가 중학교 땐 얼마나 발랑 까졌냐면요
처음 남자친구를 사귀고, 놀이터에서 1차로 즐기다, 2차로 갈 곳이 필요해서
우리 집에 가자 했어요.
그런데 걱정하는 거예요. 부모님 계시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제가 말했죠.
야.. 우리 부모님 나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어.
8.
그랬던 버디버디 걸레가 왜 지금까지 못 했나... 솔직히 좀 말이 안 되잖아요?
이에 대해서 제 친구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죠.
'언니는 맨날 케이크를 먹고 싶다 말만 하지 진짜 케이크를 사러 가진 않는다.'
진짜 그런 거 같은 거예요.
제20대엔 케이크보다 맛있는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SNS에 글 써서 좋아요 받는 희열이 섹스할 때랑 비슷한 거 아시죠?
매슬로우의 5대 욕구에도 맨 밑이 성욕, 식욕이고 제일 위가 자아실현 욕구잖아요.
저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 욕망이 진짜 컸거든요.
글 쓰는 걸 좋아해? 작가가 되어야지.
영화를 좋아해? 영화감독이 되어야지.
섹스를 좋아해?.....?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요.
케이크가 진짜 맛있을까? 최근에 드신 분, 어때요? 맛있었어요?
9.
그런데 그렇게 맛있으면... 왜 아무도 후기를 안 올릴까요?
사실 우리 인생에 가장 절정의 순간을 찍어 올리는 게 인스타그램이잖아요.
저는 맛집 갈 때 리뷰를 엄청 많이 보거든요.
배달음식도, 4.5점 이하면 안 먹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저도 좀 알 수 있게
맛있는 케이크 먹으면 스토리에도 올리고~
어디서 먹었는지 체크인도 하고~
누구랑 먹었는지 태그 해서 올려주면
저도 그분이랑 먹을게요.
한 입만.
10.
이제 부모님 얘기를 좀 할게요.
저희 부모님 살아 계세요ㅎㅎ
그런데 올해 초에 아버지가 쓰러지셨거든요.
이거 웃긴 거 아니에요. 웃지 마세요.
그래서 응급실에 가서 울면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아빠 깨어나시게만 해주면, 제가 뭐든 할게요.
그런데 기적처럼 아빠가 깨어났고 저를 보자마자 한 말이 이거였어요.
성은아, 이제 선 보자. 너도 결혼하자. 그 말을 듣는데 진짜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아니.. 나 엄마가 중학교 때 섹스하게 해 줬으면
이미 제니주노 찍고 할아버지 소리 들었을 텐데 왜 이제 난리냐고...
진짜 하나만 해라...
그때 사실 저는 남자친구랑 뽀뽀한 거 들켜서
산부인과 끌려갔거든요...
11.
제가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어디 가서 이런 말
쪽팔려서 못 했는데요.
사실 저 결혼정보업체 VIP거든요.
25살 때부터 선을 봤어요.
듀오, 가연, 노블레스, 선우 뭐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처음에는 진짜... 비참했어요.
팔려가는 느낌?
그래서 저는 선보러 가면 남자들에게 딱 3가지만 질문했어요
* 성매매 하세요?
* 육아휴직 쓸 용의가 있으신가요?
* 처녀 좋아하세요?
이 3가지를 다 통과한 남자가 없었어요.
매니저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났죠.
얘는 정상이 아니다.
12.
그래서 한동안 안 하다가, 죽다 살아난 아버지의 소원이어서 다시 선을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저도 마음을 좀 고쳐 먹으려고 결혼정보업체 매니저님의 조언도 받았어요.
"아 매니저님, 제가 아직 남자에 대해 눈을 못 떠가지고...
어떡하면 좀... 남자랑 잘 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러시더라고요.
"성은 씨, 명품 매장 갔을 때~ 어떤 가방 사야 돼?"
"음... 제일 예쁜 거요."
"성은 씨, 뭘 모르네~ 무난한 걸 골라야 돼. 그래야 오래 매지.
남자도 무난한 게 최고야. 너무 잘생긴 거? 너무 돈 많이 버는 거? 다 필요 없어."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만나야 할 사람이 무난한 남자라고?
하지만 우리 나이 들수록 느끼잖아요
보통의 삶을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물었죠
"그 무난한 남자에게 애프터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러자 매니저님은 말했어요.
"성은 씨, 성은 씨는 끼가 정말 많잖아.
가서 그 끼를~
최대한...
보여주지 마.
그리고는 그냥 가서 배시시 웃어."
그렇게 하라는 대로 선을 5번쯤 봤는데요~
와~ 애프터율이 100%
이 원피스 입고 가서 웃기만 하면 프리패스~
얼굴에 아다고 쓰여 있나 봐요
13.
어제는 선본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분이 카톡 프사 넘기다가 오늘 공연 포스터를 보신 거예요.
"성은 씨… 코미디언…이었어요…?"
저는 놀라서 말했죠.
"아니요… 이거 학회예요. 구술문화연구회. 제가 연구원이라서…"
그러니까 여러분, 오늘 공연 SNS에 올리면 안 돼요.
해시태그, 온라인걸레, 이런 거 올리면? 저 그 남자랑 못 자니깐요~
이상 정성은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코미디로부터 조금씩 멀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각자의 삶을 사느라. 그 사이 나는 남자친구가 생겼고, 뉴욕에 다녀왔고, 다시금 코미디가 하고 싶어 동북구연 멤버 중 가장 열정 넘치는 재용과 함께 서촌코미디클럽을 차렸다. 그리고 2022년 8월 첫 오픈마이크 하는 날, 함께 코미디 했던 줄리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성은~ 나 웃긴 이야기 준비하긴 했는데... 오랜만이라 너무 떨리는데 어떡하지?"
"네가 못하면 누가 하니. 잘할 거야. 와줘서 고마워."
"근데 성은... 남자친구 생겼다며? 다운에게 들었어."
"응!"
"그럼 그거도 했어?"
"아... 응!"
"그럼 이제 코미디 못 하겠네?"
"아... 응..."
"성은 어떡해? 이제 그저 그런 여자가 된 거네...?"
"......"
동북구연에선 늘 섹스 못한 이야기로 코미디 했다. 그게 재밌으면서도 참 수치스러웠다. 내가 인기 없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는 것 같아서. 하지만 막상 하고 나니 '와... 그거 진짜 좋은 소재였는데 왜 그렇게 부끄러워했을까?' 싶다.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를 꼭 안아주며 말해주고 싶다. 그거 별 일 아니라고. 그럴 수 있다고. 남들 다 한다고 너도 꼭 할 필요는 없다고.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내가 보기에 어떨런지. 언젠가는 다 지나가겠지만 나는 지금을 살 수밖에 없으니 고군분투할 수밖에. 그래도 왠지 이 글을 쓰고 나니, 지금의 이 마음들을 더 기록해두고 싶다. 내가 무엇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힘들어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웃어넘기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