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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은 Sep 18. 2023

인터뷰하는 마음

책을 내고 나니 인스타그램에 책 사진을 올리거나 독후감을 공유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감사한 마음에 열심히 하트를 누르고 공유한다. 그런데 어제는 처음으로 공유하기 주저되는 후기가 올라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침내 읽은 <궁금한 건 당신>. 읽다가 내가 아는 사람의 인터뷰도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 (이름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 정황상) 마음이 복잡했다. 내게 그리 좋지만은 않았던 사람의 인생이 조금 포장된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이루어온 과정에서 건강해 보이는 면만을 보여주고 싶어 하니까. 인터뷰는 그러기에 너무 적절한 도구이기도 하고. 훌륭한 신념을 가진 사람의 행동이 다 훌륭한 것도 아니고. 나도 마찬가지라서 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제외하고서는 보통의 사람을 궁금해하는 작가의 거리감이 좋았다. 나도 택시 기사님 사는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하는데 (정치 얘기만 안 하면) 택시를 바꿔가면서 자신의 삶을 운전하는 각자의 기사님들에게 인생사를 듣는 것 같았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집에 다 왔는데도 내리기 싫어졌다. 기사님 얘기를 더 듣고 싶어서."


지금 보니 참 감사한 후기지만 당시엔 앞부분 이야기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아 메시지 보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그분이 누군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사실 적을까 말까 하다가 작가님이라면 알고 싶어 하실 거 같아서 말씀드려요. 하지만 다 옛날 일이에요. (중략) 그래도 성은님 인터뷰는 무조건 좋은 사람으로만 비치진 않아서 불편함 없이 잘 읽었어요!"


결국 그 스토리는 공유하지 못했다. 책에 나온 사람들이 자기라고 생각할까 봐. 하지만 곱씹을수록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기반의 글을 쓰거나, 누군가 유명해지는 과정에서 자주 일어나는 ‘저 사람 별로인 면도 있는데…’ 하는 것들. (내 책이 익명의 인터뷰여서 잠시 간과했다.) 무엇보다 '포장'이라는 말에 뜨끔했다. 사실 나는 야구선수가 경기장에 임하는 기분으로 인터뷰를 하기 때문이다. 배트에 공을 쳐서 하늘 높이 올리는 것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 적어 온 힘을 다해 세상에 띄운다. 거기에 포장이 없을 리가.


하지만 아름답게 포장된 남의 자랑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독자에게 흥미를 주거나, 위안이 될 순간들을 모아 이리저리 배치하고 잘 다듬어 내보낸다. 인터뷰당한 이도 '이런 얘길 해도 되나?' 싶지만 그게 싫지 않게, 오히려 해방이 되고 자유로워지게끔, 독자도 그것에 매료되어 재밌게 읽을 수 있게끔. 인터뷰를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무리 나에 대해 칭찬하는 글이어도 공유하기 꺼려되는 기사가 있는 반면, 나를 박해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안에 진득한 진실과 사랑이 녹아있다면 공유하고 싶은 글이 있다.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타인을 소재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에는 조심스러움이 요구되고 뒤따르는 고충이 있다 보니 이런 피드백을 받았다고, 가족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말하자 아빠는 말했다.


"원래 사람이 가까이서 보는 거랑 멀리서 보는 게 다르잖아."


좋아 보이는 사람도 가까이서 보게 되면, 일 등으로 엮이게 되면, 별로인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라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빠의 말을 그 반대였다.


"어떤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을 때, 그 사람의 전부에 대해 아는 게 아니잖아. 그에겐 치사한 면이 있을 수도 있고, 자기 욕심만 부리는 면이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상대의 마음속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그의 좋은 모습이 발견되기도 하니까. 근데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자기 속얘기, 힘든 얘기 잘 안 하니까.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런 기회도 잘 없고. 그래서 자신의 좋은 면을 드러낼 일이 많이 없는 것 같아. 네가 그런 걸 도와준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든다면... 정말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싶다. 하지만 어째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역시 진실의 한 조각일분이니까. 누군가를 잘 모르면서 좋게 보는 것과 잘 알아서 안 좋게 보는 것 중 뭐가 더 바람직한 걸까. 


다음 날, 김영하의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듣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인간은 복잡하고 흥미롭죠. 소설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예요. 수업에 가서 학생들에게 ‘주인공이 어떤 인물이냐?’ 물으면 '평범한 회사원이요.'라고 말해요. 평범한 회사원은 없어요. 그렇게 보일 순 있지만 그런 인물은 존재하지 않죠. 인간은 모두 다르고 모두 특별합니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평범해 보일진 모르지만 저 사람에겐 어떤 특별한 점이 있을 거야.' 여러분 자신만 생각해 봐도 그렇잖아요. 타인에게 다 드러내고 살지 않잖아요. 나에게 비밀이 있다면, 타인에게도 비밀이 있겠죠. 나에게 특별함이 있다면 타인에게도 특별함이 있을 거고요. 나에게 어떤 부끄러운 면이 있다면 타인에게도 있다는 것을 믿고, 타인을 관찰해야 합니다."


광화문 글판에서 본 시의 구절이 생각났다.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이라고. 볼 때마다 아름다워 사진 찍은 것 같은데 끝내 해내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거의 유일한, 잘하고 싶은 일인데... 김영하 소설가는 숙제를 냈다.


“타인을 1인칭으로 묘사해 보는 짧은 글을 써오세요. 가까이 있는 사람 중에서요. 형제, 부모, 연인. 집에 있는 고양이는 어떨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소설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죠. ‘선생은 오늘도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왔다.’ 이제 좀 감이 오시나요?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도 좋아요. 절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물도요. 너무 싫은 사람. 여러분에겐 있나요? 그 인물의 1인칭이 되어 하루를 상상해 보고 글로 써오세요. 아무 저항감 없이, 거리낌 없이 타인의 마음을 상상해 보셔야 되어요. 틀려도 되니까."


가까운 사람을 생각하니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그 사람의 외로움을 내가 다 못 헤아린 것 같아서. 싫은 사람을 쓸 생각하니... 무섭다. 그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면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될 것 같고, 그럼 더 이상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게 편하고, 계속 그러고 싶은데...


아직까지 내가 한 번도 인터뷰하지 않는 대상은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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