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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닛 Dec 02. 2023

알고 보니 그런 일

제대로 알면 보이는 것

약 1년 전에 다른 선생님이 그만두면서 나에게 넘어온 아이들이 있다. G와 S 쌍둥이였는데 지금은 S 쌍둥이들이 그만두고 G만 학원을 다니고 있다. G와의 수업은 항상 왁자지껄하다. G가 친구들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부터 내가 맡은 아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정이 영 가질 않았다. 물론 아이는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지만 나도 모르게 G에게는 좀 더 엄격하고 딱딱한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더 기다려주고 들어줬을 텐데 G가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이끌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수업 내내 “그만.” “하지 마세요.” “조용히 할까? “라는 말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거의 처음으로 G와 1:1로 수업하게 된 날이었다. 1:1로 만나게 된 G는 내 생각보다 수줍은 아이였다.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도 평소 친구들과 큰소리로 이야기하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진 채 소곤소곤 읽는 G가 내게는 새로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이 아이를 제대로 봐주질 못했구나.


초등학교 1학년인 G에게는 5학년 누나가 있다. 아무래도 누나가 있는 만큼 집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것 같다. 어린아이로만 귀여움을 받다가 수업 시간에 무언가 스스로 시도해보려고 할 때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이다.


밝고 명랑하다. 그리고 수줍다. 친구들을 배려할 줄 안다. 가끔 누나를 놀리기도 하지만 원래는 선한 아이다. 나도 모르게 아이의 행동으로 아이를 판단하고 있었나 보다. 반성을 하며 나는 그날 G와의 수업을 꽉 채워 마쳤다.


지금 G는 책을 찬찬히 읽는다. 처음에는 너무 빨리 읽어 나도 G의 엄마도 고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며 읽는다. 원래부터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는 것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였다. 내가 태도를 바꾸자 아이도 달라졌다. 이전보다 책을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


G에 대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인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사실 G는 이전 선생님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나와의 수업을 시작한 지 한 달 동안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선생님, 제 옆에 앉지 마세요!”

“왜 자꾸 내 옆으로 와요?”


사실 옆으로 다가가지도 않았건만… 아무튼 시간은 흘러 그런 G가 나름 나에게 적응하며 서로 무난하게 수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하루는 G가 수업에 늦게 오면서 하는 말이,


“엄마가 학원 그만두래요.”


나는 심장이 덜컹했다. 종종 학원을 정리하려는 엄마들이 아이 앞에서 말을 흘리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말들은 아이들 입에서 나와 결국 선생님도 미리 눈치채게 된다. 이번에도 그런 일일까?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수업을 계속했다.


“사실은 제가 열심히 안 하면 학원 그만두라는 거예요.”


수업이 끝나고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에서 나는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알고 보니, 이 아이, 나를 좋아한다!


오,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나와의 수업을 좋아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엄마는 이 학원 수업을 너무나 좋아하는 G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했던 것이다! 평소에 G에게 딱딱한 선생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나는 (내가 평소 했던 것들이 있기 때문에) 짐작조차 못했던 부분이었다. G는 사실 나와의 수업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방학특강 인문학 수업을 진행했을 때, 1~2학년 아이들에게 ‘케첩 좋아, 토마토 싫어’란 책을 읽게 한 적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케첩은 너무나 좋아하는데 토마토는 싫어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케첩은 토마토로 만들었고 놀란 나머지 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아이들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려고 교재에 알고 보니 내 생각과는 달랐던 경험을 적어보게 했다. 거기에 나는 이렇게 써야겠다.


알고 보니, G는 너무나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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