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라는 건 자세히 보아야 안다
S는 7살 때부터 내가 계속 가르쳐온 지금은 초등학교 1학년인 여자아이다. S를 처음 봤을 땐 말수가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S와 함께 한 반은 4명 정원이 꽉 찬 반이었는데 모두 여자아이들이었다. 활발하고 자기주장이 센 아이들 사이에서 S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문득 기억나는 날이 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수업하던 날이었는데 S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겉옷을 뒤집어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지 뭔가.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왜 그러는지 파악이 안 돼서 나는 일단 부드럽게 겉옷을 내려놓으라고 이야기했다.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S의 표정이 수업 끝날 때까지 좋지 않았다.
나중에 S의 엄마와 통화를 하고 나도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나니 S가 이해됐다. S는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살짝 감정이 상했고 속상한 나머지 숨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알리기 싫으면서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7살 때의 S를 생각해 보면 엉뚱한 부분이 많은 아이였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수업할 때 어떻게 보면 전혀 생소한 이야기를 꺼낼 때가 많았다. 어떤 포인트에서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지 나는 짐작조차 못하지만 나름의 세계관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자신의 경험과 새로운 이야기를 결합시키곤 했다.
어느 날 S의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S의 성장에 대해 나눌 때 걱정스러운 염려의 목소리가 들렸다.
“S가 가끔은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요.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걸까요? “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S가 상상력이 풍부하네요! 자신만의 주관이 강한 아이예요. 자신만의 생각을 지금까지 마음껏 펼쳐보았다면 이제 곧 학교에 가서 보편적인 정서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은 나도 그럴지 어떨지 모르는 채 S의 가능성을 믿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로 S는 그렇게 성장했다.
항상 일기를 매일 몇 장씩 쓴다는 S는 지금도 수업 중에 자신의 생각을 조잘조잘 말한다.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자신의 상상과 생각을 말한다. 나는 경청이 곧 힘이고 응원이라 믿기에 끊지 않고 들어준다. 이에 S는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분위기 속에서 배운 것들을 착착 쌓아간다. 내가 가르쳤던 아이 중에 이렇게 배운 것을 주변과 연결시키고 적용하는 아이는 S가 독보적이다.
하루는 ‘배려’에 대해 배운 날이었다. 아마 주제는 ‘이웃’이었던 것 같다. 친구도 우리의 이웃이며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사실 요 며칠 동갑내기 여자애 2명(현재 수업 중인 S와 M) 사이에는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던 차였다. 별건 아니고 서로의 양보가 있으면 없었을 신경전이다. 이날 배려에 대해 이해하자마자 S가 이렇게 말했다.
“이 책 너 먼저 읽어!”
종종 S의 엄마로부터 S가 그날 배운 내용을 어떻게 엄마와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는지 소식을 전해 들으며 아이가 제대로 배웠음을 실감한다.
일기도 잘쓰는 S는 자신의 관점으로 글을 잘 쓴다. 방학 때 인문학 특강을 하며 시사적인 질문에 대한 글도 곧잘 써내려가곤 했다.
사실 나는 S가 이 정도로 성장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의 성장이란 건 식물이 자라는 것과 비슷해서 하룻밤 자고 일어난 사이 싹이 트고 잎이 나며 꽃이 피는 것과 같다. 자세히 보아야 더 사랑스럽고 자세히 보아야 그 성장의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그야말로 제일 기쁜 순간이다.
S는 너무나 예쁘다. 그 사실을 나도 오랜 시간 자세히 들여다보아서 알았다. 예쁜 S가 더욱 커가고 성장해 가며 진짜 어른이 되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순간을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