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대한 예의
브런치 발행을 멈추고 며칠을 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낯설어진다.
'이러다가 다시는 발행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발행뿐 아니고, 내 글이 초라해 보여 이제 그만 쓰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컴퓨터가 생겼다. 하필 발행을 멈추겠다고 하고서 말이다.
'이를 어쩐다.....'
하얗고 예쁜 것.
어느 날 컴퓨터가 없는 불만을 토로하며 했던 말장난은 씨가 되고, 내게 커다란 열매가 되어 돌아왔다.
순도 100 퍼센트의 농담이었다. 농담을 진심으로 받는 이 무서운 우리 집 사람들..
10년도 넘도록 사용할 일이 없던 컴퓨터를 만지는 일이 무척 두렵게 느껴진다.
나는 기계치도 아니고, 심지어 예전엔 친구들이 컴퓨터를 봐달라고도 하던 사람이기도 했는데 마치 처음 만난 신문물처럼 이렇게 낯설 줄이야.
'설마 터지는 건 아니겠지?'
남편과 아이들이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 말을 왜 그리 빨리 하는 건지 이해하려니 숨이 찬다. 내 입으로 말하기 싫지만 '늙어서인가?'
하지만 이 선물이 부담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글 때문이다.
이 고가의 물건이 필요했던 이유가 글쓰기가 불편해서였는데 글을 그만 쓰려던 순간에 내 앞에 나타나다니 당황스럽다고 난처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 어디서, 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넝쿨째 떨어진 호박같이 득템 한 물건으로 성과를 보여야 하는가?
비싼 물건의 값어치를 하려면 공모전이 나을까, 투고를 해봐야 하나?
"풋"
입 밖으로 비웃음 새어 나오는 과한 고민이다. 역시 걱정인형은 남다르다.
나의 글쓰기 시작이 언제였는지 명확하지 않다.
생각해 보니 중학교 1 학년 특별활동을 결정해야 하는 그 시간이었다. 엄마 없이 처음으로 매우 주체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허둥대던 중 거의 마지막에 이르고 있었다. 작문반에 든 손이 가장 적었고,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특별활동일 거라는 추측으로 손을 번쩍 든 것이 시작의 순간일 것 같다. 그러나 아주 조금쯤은 초등학교때 해본 200 자 원고지를 글자로 채우는 그 일이 좋아서였다.
이유도 목적도 시시한 시작. 하지만 무엇이든 시작이 시시했다고 해서 끝조차 대충이면 너무 슬프다.
아마도 이렇게는 멈추지 말라고 과분한 열매가 내 앞에 뚝 떨어졌나 보다.
그렇다고 대작을 쓰겠다는 거대한 결심은 아니다.
시시한 시작이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는 것. 그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겠다는 것.
그 정도는 되어야 시작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그래. 걱정이나 좀 덜어졌으면 일단 더 낯설어지기 전에 발행을 하자.
"오호! 아주 화면이 큼직하고 키보드도 부드럽게 눌리고 좋구먼."
(그사이는 이렇게 겨우 일주일 만에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역사적으로 2025년 1월 15일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그저 시작일 뿐인 하루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끝은 아니다.
시작했으면 끝까지 계속하여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이 시작에 대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