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노래. 한계령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강원도를 가려면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 지금은 그 산을 관통하는 길이 놓여있다. 동쪽 경기도에 사는 나는 새벽녘에 쉬지 않고 내처 달리면 한 시간 반이면 속초에 닿고, 강릉도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게 도착한다.
중앙시장에 장을 보고 물회를 먹고 커피 한잔의 여유까지 느끼고 돌아오기에 충분한 반일치기 코스다.
어릴 적 동해바다를 가자면 4시간 이상이 걸렸다. 대관령은 완만하게 산을 넘는 길이었고, 한계령은 굽이굽이 험한 길이었다.
라면발처럼 꼬불거리는 길을 자동차가 애를 쓰며 올라가야 했고, 내려갈 때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조심히 운전을 해야 했다. 그 내리막은 운전하는 사람이나 운전자가 아닌 사람이나 긴장되고 무서웠다. 좁은 2 차선길을 큰 버스가 지나칠 때는 정말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길 끝에 새파란 동해바다를 만나는 일은 아주 황홀했다.
사람들은 한계령을 넘어 동해를 다녀올 때마다 자동차가 망가지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아마도 강원고속버스는 브레이크 패드를 자주 갈아야 했을 거 같다.
나는 금강산인 줄 알고 설악산에 멈춘 울산바위를 가까이 만날 수 있는 한계령 2차선 길이 참 좋았다.
노래 가사가 내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있다.
처음 나온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의 가사가 마치 내 이야기인양 절절하게 고 3의 마음을 후벼 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 며칠째 다시 양희은의 한계령이 내 노래 같은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나와 상관없지...............않고,
금전과 관계되는 변화가 생길 때마다 탐욕의 본성이 꿈틀거리다가 글을 쓸 의욕이 상실되니 아주 깊이 상관있다.
브런치란 산은 종종 자신 없으면 얼른 내려가라 하는 것 같다.
신청서 자기소개에 썼던 처음에 가진 마음이 때때로 진심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자꾸만 욕심이 생기고 자꾸만 좌절을 한다.
브런치 작가 신청 3수.
연재북 출간 공모 탈락.
크리에이터 초록배지도 못 받았다.
메일로 온다는 협업, 출간 제안 같은 건 받은 적도 없다. 피싱메일은 한번 받았다.
응원받기로 친구의 피 같은 돈 3000원 중 1890원이 내게 입금됐다. 응원 받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특기 : 수상 또는 출간한 작가님 손뼉 쳐주기
이것이 브런치 생활 1년 6개월 간 348개 글수에 대한 내 성적표다.
맞다. 자신은 없다.
언감생심 저 산 정상에 오를 자신은 없지만 뭐 그렇게 쉽게 내려가는 사람은 아닌데 이 산을 자꾸 내려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오르다 힘들면 경치 한번 보고 또 오르고 그러다 보면 고불고불한 내리막을 만나고, 결국 바다에 다다를 것만 같다.
그렇게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보려 한다.
브런치에서.
(타이틀 사진 속 산은 설악산이 아니고, 앞산입니다.)
*노래 한계령의 아름다운 가사는 <시인 정덕수님의 시. 한계령에서> 에서 가사화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