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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틴더를 시작했다

독서일기

by 그사이
< 5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틴더를 시작했다 >

문태리 지음

독서를 하고 싶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최우선 순위는 호기심이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 한 가지.

내가 모르는 세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호기심.


요즘 많은 젊은이들은 데이팅 앱을 통해서도 이성을 만난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떻게 거짓일지도 모르는 정보를 보고 사람을 만나니? 겁도 없다." 하고 말했다.

"학력, 집주소까지 넣어 인증하는 앱도 있지만 다 마찬가지야. 차라리 틴더가 솔직하지."

"난 상상할 수가 없다. 요즘처럼 불안한 시대에 그렇게 이성교제를 시작한다니."

"불안하지. 그런데 생각보다 이성을 만날 데가 없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친구나 지인을 통해서 소개받지 그래?"

"그렇게 만나도 이상한 사람은 많아."

"운치 없이 그게 뭐냐?"라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말을 해버렸다.


운치라니 무슨 얼토당토 않은 말인가?

그 옛날에도 중매쟁이가 정보를 속여 이성을 만나게 하고, 속까지 다 아는 친한 친구들을 서로 소개하고 결혼에 이르렀지만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일이 허다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건강한 남녀 관계의 성립이 조건이나 정보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다.

사실 사람의 삶과 사는 방식이 다를 뿐 무엇도 이상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깊이 모를 불확신의 바다에서 사람을 찾는 일이 나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나는 유해하다고 편협한 잣대를 맞추었던 데이팅 앱 틴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그 세상이 궁금해졌다.

작년에 여러 검색을 통해 관련된 책을 찾아보다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책이 손에 들어오자 어느새 호기심이 사라져 책꽂이에 얌전히 넣어 두었다.


심심한 오후.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가볍게 읽을 책으로 선택했고, 독서는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책 안에는 신기한 세상과 유니크한 신세대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작가는 오랜 연애를 끝낸 후 틴더를 통해 만난 남자 A. B. C. D..... Y 그리고 헤어진 전 연인 Z. 를 만나며 가졌던 자신의 마음에 대한 말을 한다.

낯 간지러운 내용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용감하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독서자가 잘 이해하도록 흥미롭게 쓴 글이었다.

작가가 여성이지만 반드시 여성 편에 서는 의견에 국한하지 않는다. 성숙한 인간관계를 원하는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두는 것이 옳다. 그러기 위해선 여자의 생각을 그리고 남자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반드시 필요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데이팅 앱에 대한 자신이 경험과 인터뷰를 통해 불안감과 위험성, 주의할 점에 대해서도 세련되게 조언한다.


104쪽으로 얇고, 짧은 시간 내에 마친 독서는 생각을 깊고 넓게 만들어주었다.

지금까지 찝찝하게 넣어둔 나의 의문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선명해진 질문에 대한 현명한 해답을 발견했다.

내가 거의 사라져 있다는 것.

자신을 잃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삶은 결코 누구에게도 도움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잘난 체해봐야 답답하게 여겼던 윗세대와 별다름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세대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을 통해 놀랍게도 각성을 경험했다.


최근은 과년한 아이들의 연애사에 가장 관심이 많고,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과잉보호를 한 편인데 지금은 그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언제까지 보호가 가능하지 않은 시기가 되고서야 어린 살로 살아내기는 더 어렵다고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성장한 후에 자유롭게 살라했던 것은 오만하고 아주 무책임한 말이었다.

아이들의 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겁이 나지만 차츰차츰 굳은살을 만들라고 뒤늦은 말을 한다.

일도 이성관계도 어디에서든 나를 잃지 않는 것을 중심에 둔다면 용감하게 넓고 넓은 바다에서 헤엄쳐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이란 아무리 조심해도 계속 상처가 생긴다. 세상 모든 일을 경험할 수 없지만 경험으로 얻어진 것은 몸에 각인이 되며 굳은살을 만든다.


자신을 지우지 않고, 아름다운 사람 관계를 맺기를 바라며 이 책을 내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메디컬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6에 ‘크리스티나 양’과 ‘오웬 헌트’라는 연인이 나온다. 의사인 크리스티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오웬은 자신보다도 일이 우선인 크리스티나에게 늘 서운해한다.
(중략)
“버크를 만날 때, 그는 내게서 뭔가를 뺏어 갔어요. 내 일부를 뺏어 갔고, 조금씩 천천히 뺏어 가서 나는 눈치도 못 챘어요. 그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나는 그렇게 됐어요. 나는 원래 크리스티나 양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의사 생활을 걸면서까지 버크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결국 결혼도 하기로 했어요. 난 반지를 끼고 신부가 되었어요. 눈썹도 밀고, 웨딩드레스도 입고 결혼식장에 서 있게 되었죠. 그때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어요. 그러면서도 나는 그와 결혼하려 했어요.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잃었었고, 이제 비로소 내가 다시 내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당신을 버크보다 더 사랑해요. 그래서 겁나요. 왜냐면 당신이 오늘 내 상사의 호출을 무시하라고 했을 때, 당신도 나의 일부를 뺏어 갔거든요. 난 당신이 그러도록 내버려 뒀고요. 그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해요.”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크리스티나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에게 맞추고 싶고 그가 원하는 걸 들어주고 싶어진다. 그게 원래의 내 모습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방식일지라도.
문제는 그런 변화들이 내가 나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고 나를 결국 무너지게 한다는 점이다. 나의 의지와 나의 가치관이 상대방의 그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크리스티나의 말처럼 내게서 뭔가를 빼앗아 가는 일이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의존을 넘어 나를 지우는 것이 되어 버린다.

5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틴더를 시작했다. p.084-p.085





독서 그 후.


독서하며 블로그에 매일 일기처럼 업데이트하며 완독하면 글이 완성된다. 사실 이 책을 브런치에 쓸 계획은 없었다. 읽음 표시가 10을 넘지 못하는 소극적 블로그의 주인장인데 최근 이 책글이 무려 조회수 50을 넘기고 있다. 매일 첨가한 메모 같은 글인데 미안한 생각이 든다. 검색을 하면 후기가 별로 없는 책이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좀 더 성의 있는 독서일기를 남기기로 한다. 감사를 전하기에 충분한 책이므로.


독서 후 아이에게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 그래도 괜찮을까 고민도 되었다.

결국 이 책은 첫 아이에게 권하는 세 번째 책이 되었다.

첫 번째는 취준생 시절 <월든>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어느 면접 시 책에 대한 질문에 <월든>을 떠올려 답을 했다고 한다.

두 번째 책은 독립생활을 하며 신입사원이던 시절 <김용택 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였다. 첫 회사를 그만두며 아껴주신 상사에게 감사의 선물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 시인을 아느냐고 놀라셨다고 하며 여전히 서로 연을 잇고 있다.

세 번째는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지금. <5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틴더를 시작했다>다.

"와우! 도파민 터져!"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세 권의 책이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어릴 때는 권장 도서를 읽게 했지만 크고 나서는 책을 권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독서 후 간혹 아이에게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첫 아이긴 하다. 그 이유는 성별과 상관없이 늘 내게 처음을 선물해 주는 첫아이에 대한 노파심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 가끔 요즘 어떤 책이 재밌냐고 내게 묻는다. '그 사람이 느끼는 재미가 무엇일까?' 도서 권유는 타인에게 하기가 참 어렵다. 그리고 대상이 다 큰 자녀일 경우는 더 난감하여 권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난해하듯 아이들에게도 부모와 세대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테니 책을 권하는 것은 예민한 일이었다.

어느 날 책을 권하게 됐고, 괜찮은 일이라 여겨진 것을 보면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싶다.

아참, 아이가 권해준 책 중 "엄마가 이해 못 할 말들이 좀 나와.'라고 말했지만 나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아주 좋았고, 우리가 책을 권할 수 있는 관계임은 참 감동적이다.


어느덧 아이가 품 안에서 벗어난 지금 그리고 내가 없을 미래.

어느 순간에 우리의 관계가 책을 통해 세밀한 영향을 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이전 글 <랩걸>과 마찬가지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불안을 위로하는 책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세대차이를 극복해 보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다음 세대를 따라가는 일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벅차다. 독서를 통해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었음과 내게도 용기를 가지게 한 좋은 독서였다.


<5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틴더를 시작했다>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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