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 오토바이 타는 여자 >
임수진 지음
에세이
시. 김정임 시집 <아직은 햇살이 따스한 가을날>에서 인용함.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 1일
이 책은 지난번 글쓰기 공부를 위해 읽은 <밤호수의 에세이 클럽>을 쓴 임수진 작가의 에세이집이다. 작가의 글방향이 마음에 들었고, 그의 에세이집을 읽어보고 싶었다.
사실은 <안녕, 나의 한옥집>을 읽으려 했다. 나는 표지에 한옥집이 그려진 첫 인쇄본을 사고 싶었으나 품절되어 고민하다가 마음을 바꿔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를 선택했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알진 못했다.
평소 에세이는 소설과 달리 천천히, 서서히 음미하며 아껴읽게 된다. 그러므로 독서를 시작해도 끝이 언제일지는 모를 일이다.
책을 받자마자 이 예쁜 에세이집이 기대가 되었다. 책이 도착한 밤. 노르스름한 불빛의 잠자리 옆 스탠드를 켜고 읽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책이라니..
엄마의 시를 정성껏 담고, 시와 엄마란 여자의 삶을 연결 지으며 딸이 글을 쓴다.
딸은 글 속에서 엄마의 80년 인생을 산다. 엄마인 듯 나인 듯..
1부는 여자(작가의 어머니)의 청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여리고 꿈 많은 소녀였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한다.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 눈물이 났다..
한 권의 시집을 내었다는 작가의 어머니가 쓴 시가 마음 깊숙이 새겨진다.
서시
김정임
한밤
일어나 앉아
방을 닦는다
지저분한 주위
이대로 갈 수는 없잖은가
한밤중
다시 일어나 앉아
손을 닦고 또 닦는다
먼지 묻은 손
이대로 갈 수는 없잖은가
맑은 눈으로 시를 쓴다
몇 번을 태우고 태운 낙서지만
이대로 갈 수는 없어
새벽녘
쓸고 비운 가슴에
빨래처럼
시 한 조각이 널린다.
오토바이 타는 여자. p.24 - p.25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 2일.
더위도 배고픔도 할 일도 모두 뒷전에 두고 독서를 이어간다.
2부는 여자가 엄마가 되어 시를 쓴다.
엄마가 된 여자가 쓴 시를 여자의 딸이 엄마가 되어 이야기한다.
엄마와 딸의 마음을 넘나들며 쓰는 글이 아주 세련되고 유려하게 담겨있다.
아무래도 난 이 작가에게 반한 것 같다.
첫아이라 모든 것이 신기했던 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 여자도 자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자꾸 자라는데 여자는 더 이상 자랄 데가 없었다.
오토바이 타는 여자. p73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 3일.
3장은 여자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껴 읽으려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렇게 강렬한 에세이가 있을까?
잔잔하게 읊조리는 작가의 말들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눈물이 난다.
눈물의 의미는 슬픔이 아닌 전율이다.
여자의 오토바이 끝에 매달린 나는 여자의 꿈속에서 말했다.
왜 오토바이를 멈추지 않았냐고.
왜 이 꿈에서 나가지 않았냐고.
왜 풀꽃울 꺾지 않았냐고.
왜 닻을 올리고 하얀 배에 타지 않았냐고.
왜 더 시를 쓰지 않았냐고.
여자는 말했다.
너희가 있는 이 꿈속이 너무 아름다웠노라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순간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노라고.
그리고 지금 네가 나의 글을 쓰고 있지 않느냐고.
오토바이 타는 여자. p.163-p.164
독서 그 후.
내가 계속 글쓰기에 노력하고 있는 목표 지점엔 나의 엄마가 있다.
“어떻게 엄마를 써야 할까?”
가여운 엄마.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보고 싶은 엄마.
내 글의 종착지는 엄마에 대해 쓰는 것이다. 종종 글에 엄마가 등장할 때 언제나 억지의 감정을 짜내거나 신파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내 안에만 간직하고 있는 엄마를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글에 등장할 때마다 감정이 앞서는 것을 어쩔 수 없었고 그렇게 폐기되는 글이 많아졌다.
종착지에 도착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다고도 여겨졌다. 조금 계획을 수정하여 엄마의 이야기는 소설로 써야 할 거라 생각했다. 공모전에 냈던 소설 속의 엄마는 각색이 되어 내 엄마 같지 않았다.
허구의 결과는 당연히 탈락.
우리는 완결, 미완결인 인생 소설 여러 편씩을 가지고 살아간다. 무지한 내 상식선에서 본다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시공을 넘나들며 화려하게 어디까지 든 갈 수 있는 것이 소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은 실화다."라고 느낄 때 더욱 짜릿하고 극적인 감동을 주는 것을 보면 에세이가 승자다.
“그렇다면 어떻게 에세이를 써야 할까?”
언제나 내가 가진 질문이다.
밤호수 임수진 작가의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는 소설이 아니어도 강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내 질문에 대답한다.
나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는 수필 작가로서 내게 우상이 되었다. '마음에 안 들어. 안 들어. 소설 별론데 왜 자꾸 소설가라고 할까? 수필이 정말 좋은데.'라고 소심한 마음속 평론을 했다. 청춘을 함께하며 눈물 흘리게 했던 박완서 작가의 수필은 나를 참지못하고 글을 끄적이는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사실 에세이를 좋아하고 감동을 받지만 저절로 눈물이 나는 경우는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를 읽으며 두 번째 그 경험을 하게 됐다.
"어쩌지? 박완서 작가만큼 임수진 작가가 좋아질 것 같아."
내가 작가처럼 문학적 환경에 놓이지 못함에 살짝 좌절감이 들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신념을 간직한 마음이란 것을 생각한다.
내 신념인 엄마.
엄마의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쯤 엄마를 낳을 수 있을까?
타들어갈 듯한 열기로 가득 찼던 여름.
2025년의 여름은 더위가 아닌 <오토바이 타는 여자>로 기록한다.
더위를 이길 만큼 내 안을 가득 채워준 느낌을 남긴 독서로 나는 조금 더 묵직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오토바이 타는 여자>는 책꽂이 1열에 두기로 하고,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