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인문학과 심리학의 콜라보다. 책 제목만 보면 위로와 응원을 주는 따뜻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인문학적 평론이나 서평이라고 해야 할 책이라서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심리적 위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읽는 즐거움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문학책을 보면서 서평을 쓰고 싶은 사람이 참조하면 좋을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읽을 정도로 작가의 시선이 흥미롭다. 그리고 작가의 심리학적 해석을 보면서 내 안의 그림자와 트라우마, 콤플렉스를 마주하게 된다.
1부 첫 장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서 나온다. 그리고 작가는 질문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넘어서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법은 불가능할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변신』을 소개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그는 벌레로 변신해 버린 자신에게 가장 먼저 엄습해 오는 고통은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출근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 역할을 도맡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가족은 결코 버텨내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 때문에 자기 삶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고서야 가족은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완전히 무력하지 않다는 ‘진실’을 보게 된다. 가족은 벌레로 변신한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여동생은 벌레가 된 그를 가족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레고르는 가족과 인간 세계로부터 완전히 추방당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자신이 아들이었다면 부모님이 자신을 더 사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던 기억과 평생 노력해도 자신은 부모님이 원하는 아들이 될 수 없다는 좌절감을 이야기한다.
나도 작가처럼 오랫동안 내가 아들로 태어나지 않아서 부모님이 사랑해주지 않았다는 것에 좌절했었다. 딸로 태어난 나는 어떻게 해도 내 존재 자체로는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슬퍼했다.
한동안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몸부림쳤던 나의 ‘내면 아이’를 보면서 울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부모님께 사랑받는 딸’ ‘아버지 눈 밖에 나지 않는 딸’이 되기 위한 분투를 하며 ‘부모의 기대에 걸맞은 딸’이 되기 위해서 애쓰던 내 모습을 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 그림자와 트라우마를 보게 되었다.
작가는 말한다.
‘부모의 뜻과 상관없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순간 해방감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러니 원하는 것 앞에서 ‘이것이 누구의 열망인가. 진짜 나의 열망인가, 부모의 열망인가, 미디어가 부추긴 유행과 대세인가? 질문해야한다.
책을 읽는 중에 작가의 심리적 해안과 방대한 독서량에 놀란다. 한 권의 책을 한번 읽기도 힘든데 두세 번, 열 번 스무 번 읽었다는 작가의 독서력은 어마어마하다. 이 책 한 권만 보아도 작가 정신이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데미안』을 가장 좋아하고 헤르만 헤세를 사랑한다. 헤세의 작품을 수십 번 반복해서 읽었고 헤세를 찾아 여행을 떠났단다. 그리고 여행 후에는 『헤세』 책을 지필 했다. 또 고흐를 사랑하여 고흐의 작품이 있는 세계를 여행하고 『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출간한다. 작가가 너무 멋지다.
인문학 책을 많이 읽지 못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문학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