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남의 박자는 좆같은 박자다. 내 박자가 맞는 박자다
도서관에 들러서 필사할 책을 찾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책을 골랐다. 우선 책이 자그마해서 좋았다. 마음에 부담이 없이 봐도 될 것 같았다. 표지는 더 예쁘다. 노란 꽃무늬 원피스에 빨간 스웨터를 걸친 백발의 할머니가 씽씽카를 타고 있다. 빨간 립스틱을 곱게 발랐다. 어머! 이렇게 예쁜 할머니라니.
이 책은 어떤 책일까 마구 궁금해진다. ‘아무튼, 할머니가 아니다’라는 꼭지를 찾아 읽었다.
유관순 열사를 ‘유관순 누나’로 배웠고, 김연경 선수에게 ‘우리 누라’라고 부르는 남동생들의 나라에 대해 꼬집는다. 식당에서는 직업여성에게 ‘이모’라고 부른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는 안중근 형님이라 오빠라고 하지 않나? 손흥민 선수는 형 손흥민이라고 하지 않나? 친근하다 정겹다는 이유로 직업인으로서 여성은 객체가 된다는 작가의 주장은 내 머릿속에도 경종을 울렸다.
나도 간호사로 일할 때 선생님이나 간호사님이라는 좋은 호칭을 두고도 꼭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여기가 술집이야? 아가씨 찾게’라고 얼마나 속으로 욕을 했는지 모른다. 병원에 환자로 갔을 때는 직원이 나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아니 왜 내가 네 엄마야? 나 아직 그렇게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야!’라며 화남 반, 당황 반이 되기도 했다.
일하면서 호칭에 예민하다 보니 식당에 가서는 호칭을 부르지 않는다. ‘저기요’라고 불렀다. 절대 ‘이모’, ‘아줌마’로 부르지 않았다. 대신 ‘저기요’라고 불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기요가 뭐야. 저기요가?’라는 생각에 어느 날부터는 아예 호칭을 말하지 않는다. 요즘은 키오스크나 벨이 있어서 호칭을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참 다행이다.
길거리나 식당에서 만나는 할머니를 ‘선생님’, ‘배우님’으로 부르는 작가가 처음엔 영 어색했다. 나중엔 나도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호칭에 관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을 더듬으며 한 꼭지를 읽고 난 후에는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에는 여러 할머니가 나온다. 작가가 어릴 때 함께 지냈던 욕 잘하는 할머니는 손녀 사랑과 손녀 자랑에 찬 할머니다. 작가가 할머니를 추억할 때는 내 입가에도 미소가 걸린다.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 꿈속에서 촬영장에서 농성장에서 만난 할머니, 할머니가 되어가는 엄마 등 여러 할머니를 소개한다. 작가의 시선에는 세상 모든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있다. 유튜버로 123만이 넘는 팔로우를 가진 ‘박막례’ 할머니와 아흔이 가까운 나이까지 영화를 찍은 ‘아녜스 바르다’ 할머니는 노년 여성에 대한 내 편협한 시선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제일 기억에 나는 할머니는 박막례 할머니다. 언뜻 유튜브를 한 번 본 것 같지만 이번에 제대로 찾아보았고 구독하기와 팔로우도 했다. 할머니는 코리아 그랜마로 무한 도전 인생을 살고 있다. 할머니는 욕도 잘하고 자기주장도 명확하다. 그런데 유쾌 상쾌 통쾌하다.
할머니는 구글 본사에 초대받아 미국에 갔는데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단다. 자신이 20대에 영어를 배우지 않은 것, 40대에 커피를 배우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하고 싶은 것 있으면 그때가 언제이든 배우라고 한다. 자신의 인생이 70대에 완전히 바뀔 줄 알았으면 그때 배웠을 거라고. (이건 유튜브 찾아보다 본 영상 내용 중 일부다.)
“내가 젊었을 때는 ‘이거 한번 해볼까?’ 그러면 남들이 그걸 못하게 하는 거야. ‘너는 하면 안 돼.’ 그러는 수가 있어. 그러는데... 그 박자에 맞추지 말어.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해. 내 인생철학은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예요. 남의 박자는 좆같은 박자다. 내 박자가 맞는 박자다.”
노년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는 책이다. 나도 작가처럼 노년 여성 선생님을 응원한다. 책을 보면서 윤여정 배우 선생님이 생각났다.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어떤 할머니로 불리고 싶을까?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그려본다.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할머니.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머니.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독자와 대화하는 작가 할머니. 죽을 때까지 읽기와 쓰기를 하는 할머니.
#아무튼할머니_신승은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하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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