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a countin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d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것이다." <E.H 카>
역사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E.H. 카의 책이다. 고전으로 알고 있고 이미 역사에 관한 여러 가지 정의를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 여럿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30분 이상 집중하지 못했다. 책이 어려운 이유는 영국사, 유럽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고, 영국과 유럽의 무수한 역사가가 등장하기 때문이고, 강의 내용을 그대로 서술했기 때문이며, 내용이 1961년 영국의 지식인을 상대로 강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20대 때부터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고, 어느 날 우리 집 책꽂이에 꽂혀 있었고 계속 눈도장 찍던 책이라서 읽어내고 싶었다. 꾸역꾸역 한번 읽고 정리하고 유튜브에서 토론과 해석을 찾아보고 난 후에 겨우 조금 이해되었다. 열세 번을 읽었다는 유시민 작가도 어렵다고 한 책인데 그 내용을 어찌 다 이해하겠는가. 한 번이라도 완독한 자신을 기특하게 여긴다.
카가 강의했던 1961년 당시 세계는 냉전체제가 심했고, 영국은 제국주의로서 지위가 점점 쇠락하고 있던 때이다. 당시 저자가 느꼈던 상황을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는 변화에 관한 피상적인 이야기들이 요즘처럼 자주 들렸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화가 더 이상의 성취로, 기회로, 진보로 생각되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된다는 사실이다. 정치 및 경제 전문가들이 처방을 내릴 때, 그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란 급진적이고 원대한 이념은 믿지 말라는 훈계, 혁명의 냄새가 나는 것은 모조리 피하라는 훈계, 또는 -만일 우리가 전진할 수밖에 없다면- 가능한 한 천천히 조심스럽게 전진하라는 훈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아 있는 듯하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세계는 문을 닫아걸었고, 세계화 대신 국수주의로 흐르고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미중 간의 갈등 등으로 세계의 경제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2023년 올해도 고유가, 고금리, 고달러에 이어 높은 이자율과 집값의 하락, 물가 상승과 높은 실업 등으로 팍팍한 경제가 예상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라고 하는 불안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변화가 더 이상 성취로 이어지지 않고, 기회가 박탈당했다고 여겨지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경제적으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현실에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역사에서 답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부르크하르트는「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이다.」라는 주장을 빌려서 현재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볼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결코 ‘순수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항상 굴절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역사책을 집어 들 때, 우리의 최초의 관심사는 그 책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역사가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속하는 사람이며, 인간의 실존 조건 때문에 자신의 시대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카가 말하고 있듯이 사회와 개인을 분리할 수 없듯이 역사가도 한 개인으로서 사회와 분리할 수 없다. 역사가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대변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역사가가 연구를 할 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우리도 역사를 대할 때 무수히 많은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역사가는 왜 이 사실을 중요한 원인으로 보았는지’ ‘그의 주장은 올바르고 합당한 지’ ‘본질적인 원인으로서 적합한지’ ‘그의 입장은 무엇인지’ ‘다른 주장과 입장은 없는지’ 그리고 ‘자신은 어떤 입장인지’ ‘현실에서 여전히 유효한지’ 등등 여러 가지를 물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 낮았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처럼 우연함이 역사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이 주장은 합당한 지,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등등 우연과 필연, 인과관계 등에 대한 검토를 해야 한다. 어디 역사뿐이겠는가. 오늘날 신문 기사나 뉴스를 읽을 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기사를 누가 썼고, 어느 신문사에서 썼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역사가는 아니지만 역사가나 과학자가 하는 연구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역사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전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은, 소유하고 싸우는 것은 오히려 인간, 즉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이다.」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역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행하고 판단하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지금 현실에서 여러 어려움으로 각박하고 힘든 상황을 겪고 있다면 ‘그래도-그것은 움직인다’고 말한 갈릴레오의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역사가 일시적으로 퇴보하는 것처럼 보여도(물론 일시적으로 퇴보하기도 하지만) 역사는 결국 진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역사에서 실패로 여겨졌던 어떤 사실도 ‘지체된 성공(delayed achievement)’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날 명백한 실패도 내일의 성공에 중요하게 기여할 수 있음을 역사 속에서 배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