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구운몽

이 책 어때, 서평

by 하민영

몽환과 판타지 소설의 정수

육관대사의 불제자였던 성진은 팔선녀를 희롱한 죄로 벌을 받아 인간 세상에 양소유로 환생한다.

양소유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먼 과거 길을 떠난다. 과거 길에 만나 여자들과 정을 나누고 산천을 유람한다. 과거에 오른 사람이 공부에 정진하기보다는 유희를 즐기며 여자들과 희롱하며 노닐기만 하는데도 장원 급제를 한다. 그의 생김은 현생의 모습이 아니고 그의 능력은 워낙 출중하여 신선의 모습이다. 양소유는 관직을 받고 오랑캐 나라인 토번과의 전쟁에서도 자객이었던 여인과 동정용왕의 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양소유는 두 명의 처와 여섯 명의 첩을 거느리는데 이들에게 질투와 시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여덟 명의 여성들은 서로 벗이요 형제이며 서로를 극진히 존중하고 따른다. 여성들은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으며 능력이 출중하고 호탕하기까지 하다. 양소유의 놀림이나 희롱에는 합심하여 되갚아주며, 임금이나 부모의 주장에 반대 의견도 굴함 없이 자신의 뜻을 펼친다.

양소유는 전형적인 바람둥이 모습을 하고 있으나 화려한 벼슬과 수많은 재산, 높은 명성, 사랑하는 여인과 애정행각 모두 현실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룬다. 그러나 하룻밤 꿈을 꾼 성진은 자기 생각의 그릇됨을 알고 인간 세상 부귀와 남녀 간 정욕이 다 허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구운몽은 고등학교 때 고전 시간에 배웠고, 아이들이 보는 만화책으로 읽었다.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한참 고민이 되기도 했다. 평소에 알고 있는 이야기대로 일지 뭔가 다른 부분이 있을지 살짝 기대도 됐다.

책의 서두부터 문체가 화려하고 환상적인 서술이 아름다웠다. 신선과 선녀들의 세계를 그리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하고, 남녀의 아름다운 연애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다. 약간은 몽환적이고 천상의 세계가 떠오르기도 했다. 여인의 발걸음을 연보(蓮步)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마음이 딱 멈춰버렸다.


다음 장면은 성진과 팔선녀가 만났다가 헤어지는 장면이다.

『손을 들어 도화((桃花) 한 가지를 꺾어 모든 선녀 앞에 던지니 여덟 봉오리 땅에 떨어져 변하여 명주가 되었다. 여덟 명이 각각 주워 손에 쥐고 성진을 돌아보며 찬연히 한 벗 웃고 몸을 솟구쳐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갔다. 성진이 석교 위에서 선녀가 가는 곳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구름 그림자가 사라지고 향기로운 바람이 잦아지자 바야흐로 석교를 떠났다.』15쪽

양소유가 귀신의 모습을 한 가춘운과 사랑을 나누다 헤어질 때 비단 수건에 이별하는 글을 썼다. (75쪽)

서로 만나니 꽃이 하늘에 가득하고 相逢花滿天

서로 이별하니 꽃이 물에 떠 있도다 相別花在水

봄빛은 꿈 가운데 있고 春光如夢中

흐르는 물은 천 리에 아득하도다 流水杳千里


이에 양생이 한삼(汗衫) 소매를 찢어 시를 써주었다. (76쪽)

하늘의 바람이 패옥을 불어 날리니 天風吹玉佩

흰 구름이 무슨 일로 흩어지는고 白雲何雌維

무산 다른 날 밤 비에 巫山他夜雨

양왕의 옷을 적시고자 하노라. 願摒赛王衣


이야기 구성이 탄탄할 뿐 아니라 시와 묘사가 무척 마음을 끈다. 바람둥이 남자가 여덟 여자들과 희롱하고 노니는 꿈을 꾸다 깨어나는 애정 소설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다. 현대 K-드라마와 영화의 밑거름이 될 판타지 소설이나 몽환 소설의 원조나 다름없는 책이라 할 만큼 독보적이다.



또 다른 읽을거리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정소저와 가춘운, 태후가 양녀와 공주를 대하는 태도, 정소저와 난양공주의 관계는 특히 눈여겨 볼만하다.

양소유가 정소저를 보기 위해 여장을 하고 속이려 하니 가춘운의 몸을 빌려 분풀이를 한다. 정소저의 몸종인 가춘운은 양소유와 사랑을 나누지만 정소저와의 우정을 소중히 여긴다. 가춘운이 정소저를 떠날 수 없음을 알고 가춘운이 양소유의 첩이 되어 남도록 한다.


태후는 공주인 난양공주를 양소유와 혼인시키려 하지만, 이미 언약을 맺은 여인 정소저가 있다는 것을 안다. 태후는 양소유와 정소저의 입장을 생각하여 정소저를 양녀로 삼으며 영양공주로 칭한다. 정소저가 양녀라고 홀대하거나 차별함이 없다. 태후는 양소유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난양공주와 영양공주를 부인으로 삼도록 한다.

영양공주와 난양공주는 서로 시기하고 질투함이 없다. 난양공주는 첫째 부인자리를 영양공주에게 양보하며 영양공주는 난양공주를 예를 다하여 섬기며, 문방사우와 같이 자매요 벗으로 어긋남이 없다.


양소유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 얼굴을 자랑하며 다른 여인에게 말로 수작을 벌일 때는 여덟 명의 여인들이 합심하여 양소유를 골려주기도 한다. 두 명의 처와 여섯 명의 첩 모두 서로 간의 우애와 믿음이 깊다.


난양공주는 정소저를 천거하고, 정소저는 가춘운을, 계삼월은 적경홍을 천거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마음에 거짓이 없다.

여성들은 특별히 빼어난 재능이 있는데 가춘원은 귀신도 되고 신선도 되며, 적경홍은 잠시 여자도 되고 남자도 된다. 용녀인 백능파는 몸에 물고기의 비닐을 달고 있으며 신비감을 더해준다.




당시의 시대상과 여성의 모습은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작가 김만중은 현실과는 거리가 꽤 있는 여성 상을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 궁금해진다. 여성에 대한 작가의 단순한 소망이었는지, 궁내의 여성을 제외한 조선 중기의 여성은 일부다처제의 사회제도 속에서도 꽤 당돌하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한 것은 아닐는지...


단지 한 남자의 한낱 꿈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구운몽을 쉽게 접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이자, 우리 문학작품의 진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책을 읽기 전에는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전 소설이 갖는 시대성과 역사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김만중은 현종(6년)때 장원 급제하여 암행어사를 했으며 인선왕후가 작고하여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서인이 패하자 관직을 박탈당한다. 『구운몽』은 좋은 집안에 태어나 한때 잘 나가던 김만중이 유배되었을 때, 홀로 계신 부모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썼다고 한다. 소설 속에는 자신의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표현했단다.


소설이 갖는 역사적 의의 못지않게 읽는 재미가 있다. 유배되어 소설을 쓰고 있는 1687년(숙종 13) 김만중으로 빙의한다면 『구운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당대의 여성 독자라면 어떨까?




#구운몽_김만중

#인문고전독서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하민영

#엄마와딸함께읽기좋은책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