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캐럴 음악이 흐르고 주광색 조명이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게 실내를 비추고 있다. 천장에는 하얀 커튼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공간에 선율을 더한다. 유리창벽으로 분리된 공간이 하나 더 있다. 몇몇 동그란 의자에는 간식들이 있으며, 안쪽 벽 쪽으로는 뷔페식 음식이 전시되어 있다. 조용한 가운데 십여 명이 탁자에 빙 둘러앉아서 접시에 올려진 음식을 먹고 있다. 20여분 늦었는데 사람들이 벌써 와서 식사를 하고 있다(한국사람 코리안타임 없어졌나 보네). 손에 들고 온 귤 한 박스, 만두와 김밥을 내어주고 문가 자리에 앉는다.
라라크루 송년회는 열여섯 명이 참석하였다.
포틀럭(Portluk) 파티로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는 방식의 파티였다. 이런 파티는 처음인데 꽤 괜찮았다. 운영진의 부담은 줄이고 참석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가져오니 자신이 먹고 싶은 대로 자기 주머니 사정에 맞게 준비하니 좋다. 음식도 가지가지다. 탕수육, 치킨, 피자, 김밥, 떡볶이, 순대 등등 골고루다. 회원 중 한 분(늘봄유정)은 손으로 직접 만든 육포를 가져왔다. 와! 이런 맛있는 육포를 어찌 만드나 궁금했는데 어렵지 않단다.
식순에 따라 호스트인 수호대장님이 인사를 하고 한 사람씩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책을 출간한 작가도 있고 브런치 작가도 있으며, 출간작가도 브런치 작가도 아닌 작가도 있다. 모두의 공통점은 작가라는 꿈을 키우고 있으며, 직장을 다니며 글쓰기가 취미인 작가이다. 글을 열심히 쓰고 있는 작가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작가도 있다.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가까워진다. 나는 라라크루 5.6기로서 글을 많이 못썼는데 작가님 한분은 두 편 썼다고 하니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ㅎㅎㅎ.
기수별 MVP 수상식과 백일장 시상식이 이어졌다. 송년회에 참석한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었다. 한 해 동안 혹은 기수별로 열심히 글쓰기 해 오신 분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학교 다닐 때 백일장 한번 못 탔는데 라라크루에서 처음 상을 받았다며 소감을 밝힌 회원님들의 감격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운영진은 수상자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준비했다고 한다. 일력, 윤동주 콜드컵과 드립백 세트, 만년필 닮은? 펜 등등
시상식과 기념촬영이 끝나고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처음의 낯섦이 누그러지니 실내환경과 운영진의 섬세한 손길이 눈에 들어온다. <라라크루 시월애> 송년회라는 작은 플래카드, 머리에 꽂는 크리스마스 핀(늘봄유정님 찬조), 손수 제작한 꽃과 나뭇잎 책갈피, 라라크루 직인, 어느 작가(권세연)님이 전해줬다는 핫팩, 수호님과 희정 님 책 표지를 붙여 만든 와인병 등. 따뜻한 공간 분위기에 더해진 작은 선물들이 라라크루의 분위기인 것 같아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이미 여러 번 만나는 사람들인 것만 같다. 쑥스럽고 소심하여 처음 만남에서는 낯가림이 심하다는 자신이 무색할 정도도 마음이 무장해제 되었다. 술까지 몇 잔 들어가니 배슬거리고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말이 자꾸 많아진다.
식사를 하며 에너지를 채우고, 맥주를 마시며 점차 얼굴도 불그스레 달아오른다. 식사와 술이 들어가니 신체에너지가 첫 만남의 열기를 더한다. 낯설고 조용하던 처음과 다르게 말을 주고받으며 점차 느슨해지더니 파티룸의 분위기까지 부드럽게 되었다. 낯 섬은 어느새 설렘이 된다. 오늘은 글이 아니라 술이 오고 간다. 오고 가는 술잔 속에 쌓여가는 우정이라.
닉네임 소개 시간에는 실명파와 닉네임파로 나뉘었다.
쓱쓱 쓰고 싶다는 '쓱쓱', 모리의 화요일에서 모리처럼 살고 싶다는 '화요일', 실베스타스탤론을 닮았다는 '실배'님은 정말 닮았다. 그리스로마신화 '페르세우스', 아버지가 한글이름으로 지으려 했다는 '늘봄'님은 늘봄처럼 살고 늘 보려고 한다고 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바스락', 생각의 순우리말 '혜윰', 호수의 거꾸로 '수호', 이전에 자신이 썼던 소설에서 따온 '흑고양이', 이름에서 '주'를 등등.(빠지신 분 손들어요~~)
닉네임에 얽힌 사연 아닌 사연을 들으니 와 ~ 탄성이 절로 난다.
그에 반해 실명파도 있었다. 막강한 라이벌을 뛰어넘어 나중에 실명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안희정, 배지연, 전세연(북극성이라는 닉네임도 있다고) 작가님 모두 꼭 성공 거두시기 응원한다.
몇몇 작가님 글은 읽었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저분이 어떤 글을 썼더라 곰곰이 생각한다. 몇몇 분은 닉네임도 글도 처음인 작가님도 있다. 송년회 이후에 찾아서 읽게 되었다. 송년회를 끝나고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니 그분의 모습, 몸짓,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희정작가님, 실배작가님, 흑고양이작가님, 수호작가님과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다른 분들과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이번 송년회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첫 만남이었지만 마음이 무척 편했던 자리였다. 살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고 편안하기는 처음이라 생소한 경험이었다. 게으르고 느른한 내 일상에 소소하고 작은 설렘 한소끔 더한 시간이어라.
*참! 수호대장님께 세 번째 책 출간 제안을 받았다는 것 아닙니까... 감사하게도.
*'민영'은 아이들의 이름자를 넣어 아이들을 품고, 한자로는 온화함이 빛나는, 영어로는 청춘의 의미를 알고 살라는닉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