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에서 춘당지를 지나면 지붕이 투명하고 하얀 아크릴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다. 대온실(식물원)인데 궁궐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이다. 서양식 건물로 일제가 순종황제를 유폐시킨 후 위로한답시고 동물원과 함께 식물원을 세웠다. 건축양식은 19세기말 세계 박람회 전시 건물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2월 말, 날씨가 추워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온실 앞에는 화단과 분수가 있는데 추위에 얼어붙었다. 대온실에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과 자생 희귀 식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지만, 예전에 와 봤던 곳이라 별 감흥 없이 무심하게 대온실로 들어섰다.
그런데갑자기 탄성이 쏟아진다. 예전에 왔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식물이 눈에 보인다. 꽃에 관심이 없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던 것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환호성이 저절로 터진다. 마음이 달라지니 모든 꽃과 식물이 아름답다.
몇 평 되지 않은 온실에는 봄꽃과 분재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밖은 아직도 춥기만 한데 온실 속은 봄이 한창이다. 추위에게 여봐란듯이 피어 있는 모습이 고고하다. 온실에 있는 나무와 식물마다 어디서 왔는지 원산지가 적혀 있다. 흔치 않은 천연기념물이라는 푯말도 있다. 저마다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모습이 초대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랑스러움이 배어난다.
맨 처음 관람객을 맞이한 것은 극락조를 닮은 꽃이다. 벼슬을 활짝 피고 있는 모습이 우아한 새 한 마리 자태다. 온실 가운데는 여러 열대식물이 있고 작은 연못에는 금붕어가 노닐고 있다. 관람객의 관심을 한껏 받은 빨간 금붕어는 유유자적이다.
큰 나무로는 동백이 빨간 꽃을 달고 있다. 고창 선운사와 여수 오동도, 부산 동백섬을 떠올린다.
초록잎에 노란 감귤도 탐스럽다. 스페인 여행에서 만난 오렌지를 떠오르게 한다.
귤나무 아래로는 노란 수선화가 부끄러운 듯 화려한 처녀의 고운 얼굴을 자랑한다. 이름을 모르는 서양 나무도 여러 종류가 있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한 바퀴 돌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분재를 만난다. 분재는 조선의 사군자 그림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자연석과 어울림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분재를 어쩜 이리도 작고 아담하고 우아하게 만들었는지 감탄이 절로 난다.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닿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린 듯이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너무나 빼어나게 아름다워 탐이 난다. 분재의 돌과 나무, 꽃, 화분 등 어느 것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먼지하나 나뭇잎 한조각조차 작품으로 여겨진다. 나무에 피어 있는 영산홍, 해당화, 모과나무, 진달래, 개나리 등등 봄꽃은 작지만 수려하다.
우리 집에도 화분 아니, 분재 하나 들여놓고 싶다. 꽃을 보고 있으니 어서 봄이 와서 꽃여행을 떠나고 싶다. 마음은 벌써 봄처녀가 된다.
창경궁 이야기 더하기
지난 2월 말에 지인들이 서울에 나들이를 왔다. 서울 구경 중에 창경궁을 갔다.
창경궁은 일제의 탄압이 가장 심했던 궁궐이다. 일제는 조선의 역사와 권위를 훼손하기 위해서 창경궁을 해체하고 창경원이라 부르며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다. 창경궁에는 일제 침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조금은 쓸쓸하고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비교하여 어쩐지 휑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창경궁의 의미와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 전해지는 이야기를 알고 나면 궁궐이 전하는 아픔과 애잔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창경궁은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 후 별궁으로 지었으며, 성종이 할머니와 어머니, 숙모를 위해 확장하였다. 임지왜란과 인조. 순조 때 큰 화재로 불탔으며, 일제 침탈로 많이 훼손되었다. 남아 있는 전각은 대부분 순조 때 재건하였다.
정조와 헌종이 탄생했고 중종과 소현세자가 승하한 경춘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정조의 서재였으며 정조가 승하한 영춘헌이 있다. 효명세자가 승하했을 때 관을 모시던 빈궁으로 사용했던 환경전, 순조의 어필 현판이 있는 양화당이 있다. 통명전은 장희빈 때문에 유명한 전각이다. 통명전은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다 사약을 받은 곳이다. 창경궁에서 가장 큰 아픔을 가진 곳은 문정전이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지에 갇혀 흥하한 곳이다.
문정전은 방화로 소실될뻔했으나거제의 소방관이 기지를 발휘해서 소실을 막았기도 했다고 한다. 문정전 방화범은 나중에 숭례문을 방화해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제를 잃게 한 범인이라고 한다. 문정전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창경궁이다.
창경궁을 휘 둘러보고 후원으로 나가는 후문 쪽으로 올라가면 산책길이 있다. 통명전 뒷길을 따라 걸어가면 창경궁 전각 전체를 볼 수 있다. 멀리 서울의 빌딩들과 조화를 이룬 창경궁의 모습이 아름답다. 가을에 가면 아름다운 단풍이 멋들어지게 내려앉아 운치 있다. 여름에는 후원의 신록이 시원함으로 푸르르다. 아직 봄을 말하기에는 꽃샘추위가 한창이지만 곧 봄이 찾아오면 봄꽃을 보며 궁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통명전 뒷길에는 해시계와 풍향계가 있고, 산책길을 따라가다 보면 성종의 태실을 볼 수 있다. 후원아래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가면 작은 연못을 만난다. 이곳은 춘당지다. 우리 나이대 서울 사람들은 어릴 때 소풍 와서 춘당지에서 관람차를 탔던 것을 기억한다. 필자는 와보지 않았지만 언니오빠들이 친척집에 왔다가 춘당지 관람차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있다. 춘당지는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농사를 지었던 곳이다. 임금이 농사를 지으면서 한해의 풍작을 점치던 곳을 일제는 연못을 만들어 오리배와 관람차를 띄우고 놀이동산으로 만들었다. 폐위시킨 순조를 위로하며 백성들에게 궁궐을 돌려준다고 했는데 조선의 정기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정책이었다. 1986년 창경궁 복원사업으로 동물원이 서울대공원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창경궁은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뛰어노는 유원지였다. 왕이 살던 곳을 동물로 가득 채우고 사람들로 소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새삼 마음이 아프게 다가온다.
창경궁에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은 몇몇의 탑과 소나무(백송)등도 있다. 예전에는 석탑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창경궁은 여러모로 일제침탈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마음 아프지만 역사를 새기며 꼭 가봐야 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