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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영 Mar 15. 2024

봄의 창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요


도서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바람은 차지만 햇살은 제법 따뜻해졌다.


"안녕. 안녕!"

아파트 담장 앞에서 자꾸 말을 거는 이가 있다.

"어디 어디? 누구누구니?"

"나야 나."

푸른 사철나무 사이로 메마른 가지가 삐죽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한다.

"아하. 그래. 너 거기 있었구나."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으련?"


바싹 말랐던 가지는 조금 생기가 돌고 가지 끝에는 연둣빛 꽃눈이 살짝이 고개를 내민다. 얼어붙은 도시의 담장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꽃눈이다. 메마른 가지에도 부지런히 물을 길어 올린다. 깊은 땅속에서도 기지개를 켜며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기만을 기다렸다가 세상을 향해 살짝 고갯짓을 한다. 봄 전령의 나팔수가 되어 봄의 소리를 들려준다.  남쪽나라에서 시작된 봄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음을 알린다. 머지않아 노란빛으로 물들이며 불을 밝힐 개나리 꽃눈이 살짝이 말을 건넨 것이다.


2월 말부터  어김없이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겨우내 내렸던 눈이 녹고 비라도 한번 내리면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커진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산과 들판을 굽이돌아 흐르며 세상에 봄이 왔음을 알린다.


2월과 3월 숲은 11월이나 12월과는 사뭇 다르다. 어쩐지 생기가 돌고, 어딘지 모르게 나무 안에서 흐르는 속삭임이 들린다. 여기저기 나무들끼리 소곤대는 소리가 흐른다. 마른 가지 같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연한 연둣빛 여린 눈이 서로를 보며 반갑게 인사한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가까이 보면 봄의 창 '눈'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연푸른 빛이 언뜻언뜻 보인다. 나무들끼리 조잘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긴 잠에서 깨어난 나무들이 반가운 인사를 한다. 아직 잠을 자는 나무를 깨우는 소리도 들린다. 따사로운 햇살이 숲에 들면 대지는 긴 잠에서 깨어나며 아지랑이를 피운다.  

 

박새가 따라와서 "찌찌쯔, 째째쯔" 재잘대며 경쾌함을 더한다.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냈느냐고 오랜만에 산에 찾아와서 반갑다고 한다. 박새는 애교를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재잘댄다. 비발디의 사계 '봄'의 경쾌한 음악이 들린다. "딴딴따라라라 딴딴따라라라 따라라 따라라~~~"  


산수유 꽃이라도 터지면 이미 봄인 것이다.

산아래 조용히 속삭이며 피어나는 연한 노란 산수유는 있는 듯 없는 듯 피어난다. 작은 연노란 꽃이 앙상한 가지에 조잘거리며 수천 개가 넘게 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나는 꽃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보면 어느새 앙상한 나뭇가지를 연노랑으로 물들였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있는 꽃이다. 아직 피지 않은 산수유꽃은 노란 쌀알 십여 개를 뭉쳐놓은 것 같다. 갈색 가피안에는 노란 꽃눈을 가득 담고 있을 터. 머지않아 산수유꽃 터지는 소리가 지천에서 들릴 것이다. 이제는 봄이다.


봄이 오는 소리가 온세상에 울려퍼진다. 매화에서 산수유와 개나리가 피어나고, 따뜻한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목련꽃봉오리가 올라왔다. 봄은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곁에 와있다.




#라라크루 #하나만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엄마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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