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민영 Mar 30. 2024

홍매화의 유혹

봉은사 붉은 홍매화를 따라

*연재 요일을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변경합니다~~
금요일에는 나태함과 한 주간 피로로 불가피하게 요일을 변경하오니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봉은사에 홍매화가 피었더라”   

  

가까이 사는 언니가 봉은사 홍매화가 예쁘다며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지난 주말 느지막이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걷는 중에 더워서 카디건은 벗어서 손에 들었다. 목 폴라티셔츠는 답답했고 등에는 땀도 났다. 지나가는 사람 중에는 반팔 셔츠를 입은 사람도 보였다. 내내 추웠던 주중 날씨에 비해서 주말엔 봄은 없이 겨울에서 여름으로 훌쩍 뛰어넘은 것 같았다.     

 

봉은사는 서울 도심 속에 위치한 신라시대에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조선시대 명종 때는 섭정을 했던 문정황후는 봉은사를 본산으로 선교 양종을 부활하였다. 당시 보은사 주지인 보우스님이 주관하는 선종 승과 시험이 봉은사 앞 들판에서 치러졌다.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가 봉은사에서 수행하였는데 지금도 ‘판전(板殿)’에는 추사의 현판이 걸려 있다.  현재 봉은사는 코엑스 옆에 자리하며 많은 관광객이 찾는 주요 관광지다.


봉은사는 불공을 드리기도 좋지만 명상길이 있어서 산책하기 좋다. 봉은사 초입에 시작하여 전각 뒤로 명상길이 있는데 봉은사 전경과 서울의 높은 빌딩이 어우러진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다. 요즘은 봄꽃이 활짝 피어 산책하기 더없이 좋다.
봉은사를 바라보고 좌측 명상길 초입에는 노란 산수유가 반긴다. 검은 기와 전각을 배경으로 산수유가 가득하여 사진을 찍어보니 개나리처럼 보인다. 가을에는 빨간 산수유 열매를 선보일 거다.


명상길을 따라가면 산죽길과 봄식물들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고, 봉은사 뒷모습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커다란 목련 나무에는 하얀 목련이 활짝 피었다.

미륵대불이 바라보이는 사잇길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대부분은 2~3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뭐 하는 사람들인가 보니 ‘영각’이라는 전각 옆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 줄을 서있다. 붉은 단풍이 벌써 피었나 했다. 멀리서 보면 꼭 단풍나무 같다.


붉은 단풍인가 했더니 커다란 홍매화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홍매화를 본 적이 없던 필자는 붉은 단풍나무인가 했던 거다. 비슷한 색깔로 피어 있는 키 작은 나무가 있어서 자세히 본 후에야 단풍잎이 아니라 붉은 꽃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각 주변으로 크고 작은 홍매화 나무에 꽃이 많이 피었다. 꽃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신기하다. 향도 은은하니 그윽하다. 흰매화나 분홍빛이 있는 매화는 많이 보았으나 홍매화는 처음 본다. 봉은사에 자주 가 보았지만 홍매화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홍매화 꽃말은 깨끗한 마음, 충실, 인내, 결백을 의미한다.  추운 겨울이 가기 전에 피는 흰 매화가 선비를 상징한 줄 알았는데 홍매화도 비슷한 꽃말을 갖고 있다. 양재시민의 숲 근처에 있는 윤봉길의사 기념관 앞마당에는 흰 매화가 가득 피어있다. 윤봉길의사 호는 매화 봉우리를 의미하는 매봉이다. 그만큼 매화는 선비의 결기, 결백을 의미한다.


매화는 벚꽃과도 비슷하다. 차이점은  매화는 벚꽃보다 일찍 핀다. 매화는 일찍 2~3월에 피고 나뭇가지에 바짝 붙어서 꽃이 핀다. 벚꽃은 흰색보다는 분홍빛을 띠고 달랑거리는 귀걸이처럼 꽃대가 4~5cm 정도 끝에 매달린다. 벚꽃은 4월 말이나 5월이 되어서야 피는 꽃이다.  2월부터 3월까지 피는 꽃을 보면 매화라고 여기면 된다.  


매화는 매실나무에서 피는 꽃이다. 매실나무와 매화나무는 같은 말이다. 매실나무의 꽃을 매화라고 하며 열매를 매실이라고 한다. 꽃은 노란빛을 띤 흰색, 초록빛을 띤 흰색, 붉은색 꽃이 있다. 보통 꽃잎이 5장이며 긴 수술이 많다. 꽃잎이 여러 장 겹꽃으로 피는 종도 있는데 흰색 겹꽃은 만첩흰매화, 붉은색 겹꽃은 만첩홍매화라고 한다. 꽃송이가 어찌나 탐스러운지 겹꽃인 줄 알았는데 홍매화도 홑꽃이었다. 작은 홍매화 나무는 느티나무처럼 아래로 쳐지고 가지에 꽃이 하나씩 달려 있는데 이 나무의 꽃만 겹꽃이다.


6~7월에 매실이 열리는데 열매를 따서 매실청, 매실주, 매실장아찌를 담그면 한해 내내 소화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매화와 매실을 연관 지어서 생각이 잘 안 된다. 피우는 꽃 매화 따로 열매를 맺는 매실이 따로따로 인 것만 같다.


홍매화를 보니 장원급제한 선비의 어사화에 핀 꽃이 생각난다. 사모관대를 입은 어사의 머리에 화려하게 만든 붉은 꽃이 홍매화가 아닐는지. 어사화를 찾아보니 임금이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내리는 종이로 만든 꽃이라고 하는데 홍매화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흰매화에 비해 홍매화는 꽃송이가 여러 개 함께 피어서 풍성하고 가지에 그득하게 피었다. 이른 봄에 핀 흰매화는 나라를 지키던 독립군이나 결기를 지키던 선비를 보는 듯 약간 처연한 느낌이다. 그에 비해 홍매화는 좋은 날을 맞은 어사나 신랑의 혼례복과 시집가는 처녀의 묽은 치마처럼 화사하다. 또 어찌 보면 선비의 기품이나 결기가 있는 핏빛 같기도 하고 열녀로 살다 간 청상과부의 넋인 것 같다.


한껏 멋을 부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진 찍는 아빠와 그 주변을 맴도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기도 한다. 꽤 많은 외국인들도 홍매화 앞에서 사진 찍기 바쁘다. 그들의 시선과 발길을 쫒는다. 예전엔 미처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홍매화를 따라가는 필자도 사진 찍기에 바쁘다.


법왕루 옆에는 매화당이라는 전각이 있는데 마당에 작은 홍매화가 있다. 저녁햇살이 매화당 붉은 벽에 반사되고 붉은 홍매화를 물들일 때 찍은 홍매화는 더 화려하다. 곁에 핀 작은 흰매화는 애교다.




나중에 홍매화를 검색해 보니 봉은사 홍매화가 검색어 상단에 올라와 있고, 블로거들이 여러 산사의 홍매화를 포스팅한 글이 많다. 화엄사 홍매화, 창덕궁 홍매화도 눈에 띄게 아름답다.


명상길을 산책하면 분홍 진달래도 만나고, 홍매화와 어우러진 노란 산수유도 많이 볼 수 있다. 명상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오면서 봉은사 전경을 바라보며 서울 시내의 빌딩숲도 함께 감상한다.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의자가 몇몇 놓여 있다. 자리는 많지 않아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


명상길을 돌아 끝나는 지점에 오면 테크와 돌의자가 여럿 있으니 이곳에서 쉬어가면 좋다. 봉은사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코엑스와 빌딩들도 만날 수 있다.  봉은사 뒤편으로는 경기고등학교 건물도 보인다. 미륵불 옆에는 명상길에서 보았던 홍매화도 보이고 전각 사이에 핀 목련도 보인다. 쉼터 근처에는 산수유가 가득 피어 있고 산죽 오솔길이 나 있으며 커다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다. 봄꽃을 준비하는 등나무에는 새들이 바쁘게 지저귄다.


쉼터 아래 법왕루 옆 찻집이나 봉은사 입구 찻집에서 차 한잔 들고 오면 그 맛이 꿀맛이다. 값도 착해서 부담이 없다. 운이 좋으면 목탁소리나 타종소리도 들을 수 있다.  봉은사 전경을 바라보면서 담소를 나누고 책한 장 넘기며 읽어도 운치가 있다.  산사의 여유를 맘껏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휴식이 없다.        

   


#라라크루 #하나만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엄마에세이

#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

이전 03화 너의 시작을 응원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