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벚꽃과 목련은 4월의 흐린 하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려하기만 하다. 벚꽃은 작지만 커다란 나무가 여럿이 군락을 이루어 아파트 담장과 거리 가로수에 피어 연분홍으로 화려하게 물들였다. 목련은 커다란 하얀 꽃잎이 소담스러워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올해는 적당한 온도 덕분인지 꽃잎이 유난히 밝고 화사하여 백색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낸다. 개나리는 벌써 피었다가 지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창밖으로 바라보는 한강 주변에도 추운 겨울에 얼어붙었던 세상이 깨어났다.
분홍 벚꽃과 노란 개나리가 만발하다. 나뭇가지에 돋기 시작한 연둣빛 나뭇잎이 가로수를 수놓았다. 강줄기를 따라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모습은 바쁜 출근길에도 잠시나마 여유를 갖게 한다. 강에 비친 아침햇살은 윤슬로 반짝인다. 흐린 하늘에도 강물은 얼었던 마음을 풀어내고 있다.
가끔은 한강에서 보트를 타거나 낚시를 하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한강변을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강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른 아침 풍경이 새삼 활기차 보인다. 봄으로 한창 물이 오른 한강은 고요하지만 포근하다.
지하철에서 내려 걷다 보면 학교 담장에는 지난해 보았던 황매화가 노랗게 피어서 반긴다. 반대편 학교 담장에는 붉은 명자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꽃들은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유혹하는데 아이들은 꽃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요 근래 날씨는 포근한데 흐린 날이 많았다. 맑고 파란 하늘이라면 더 예쁜 꽃사진이 나왔겠지만, 하늘에 아랑곳하지 않고 땅 위를 온통 화려하게 물들였다.
점심시간, 시간을 내어 눈으로 다 담지 못한 꽃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겨울에는 꽁꽁 얼어서 언제 봄이 올까 싶었는데 어느새 화사한 꽃을 피워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백매화, 목련꽃, 홍매화, 복사꽃, 앵두꽃 등등 나무에 피는 꽃들이 무리 지어 피었다. 진달래는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피었다가 벌써 지고 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앞다투어 뽐내는 모습이 어느 꽃이 더 예쁘다고 말할 수 없다. 큰 그림으로 멀리서 보아도 예쁘고 가까이에서 한송이 혹은 몇 송이를 모아서 찍어도 어여쁘다.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리면 노랗고 하얀 수선화가 화려한 모습으로 손짓한다. 거친 땅 위에는 노란 민들레도 우수수 피었다. 바위틈과 돌틈 사이에 자란 민들레는 어느새 하얀 솜털 홀씨를 만들었다. 바람이 불면 곧 유영할 홀씨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하얀 냉이꽃도 피었다. 너무나 작아서 꽃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가까이 보고 모아서 찍어보면 분명 예쁜 꽃이다. 보라 제비꽃은 노래를 한다. 10대 제비꽃을 좋아하던 소녀의 마음으로 잠시 돌아간다. 조동진의 '제비꽃' 노래를 흥얼거린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함께 걷던 동료가 묻는다.
"선생님은 옛날부터 꽃을 좋아했어요?"
언제부터 꽃을 좋아했을까?
"어릴 때 집 앞에 꽃을 많이 심었어요."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최근 꽃과 관련한 글을 쓰면서 관심이 많아졌고, 관심을 가지니 더 좋아졌다. 목적이 관심과 사랑을 더 깊게 한 것이다. 꽃을 좋아하니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다. 멀리서도 찍고 가까이서도 찍으니 그 모습이 모두 달랐다. 가깝게 피사체에 담아서 보면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한다. 꽃송이의 예쁜 모습을 더 깊게 보게 된다.
작은 꽃 하나를 보고 새로운 발견을 한 것처럼 놀랍고 큰 기쁨을 갖게 된다.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마주하고 인사를 건네는 작은 꽃은 그저 그러한 일상에 새로운 아름다움과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했다. 꽃잎 하나뿐 아니라 작은 이슬이라도 맺히거나 나비나 벌이 날아와 인사라도 건네주면 더 반갑고 좋은 순간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 아름다운 꽃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꽃에 대한 관심 덕분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큰 기쁨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에서 유홍준 작가는 문화제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비결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조선 정조시대 문인인 유한준의 말을 인용했다고 하는데 한자로 풀면 이렇다.
지즉위진애 知則爲眞愛
애즉위진간 愛則爲眞看
간즉축지이비도축야看則畜之而非徒畜也
즉,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낱 모으는 것이 아니다.
꽃을 알려고 하니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니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니 또 모으게 되었다. 사랑한다는 것이 꼭 사진을 찍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글을 써야만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닐 지니.
봄봄.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봄. 아름다운 우리나라 금수강산을 많이 보고 즐기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