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에는 ‘자(子)’가 들어간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심하던 때에 태어난 우리 시절에는 아들을 보고자 했던 부모님의 소망을 이름에 담았다. 미자, 순자, 춘자, 선자, 영자 등등
산당화를 언제 처음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이름을 알게 되었다. 사진 검색기를 돌려보면 ‘명자나무’라고 명명한다.
‘명자’ 어여쁜 꽃을 왜 명자라고 지었을까? 조금은 촌스럽기도 하고 꽃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친구 명자를 떠올렸다. 친구도 예쁜데 이름은 촌스럽다. 명자.
소꿉친구 명자를 마흔이 넘어서 다시 만났는데 이름을 개명했다. 이름을 개명한 것이 어찌나 섭섭하던지. 촌스러울 것 같은 이름이 그 친구를 떠올리면 이름과 잘 어울린다 생각한다. 개명한 이름은 입에 붙지 않고 명자라는 이름만 맴돌았다. 명자라는 이름은 그 친구를 떠올리면 금방 얼굴이 떠올라서 정감 있다. 작은 키에 까만 눈동자와 사슴처럼 큰 눈이 어여쁜 친구다. 명자꽃만큼이나 야무진 친구다.
명자나무꽃을 보는 순간 친구 명자의 꽃인 것만 같아 반가웠다.
명자나무꽃은 다른 이름으로 산당화(山棠花)라고도 한다. 산당화를 만나려면 지금 정원이나 울타리를 기웃거려 보면 된다. 산당화가 한창이다.
산당화는 가지가 퍼지면서 자라서 자유로워 보인다. 잎은 엄지손가락 크기이며 약간 반들거린다. 어린 가지가 가시로 변해 잎과 턱잎 아래에 나기도 한다.
꽃은 붉은 다홍이 대부분이다. 품종개량으로 분홍색과 흰색도 있다고 하는데 보지는 못했다. 카메라에 꽃이 담기기 시작한 것은 4월 초부터다. 화단과 울타리에 가득 피었다. 울타리에는 꽃이 가득하고 화단에는 무성한 잎사귀 사이를 비집고 피어있다. 붉은 다홍색 꽃잎 다섯 장에 노란 수술이 이십여 개는 달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며 다홍과 노랑이 마술을 건다.
벌과 나비가 언제 날아드는지 어쩌는지 모르겠는데 울타리 가득 어느새 피어있다. 누구의 주홍글씨인지 어느 아가씨의 다홍치마인지 어느 소녀의 붉은 입술인지가 떠오른다. 향은 잘나지 않는다. 초록 잎 사이에 핀 노란 수술과 다홍색 꽃잎이 우리를 부를 뿐이다.
산당화의 꽃말은 겸손, 수줍음, 신뢰라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잎들이 사이에 아름다운 붉은 다홍색을 감추고 피어서 꽃말이 겸손, 수줍음인가 보다.
다홍색이 여성들을 설레게 하고, 속 깊은 아낙의 마음을 닮은 꽃이라 아가씨나무라고도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의붓 누이를 사랑했던 슬픈 전설이 있으며, 꽃을 보면 여성들이 바람이 난다고 집에 심지 말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꽃은 죄가 없으며 꽃을 보며 마음이 설레는 여인들 역시 잘못이 아니다. 누구를 주홍글씨로 만들어?
가지는 옆으로 퍼지면서 넓게 자라는데 화단에는 제멋대로 뻗어있다. 크기는 2m를 넘지 않는다. 울타리에는 명자나무를 빼곡하게 심어놓고 사람의 손길로 곱게 다듬어 놓아서 고르게 자라고 있다. 울타리에서 제멋대로 자라게 한다면 울타리로써 기능을 못할 것 같다.
명자나무는 3월 봄에 파종하면 발아가 잘된다. 번식이 쉽고 대기오염에 저항성과 추위를 잘 견디는 맹아력이 좋아서 울타리나 분재로도 많이 사용한다.
열매는 8월에 열리기 시작하는데 달걀 정도에서 어른 주먹만큼 자라며 노랗게 익는다고 한다. 지난해 오고 가며 산당화를 보았는데 열매는 눈여겨보지 않아서 전혀 기억에 없다. 명자나무 열매는 모과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큰 것은 모과 정도 크기라고 하니 눈에 띌법도 한데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 이상하다. 검색해서 열매 모양을 보니 영락없이 모과처럼 생겼다.
열매는 과실주를 담근다고 하니 올해는 눈여겨보아야겠다. 그동안 있어도 보지 못하고 보아도 본 것이 아닌 열매를 만나보아야겠다. 열매는 사과산(malic acid) 성분이 있어 거담제로 사용하며, 근육통이나 복통 위염 치료제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모과 대신 명자나무 열매로 과실주를 담아서 먹어야 할까 보다.
모과닮은 산자나무열매(네이버캡처)
산당화는 몇몇 꽃이 올라오면 순식간에 꽃들이 활짝 핀다.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져서인지 4월 중순이 지난 지금 산당화가 일부 지고 있다. 지금 산당화를 보려면 서울 위쪽으로 올라가거나 비 온 뒤에 울타리나 화단을 눈여겨보면 된다. 시들해지는 꽃을 보다가 비가 온 후 다시 살아나는 산당화를 보면서 붉은 꽃잎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꽃은 피어날 때는 청초하고 신비롭다. 활짝 피었을 때는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감탄스럽다. 꽃이 질 때는 그 초라함에 가끔 고개 돌린다.
꽃이 피고 지는 시기는 하루인 것도 있고 길게는 백일이 넘는 꽃도 있다. 한꺼번에 우수수 피었다가 우수수 지는 꽃도 있고 여러 날을 수없이 피고 지는 것을 반복해서 피는 꽃도 있다. 눈에 보이게 꽃이 피었다 지는 꽃도 있지만 언제 피었다가 언제 지는지 모를 꽃도 있다.
산당화는 며칠 사이에 일제히 피었다가 기온이 올라가니 벌써 지고 있다. 올해는 산당화 꽃이 진다고 눈을 다른데 돌리지 말고 열매가 올라오는 모습도 눈여겨보면 좋겠다. 유혹하는 꽃이 많은 계절이지만 산당화를 좀 더 오래 지켜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