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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영 Apr 27. 2024

소나무가 노란 불을 밝힌다  

송홧가루 날리면

"그거 아세요?

동료 중 한 분이 다른 동료 두 명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소나무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세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 귀를 기울였다.

"이게 이걸로 변하고, 이것이 이렇게 변해서 솔방울이 되는 거예요."

송화가 꽃이고 붉은 꽃이 되고 녹색 솔방울이 되고 녹색이 갈색 솔방울이 된다는 것이다.

"어? 그건 몰랐어요."


사무실 앞 소나무에 꽃이 노랗게 피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밝혀 놓은 것 같다. 새순이 쑥쑥 자라고 있다. 새로 돋은 꽃대의 끝에는 꼬마전구 마냥 붉은 꽃이 피어 있다. 붉은 꽃은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아주 작아서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 붉은색 송화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붉은 송화가 있었구나. 나는 왜 아직까지 이걸 보지 못했을까?'


소나무 꽃을 다시 관찰하고 인터넷 검색도 한다.

소나무 꽃은 하나의 수술대에 암꽃과 수꽃이 다르게 핀다. 모양도 확연히 다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란 송화는 소나무의 수꽃이다. 노란 애벌레처럼 생겼는데 3~4cm 크기, 50~100여 개의 수꽃이 수술대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길쭉하게 7~10cm 정도 자란다. 수꽃은 그물을 짜 놓은 것처럼 생겼다. 안은 두 개의 공기주머니로 구성되어 있으며 송홧가루가 들어 있다.  


노란 수술이 궁금하여 하나를 따서 손으로 만져보고 비벼보았다. 시큼한 소나무 향이 콧속을 훅 찌른다. 송홧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진하게 흩어지는 소나무향에 취하듯 하다가 이내 잦아들며 소나무 숲에 와 있는 듯한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수꽃을 떼고 나니 암꽃은 지고 솔방울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작은 방들이 20~30개는 만들어져 있다.


송홧가루가 알레르기의 주범이라고 생각했는데 필자에게는 송홧가루 알레르기는 없나 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송홧가루는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대한 진실과 거짓은 무엇인지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다.


암꽃은 수꽃 끝에 있는데 진분홍으로 4~6mm 정도 크기의 둥근 타원형이다. 마치 새끼손톱 끝에 봉숭아물을 들여놓은 것만 같다. 암꽃은 진분홍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가 개화해서 꽃잎이 한 장 한 장씩 펼쳐진다.


바람은 사랑의 전령사다. 수꽃에 있는 노란 가루가 바람에 날려 빨간 암꽃에 내려앉으면 수분이 된다. 노란 수꽃은 바람에 꽃가루를 모두 떠나보내고 나면 떨어진다. 수꽃이 진 자리에는 바늘처럼 생긴 솔가지가 뾰족하게 올라온다. 수분이 이루어진 빨간 암꽃에는 초록색 솔방울이 자라기 시작한다.


열매는 달걀모양으로 길이가 4~5cm, 지름이 3~5cm 정도 된다. 열매조각은 70~100개 정도이고, 다음 해 9~10월에 노란빛을 띤 갈색으로 익는다. 갈색으로 된 솔방울이 당해에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전해에 맺은 열매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종자는 길이가 5~6mm, 너비 3mm의 타원형 검은 갈색이다. 연한 갈색 바탕에 검은 갈색 줄이 있다.


어릴 때 솔방울 두 개가 달린 가지를 꺾어 전화놀이를 했고, 떨어진 솔방울은 주워 모아 포탄놀이를 하기도 했다. 종자를 위에서 떨어뜨리며 누가 멀리 빨리 내려가는지 내기도 했다. 동네 뒷산에는 소나무가 가득하여 가을이면 솔잎을 모아 군불을 지필 때 사용했다. 솔가지를 그러모아 가마솥에 밥을 짓고, 사랑방 아궁이를 덥히어 소죽을 끓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송편을 찔 때 생솔가지를 넣어서 은은한 솔향을 내고 음식의 변질을 막았다. 막걸리를 담글 때도 생솔가지를 넣어서 맛의 깊이를 더했다.  


소나무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소나무는 궁궐의 기둥이나 집을 지을 때 목재로 많이 사용했다. 소나무에서는 피톤치드가 나와 사람의 심신을 건강하게 한다. 송홧가루는 물에 담가서 송진과 독성을 제거한 후 사용한다. 물이나 꿀에 타먹으면 감기예방에 좋고, 항산화물질이 있어 노화를 예방하고, 다이어트에도 좋다. 다식을 만들거나 면을 만들 때 넣으면 노란빛으로 예쁘게 물들인다. 송화다식은 궁중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송화주로 담가먹기도 한다는데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해서 올봄에는 송화주를 담가볼까 생각한다.


친정어머니는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송진을 긁어서 밥대용으로 먹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송진은 간과 신장, 심폐기능을 강화하고, 부스럼이나 열을 내린다고 한다. 송진은 콜로포니(colophony)라고 하는데 가열하면 휘발성 액체 테르펜을 증발시킨다. 송진은 접착제, 납땜, 실링 왁스 등에 사용한다고 한다. 송진 색깔은  투명하거나 노란색인데 만지면 끈적끈적한 접착제처럼 딱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는 송진이 묻으면 물로 열심히 여러 번 씻어내곤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손소독제나 알코올, 아세톤등으로 여러 번 닦아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소나무를 관찰하다가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소나무 한그루에 수꽃과 암꽃이 있고, 지난해에 만들어진 솔가지와 새로 돋은 솔가지가 있다. 새로 돋은 초록 솔방울이 있고, 지난해에 익는 갈색 솔방울이 함께 달려 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며 새롭게 깨달으니 소나무가 신기하게만 여겨진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소나무 한그루에 다 있다. 상록수라면 다 이런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새삼스러운 발견이다. 어쩌면 우리네 몸도 소나무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인지하지 못하고 지낼 뿐이라는 생각도 한다.


소나무는 앞동산 뒷동산에 흔히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 산의 70% 이상이 소나무일정도로 친숙하다.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산맥마다 소나무가 가득해서 사시사철 푸르르다.


소나무의 종류로는 표면부터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부채모양인 금송과 춘양곡, 가지가 곧게 자라 목재로 많이 사용하는 금강송, 은송과 백송, 반송 등이 있다. 위로 곧게 뻗어가는 소나무도 있고 아래로 처지는 소나무(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도 있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 충북 보은 속리산에 있는 소나무는 임금님으로부터 정이품 벼슬을 받았다. 전국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들이 많다. 소나무는 사군자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굳은 절개로 표현되기도 한다. 창경궁에 가면 백송이 있는데 조선시대 중국에서 사신이 선물로 가지고 왔다고 전해진다. 백송을 보면 나무껍질이 흰 잿빛이라 처음 보면 그 모습이 희귀하다. 적송은 붉기가 이를 데 없이 붉고 처진 소나무는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추사김정희가 그 세한도의 소나무는 유배된 작가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애국가에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가 철갑을 두르고 우뚝 서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 소나무냐 외래종이냐를 가장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솔가지가 두 개인지 세 개인지로 구분한다. 금송은 솔잎이 2개이고 리기다소나무는 3개라고 한다. 6.25 전쟁 이후 빠르게 자라는 외래종(리기다소나무)을 심어서 목재로써 쓸모가 없는 소나무가 우리 산에 많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사무실 근처에도 소나무 종류가 다른 나무가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솔가지가 가늘고 진한 초록색이 있고 두껍고 하얀빛이 도는 것이 있다. 금강송과 은송인가? 솔가지가 5개면 잣나무라고 하는데 잣나무인가? 두 종의 소나무가 다르다는 것만 알뿐 품종까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아름다운 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옛 선비의 시를 읊으며 침잠해 본다.  조선시대 문인 이규보의 <송화>를 읊으며 송홧가루 단장한 소나무를 감상하고, 고려시대 학자 이숭인(1347년) <제승방>을 읊조리면서 얼마 전 비가 온 뒤 송화가 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솔길을 따라 초가집으로 돌아가는 선비의 모습과 푸른 연기 흰구름 물들이는 풍경을 바라보는 고즈넉한 선비의 심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소나무도 봄빛은 저버리지 않으려고 松公猶不負春芳
마지못해 담황색 꽃을 피웠도다 强自敷花色淡黃
우습구나 곧은 마음도 때론 흔들려서 堪笑貞心時或撓
남을 위해 금분으로 단장하누나 却將金粉爲人粧

- 이규보, 〈송화(松花)〉, 《동국이상국전집》


오솔길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山北山南細路分
송홧가루 비 머금어 마구 지누나 松花含雨落紛紛
도인은 물을 길어 띠집(초가집)으로 돌아가고 道人汲水歸茅舍
한줄기 푸른 연기가 흰 구름을 물들이네 一帶靑煙染白雲

- 이숭인(李崇仁), 〈제승방(題僧房)〉, 《도은선생시집(陶隱先生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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