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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영 May 11. 2024

찔레꽃 향기의 기대

찔레꽃 필 무렵 5월의 기대

어디선가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톡 건드리고

전두엽과 두정엽 감아 돌아

측두엽을 두루두 몇 번을 휘돌아

해마에 깊숙이 박히고

후두엽을 살짝 두드린다.


어디에서 나는 향기이지?

두리번두리번 찾기 시작한다.

향에 취해 눈알을 떼구루루 굴리다 보면 망막에 맺히는  노란 꽃술을 단 하얀 꽃을 만난다.  

아하? 너로구나.

취하게 만드는 찔레꽃.


연두색 이파리는 어느새 초록으로 물들고 하얀 꽃송이가 가득히 피어 향기를 피운다. 향기는 바람을 타고 노래로 흐르고 꽃은 추억 속으로 빨려든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오월 햇살 가득한 날, 큰 나무 그늘 아래 낮은 곳에 하얀 꽃이 피었다.

언니에게 물려받은 제 몸보다 큰 옷을 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똥단발을 한 소녀가 초록잎과 하얀 꽃 그리고 가지에 달린 가시 사이를 헤치며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이야 가시에 찔릴라', '아이야 벌에 쏘일라' 소녀는 조심조심한다.

하얀 꽃을 따서 손반지도 만들고 머리에도 꽂아보고 싶지만 가시 때문에 다가갈 수없다. 애꿎은 꽃잎을 한 장 따서 코끝에 대어 본다. 흐으음~~~ 달콤한 향이 머릿속까지 환하게 한다.


초록 이파리 사이를 둘러보며 새로 올라온 여린 줄기를 찾는다. 여린 순을 꺾으니 똑딱 부러진다. 껍질을 한 번 두 번 세 번 벗기면 매끄러운 속살이 드러난다. 한입 베어문다. 떨떠름한 맛은 사라지고 심심하지만 상큼한 단맛이 있다. 입에서 살짝 침도 고인다. 찔레를 따려다 가시에 찔리기도 했다. '아야'소리를 치고 가시 찔린 손가락을 얼른 입속으로 가져가 빨면 금세 아픔 사라진다. 친구도 없고 부모님은 바쁘고 먹을 것은 부족한 때에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고 심심풀이 간식으로 놀이처럼 따먹을 수 있는 찔레다.


소녀가 자라던 시절은 먹을 것이 아주 없어서 하얀 잎을 따먹으면서 배고픔을 달랜 것은 아니었다. 찔레는 결코 배를 채울 수 있는 먹거리가 되지 못한다. 찔레는 그저 심심함을 잊기 위한 놀이이고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할 뿐이다. 더 맛있는 먹거리가 있다면 얼마든지 뒤돌아 설 수 있는 맛이다. 더 재밌는 놀이가 있다면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다. 찔레는 오다가다 만나고 향기에 이끌리는 그저 그러한 꽃이다. 찔레꽃 노래가사처럼 찔레로 배고픔을 달래야 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찔레꽃 피면 세상만물이 한창 바쁘다. 산에는 뜸부기가 울고 온갖 잡새들이 노래를 부른다. 새들은 산에 새 둥지를 틀고 가족을 늘린다. 논에는 백로가 날아들고 개구리며 두꺼비, 맹꽁이가 쉴 새 없이 짝을 찾는다. 작물들은 논과 밭에서 농부의 바쁜 손을 빌려서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식물들은 산이고 들이고 쑥쑥 커가며 제 세상을 만난다. 모두가 바쁘게 성장하는 계절이다.


농부는 고사리 같은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다. 윗 논에 물을 대라, 모내기에 새참을 내라, 줄을 띄워라, 탈탈탈 경운기가 요란하다. 고추 모를 심어라, 깨모종을 옮겨라, 날이 가물다 모종에 물을 주어라.


오월은 소녀도 찔레와 함께 성장하고 찔레꽃과 더불어 피어나게 한다. 아무리 세상이 쉴 새 없이 바쁘다고 해도 찔레꽃 핀 순간을 놓칠 수는 없다. 소녀에게 이 순간은 놀이이고 여유이고 쉼이고 감성이고 성장이다.   


소녀는 자라서 도회지로 학교를 갔다. 고등학교 때 양희은 노래를 참 잘 부르는 친구가 있었다. 많이 좋아했던 친구인데 양희은의 '찔레꽃' 노래를 곧잘 부르곤 했다. 찔레꽃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 친구다.  


대학교에 입학하니 신입생 환영회라며 선배들이 동아리에서 나와 공연을 했다.

노래 동아리에서 단발머리를 한 여자선배가 나왔다. 가녀리고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 찔레꽃을 부른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친구도 아니고 양희은도 아닌 대학생 선배의 목소리로 듣는데 노래 '찔레꽃'이 새롭다. 이전엔 좋기만 하던 노래가 찌르르 알싸한 감동이 있다. 쓰리고 아프고 외롭고 쓸쓸하며 배고픈 통증이다. 가슴을 찔레에 찔린 같다. 심지어 노래동아리 이름이 '찔레꽃'이란다. 이건 필시 소녀에게 운명이다.


어린 소녀에게 찔레꽃은 가벼운 놀이이고 즐거운 간식이었으며 길가나 산자락에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그저 그런 꽃이었다면 대학에서 만난 찔레꽃은 민중의 처량함과 서글픔이자 한이었으며 날 선 강인함이고 진취적인 변혁을 꿈꾸는 희망이 되었다. 소녀와 찔레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 시작되었다.


오월이 몇 해를 더하고 더해져 소녀의 세월도 흐르고 흘렀다.  배고픔과 알싸한 통증도 사라지고 찔레 가시에 찔렸던 상처들도 아물어서 그 기억마저도 가물가물하다. 찔레꽃과 함께 했던 민중에 대한 연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과 기대, 설렘과 떨림 등도 멀어졌다. 소녀의 머리에는 찔레꽃만큼 하얀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시간은 멀어졌지만 여전히 오월은 자란다. 오월은 예쁘다. 오월은 바쁘다. 오월은 푸르르다. 올해도 어김없이 바람에 실린 찔레꽃 향기가 날아오른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날리며 향기에 기대어 잠시나마 시간여행을 한다. 그 시간이 아련하고 어여쁘다. 노래 음률처럼 허허롭다.


찔레꽃을 검색해 보니 첫 줄에 '한국 원산의 장미과의 낙엽 관목'이라고 나온다.

'어머 찔레꽃이 우리나라 장미구나.' 새삼 우리의 장미 찔레꽃을 다시 보게 된다. 공원이나 아파트 담장 너머에도 찔레꽃이 한창이다. 찔레향이 자꾸만 유혹한다. 연휴를 맞아 찾아간 시골 산 아래에 하얀 찔레꽃이 향기를 가득 안고 활짝 피어서 반긴다. 찔레에는 슬픔도 서글픔도 없다.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서있다.


찔레꽃 노래를 찾아보니 1942년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이 있다. 이 노래는 엄마가 젊을 때 자주 불렀던 애창곡이다. KBS 가요무대에서는 가장 많이 불린 노래로 선정되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원래 독립군의 노래로 추억과 향수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노래 가사에는 붉은 찔레꽃이 나오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1940년대에는 붉은 찔레가 흔했는데 어느새 사라졌다고 한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우리가 알고 있는 동요 같은 찔레꽃은 이연실(1972년)이 부른 노래로 이원수 작사, 박태준 작곡의 노래라고 한다. 원곡은 1920년대 이태선 작사 박태준 작곡의 '가을밤'이 원곡이라고 한다.  그저 대중가요인 줄 알았는데 아주 오래된 노래다. 가을밤 노래가사는 이렇다. "가을밤 외로운 밤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 때~~" 익히 아는 노래이리라.


양희은의 '찔레꽃 피면(1985년)'은 "찔레꽃 피면 내게로 온다고 노을이 질 땐 피리를 불어준다고 그랬지~"라는 가사로  찔레꽃이 필 때 오기로 한 그를 기다리며 느끼는 그리움이 묻어 있다.


장사익의 찔레꽃(2003년)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찔레꽃 향기조차 슬프다고 표현한다.


찔레꽃 노래들이 하나같이 그리움, 슬픔을 담고 있다. 어릴 때는 그저 심심풀이를 달래주는 놀이였을 뿐인데 왜 찔레꽃에 슬픔을 많이 담았을꼬? 그것이 궁금하다.


찔레꽃은 우리나라 산천 곳곳에 피어 배고픈 시절을 민중과 함께한 고마운 꽃이다. 찔레 열매는 영실이라고 하는데 생리통 생리불순 신장염에 좋다고 한다. 찔레는 불면증, 건망증, 간질환, 당뇨, 중풍 한약재로도 쓰인다. 찔레순은 비타민이 많고 보릿고개 시절에는 아이들의 간식거리였다. 찔레뿌리는 아이들의 경기 간질치료 암예방에 좋다고 한다. 찔레꽃은 예쁘고 향기롭다. 찔레 향기에 이끌리다 보면 모든 시름을 잊는다. 향기요법으로 심신안정에도 좋고 추억여행하기도 그만이다. 비에 젖은 찔레꽃을 보며 장사익의 찔레꽃을 들으니 향기에서 하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라라크루 #하나만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엄마에세이

#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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