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해 전 독서모임에서 자신을 닮은 꽃 찾기를 한 적이 있다. 회원 중 한 명이 자신은 계란꽃이라고도 부르는 망초꽃을 닮았다고 했다. 왜 망초꽃을 닮았다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망초꽃을 보면 그분이 생각난다. 수줍은 듯 소박한 모습이 좋았다.
망초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망초는 개망초이다. 개망초꽃은 작은 꽃으로 안쪽은 노랗고 바깥쪽은 하얀 꽃이 두르고 있다. 마치 작은 계란 프라이를 해 놓은 것 같다. 시골에서는 개망초가 많이 피면 그해 농사는 풍년이 든다고 하여 풍년초라고 부른다.
개망초는 경작지 주변에 많이 핀다. 밭둑이나 묵혀놓은 밭, 길가나 빈터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다. 사람의 손길이 머무르지 않는 곳에서 무리를 지어 피어난다.
도시에서도 출근길이나 산책길에서도 만날 수 있다. 돌틈에서 한두 송이 피기도 하고 방치해 놓은 듯한 화단이나 모퉁이에서 무리 지어 군데군데 피기도 한다.
시골 태생이라 도시에서 농촌에서 자주 보던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무렇게나 무심히 툭 피어난 모습이 가엽기도 하고 거친 토양에서 피어난 것이 강인하고 기특해 보이기도 하다.
개망초는 국화과에 해당하는 해넘이한해살이 풀이다. 해넘이한해살이 풀이란 달력으로 한해를 넘기면서 살아가는 풀로 초가을 씨앗이 발아를 시작해서 겨울 동안에 지면에 바짝 붙어서 살다가 이듬해 봄에 줄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말한다. 이 풀들은 7~8월에 죽고 10~11월 자라 해를 넘기며 겨울을 보낸다.
꽃은 총길이가 2cm 정도인데 안쪽에는 노란 통꽃이 3mm 정도이고 바깥쪽은 하얀 혀꽃(한 장씩 피는 꽃) 이 노란 통꽃 주변을 원을 그리며 하얗게 여러 장이 핀다. 통꽃에는 암술과 수술이 있으며 씨방과 갓털이 있고, 혀꽃에는 암술과 씨방이 있으며 수술은 없다. 꽃에서는 진한 국화향이 난다. 개망초는 국화과이니 당연히 국화향이 날 수밖에 없다.
꽃 뒷면은 총포가 있는데 이 안에 씨방이 있다. 총포란 꽃자루가 단축되어 포가 한 곳으로 밀집된 것을 말하는데 국화과의 꽃 아래 씨방이 모여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통꽃에 있는 갓털은 성숙하고 꽃이 시들면 푸석푸석해지는데 한올씩 날아간다. 개망초꽃가 질 때면 하얀 꽃잎이 갈색으로 말라가며 손으로 꽃을 비비면 푸스슥 노란 꽃술이 풀어지면서 흩어진다. 어릴 때는 재미 삼아 놀이 삼아 개망초꽃을 흩뿌리며 놀기도 한다. 씨앗을 널리 퍼트려주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잎은 뾰족뾰족 톱니가 둘러 있고 하얀 털이 있어서 어린순은 괜찮지만 다 자라 잎은 손을 대기가 꺼려진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을 수 있으며 꽃은 차로 마실 수 있다. 어린잎을 몇 번 나물로 먹었던 것 같은데 자주 먹지는 않았다.
기억 속에 개망초는 논둑이나 밭둑에 흐드러지게 핀 하얗고 노란 꽃이었고 풍년을 알리는 꽃이니 꽃을 보며 한 해 농사를 점칠 수 있었다. 개망초꽃은 행복한 기억이라면 개망초는 잡초라는 인식이 있다.
개망초는 언제나 그 자리에 해마다 피고 지고 무리 지어 자란다.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잡초와의 전쟁이 곧 농사다. 개망초는 해넘이한해살이풀이니 이른 봄에 잡초를 뽑아주지 않으면 애를 먹는다. 성장이 빠르고 논둑이나 밭둑에 자라서 작물들을 해친다. 어린 개망초는 쉬이 뽑아낼 수 있지만 어른 개망초는 뿌리가 깊고 억세며 줄기에는 털이 있고 굵어서 뽑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다 자란 개망초는 괭이를 들고 땅을 깊게 파지 않으면 안 된다. 손으로 뽑으려다가는 줄기가 뚝 부러지고 만다. 개망초를 잘 뽑아내지 않으면 고추밭과 고구마밭, 배추밭을 망칠 수 있다.
어릴 때는 그저 그러한 잡초였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 풀꽃마다 이름이 있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 2>에서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라고 했다. 이름을 알고 나니 더 반갑다. 풀꽃마다 모양과 색깔은 익히 알고 있는데 뒤늦게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친구와 연인이 먼저 되고 나중 이웃이 된 것 같다. '아, 이것은 비밀'이라고 시인이 말했는데...
<풀꽃 3>에서 시인은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라고 말한다. 세상은 기죽지 않고 살다 보면 많은 것을 이루지 않아도 참 좋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시인은 이름도 없던 풀꽃 속에서 어찌 이런 이치를 알아냈는지 궁금하다.
잡초였던 개망초는 꽃이 되어 올봄에도 피었다. 추억 속에도 예쁘고 사랑스럽게 피었다. 마치 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