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상에서 일부러 꽃을 찾지 않아도 보이는 게 꽃이었는데 이제는 부러 찾지 않으면 꽃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꽃집에는 하얗고 분홍색 수국이 활짝 피었다. 6월은 아름다운 수국의 계절이다. 또 다른 꽃은 없을까 눈을 씻고 찾아보지만 눈길을 사로잡지 못한다.
아침저녁으로 드나드는 아파트 현관 입구, 건물의 그늘진 곳에서 손짓하는 이가 있다.
누군가 집에서 키우던 식물을 화단에 옮겨 심어놓았는지 어느 때인가부터 자라고 있는 식물이다.
쉽게 지나쳤던 곳인데 어느 날 아우성소리에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땅에 딱 붙어서 작은 부채모양 초록잎이 자라고 있다. 하얀 그물망이 있고 털이 있다. 까끌거릴 듯한 잎은 만져보면 부드럽다. 줄기와 잎은 땅에 한 곳에 모여 자라는데 그사이를 비집고 긴 줄기가 잎보다 배는 높이 자랐다.
벌이 날아들어 가만히 보니 긴 줄기에 꽃이 피었다. 사진 몇 컷을 찍는 동안 벌이 놀라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꽃이 살랑대는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며 난다.
꽃잎은 다섯 장인데 위로는 세장 아래로는 두장이다. 위 세장은 서너 개의 보라색 점무늬가 있고, 아래로 두장으로 흰색이다. 노란총포에 수술이 대여섯 개 달려 있다. 날개를 단 요정 같은 꽃이다. 하얀 나비가 날아왔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원더랜드의 팅커벨이 잎사위를 춤추는 듯하다.
바위취 꽃이다.
취라서 우리가 먹는 취나물과 같은가 보았더니 다르다.
우리가 먹는 참취나 곰취는 국화과인데, 바위취는 범의귀과다. 범의귀과는 속씨식물 장미목과다. 참취나 곰취는 잎이 바위취보다 부드럽고 매끈하며 하얀털이나 그물 무늬도 없다. 꽃은 보통 취꽃은 노란색으로 국화처럼 꽃잎이 나는데 듬성듬성 원을 이루며 핀다. 바위취는 요정처럼 꽃이 생겼다.
바위취는 여러해살이 풀로 키는 60cm 정도다. 잎은 뿌리줄기에서 뭉쳐서 나며 부채모양(혹자는 신장모양이라고 한다.)이다. 잎에 흰 무늬가 있고 길이는 3~5cm, 폭 3~9cm이다.
꽃은 꽃줄기가 20~40cm 정도로 잎 사이에서 곧게 서는데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원추꽃차례란 꽃가지가 가지를 치며 가지에 꽃자루가 있는 꽃이 달리는 것을 말한다. 줄기나 가지 끝에 주로 형성된다. 라일락은 대표적인 원추꽃차례이다.
여느 취와 마찬가지로 바위취는 습기가 많고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습한 곳에 심으면 몇 년이 지나면 바위취로 뒤덮일 정도로 번식력이 좋다.
바위취는 주로 관상용으로 심는데 전초(잎, 줄기, 꽃, 부리 따위를 가진 옹근 풀포기)는 약용으로 쓰이며 쌈을 싸거나 데쳐서 나물밥을 먹고 꽃잎을 따서 꽃밥을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지나는 길을 누군가 빗자루로 쓸었던 흔적이 있더니 바위취 잎 위에 흙이 앉아 있다. 시판 취나물만 사 먹어서 그런지 정원에서 자란 바위취를 보면서 먹는 나물로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혹여 시골이나 산속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바위취를 본다면 꽃밥을 만들고 쌈을 싸 먹어봐야겠다. 비가 한차례 온 뒤 나가보니 꽃이 지려나보다. 얼른 꽃잎 가지를 꺾어서 책갈피에 묻었다.